달리기 시합에서 관중들에게 가장 짜릿한 흥분을 안기는 순간은 뒤처진 주자가 막판 스퍼트로 선두를 따라 잡을 때다. 초장에 앞으로 치고 나간 주자가 끝까지 1위로 골인한다면 자기네 선수가 아닌 이상 재미는 오히려 반감된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바라 보는 많은 국민들의 심정이 아마 지금쯤 이럴 것이다. 예상을 깬 노풍(盧風)이 노무현의 스퍼트를 예고하면서 대선 정국에 탄탄한 긴장감을 안기고 있다.
사실 노풍은 이미 오래전에 감지됐다. 지난해 10월 CJB 청주방송이 실시한 여론조사때 대선 후보들의 충북내 지지도는 당시의 일반적 여론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한가지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었다. 노무현의 지지도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전국의 각종 리서치에서 노무현의 지지도는 15~20%대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 여론조사에선 상대 후보에 따라 30%를 넘는 경우도 나타났다. 당시 필자는 이 자료를 넘겨 받아 기사를 쓰면서 이런 멘트를 달았다. ‘노무현은 후보 선호도와 맞대결에서 꾼준한 상승세를 보여 향후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태풍의 눈으로 등장할 공산이 크다.’<제202호 10면> 그 예측이 지금 현실로 나타나고 있고 상대적으로 경쟁후보측을 바짝 긴장시키는 것이다.
이미 언론들은 노무현의 해부에 잽싸게 나서 기획기사와 보도를 쏟아 냈고 국민들 역시 그 실체를 들여다 보는데 쏠쏠한 재미를 느끼고 있다. 사실 노무현은 5공청문회를 통해 스타 반열에 올랐다. 그런데도 대통령감을 전제로 그를 의식하는데엔 또 다른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필자는 서너 차례 노무현을 가깝게 경험한 적이 있다. 우선 기억에 남는 것은 90년 지역언론사 노조협의회(공식명칭은 잘 기억나지 않음) 명의로 그를 초청, 청주 시민회관에서 시국강연회를 가질 때다. 3당 합당에 반대해 의원직을 사퇴, 꼬마 민주당을 창당했을 쯤이다. 의전 문제로 그를 수행하다가 잠시 짬을 내 3당 합당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명쾌했고 지금도 방송 토론 등에서 밝히는 입장이 그 때와 똑같다. 3당합당은 구국적 결단(당시 YS의 말)이 아니라 국가 정체성을 뿌리째 흔드는 야합이라는 주장이었다. 결국 그는 잠시후 강연을 통해 3당 합당을 시정잡배의 쿠데타로 몰아치며 정치가 10년은 후퇴했다고 열변을 토해 냈다.
또 한번의 만남은 얼마후 경기도 양평의 한 연수원에서였다. 전국언론노련 주최로 연수가 있었는데 이 자리에 노무현과 김근태 장기표씨가 한꺼번에 초청돼 참석자들과 각종 시국문제에 대해 프리토킹을 나눈 것이다. 당대의 개혁적 논객으로 이름을 날리던 이들 세명이 토해내는 열변은 가히 압권이었고 분위기가 얼마나 후끈했던지 예정된 시간을 훨씬 넘겨 심야까지 계속된 것으로 기억한다. 이 자리에서 세사람은 수시로 변절하는 우리나라 정치의 몰역사성에 대해 가장 격렬한 토론을 벌였고, 노무현에 대한 그 때의 인상은 그가 ‘원칙’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DJ의 깃발로 영남에서 네번씩(92,95,96,2000)이나 떨어지고도 동서화합의 의지를 버리지 않는 그의 노풍(盧風)이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 올지 또 다시 주말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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