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민촌-벽화마을-드라마 촬영지-카페촌으로 전락···‘반면교사’ 삼아야
준비없이 관광지되자 난개발로 불야성, 지금은 복합상가·오피스텔 신축중

▲ 수암골은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해진 뒤 난개발이 가속화 됐다. 카페거리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카페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 풍경. 사진/육성준 기자

청주시 상당구 수동과 우암동에 걸쳐 있다고 해서 수암골이라 이름 붙여진 곳. 한국전쟁 후 피란민들이 모여살기 시작해 오밀조밀한 골목과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던 곳. 충북민예총 소속 작가들이 그린 소박한 벽화로 인간적인 정을 느끼게 하던 곳. 그러나 지금 수암골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수암골은 피란민촌에서 2008년 벽화마을, 2009년 드라마 촬영지, 2010년 카페촌으로 시시각각 바뀌었다. 드라마 ‘카인과 아벨’ 이후 여러 드라마들이 수암골에서 촬영됐다. 벽화마을로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던 이 곳은 드라마 촬영지로 급부상하면서 관광객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청주시와 시민들이 준비할 새도 없이 몰려들자 발빠른 업자들이 커피숍과 레스토랑 등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지금은 오피스텔과 복합상가가 건축중이고, 분양사무실까지 들어섰다. 몇 몇 드라마가 인기를 끈 이후 수암골이라는 소박한 동네는 어떤 길을 걸었을까.
 

말복이 지났으나 여전히 불볕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 8월 17일, 수암골에 갔다. 평일인데다 계속되는 찜통더위 때문에 관광객은 많지 않았다. 수암골이 벽화마을이 된 이후 틈틈이 와 보았지만 요즘처럼 개발의 최전성기를 맞은 적도 드물다. 이 찜통더위 속에서도 수암골에는 포크레인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수암골은 한 쪽은 벽화거리, 다른 한 쪽은 카페거리로 나뉘고 군데군데 드라마 세트장과 흔적들이 있다.

카페거리에는 카페 아비앙또, able 703, 힐탑, 파스쿠찌, 길가온, ash, 오늘, FLEUR가 줄지어 늘어서 있고 꼭대기에 카페 레체, 풀문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수암골이 개발되던 초기에 들어선 카페 레체와 풀문은 청주시내 왠만한 커피숍을 능가할 정도로 크다. 이들이 영업을 시작한 이후 장사가 잘된다는 소문이 돌면서 카페건설에 붐이 일었다. 그외 맥주집 보보스호프, 베트남 쌀국수집 포메인, 몽뜨레셰프, 레스토랑 파브리카가 영업 중이다. 360도 회전식 레스토랑으로 천천히 움직이는 파브리카도 꼭대기에 있다. 이 레스토랑 또한 규모가 얼마나 큰지 멀리서도 눈에 띈다.
 

▲ 수암골에는 포크레인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요즘에는 대형 카페와 음식점, 오피스텔 등이 신축 중이다.사진/육성준 기자.

이 뿐이 아니다. 포메인 주차장 옆에는 지금 음식점이 건축중이다. 일반음식점 지하 3층, 지상 3층 짜리 A동과 지하 1층, 지상 3층짜리 B동 등 2개 동을 짓는다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상당한 규모의 식당이 또 들어설 예정이다. 청주시가 지난 2012년 한옥관광자원화 사업지구로 지정하고 한옥촌 조성을 계획했다가 포기한 곳에도 지하 2층, 지상 4층의 근린생활시설 5개 동이 신축 중이다. 조감도만 봐도 화려해 보였다.
 

신축장소 바로 옆에는 상가 분양사무실이 영업 중이다. 이 사무실은 플래카드까지 내걸었다. 피란민촌 수암골에 분양사무실까지 등장하다니. 수암골의 오늘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불과 몇 년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신축중인 상가 옆으로는 올레하우스라는 다세대주택이 들어섰고, 거기서 조금 더 가면 수암골 타운하우스라는 오피스텔이 건축 중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서울 삼청동이나 홍대근처 카페거리가 연상된다. 대부분의 카페와 음식점들은 피란민촌이라는 마을 이미지를 조금만 생각했다면 도저히 지을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웅장하다.
 

전체 100가구 중 절반 정도 떠나

이런 모습과 주민들이 살고 있는 벽화거리는 부조화의 극치를 이룬다. 벽화거리에는 총 42점의 벽화가 있다. 마을 아래에는 지난해 수암골 관광안내소가 들어섰다. 한 주민이 벽화마을을 소개한 ‘수암골 아트투어’라는 리플렛을 건넸다. 하루 4명의 주민이 4시간 관광안내·청소·교통정리 등을 하면서 1인당 1만2000원의 돈을 받는다. 청주시가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연로한 주민들이 많아 여기서 일할 수 있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 카페거리와 주민들이 살고 있는 벽화거리(사진)는 심한 부조화를 이룬다.사진/육성준 기자.

드라마 촬영지로서의 흔적은 팔봉빵집과 국수집 영광의 재인, 거기에 군데군데 놓인 드라마속 주인공들의 동상이 말해준다. 팔봉빵집은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세트장이다. 그 드라마가 끝난 직후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와 빵이 날개돋친 듯 팔렸으나 지금은 많이 줄었다. 그러나 드라마 ‘영광의 재인’ 세트장인 국수집 ‘영광의 재인’은 성업중이다. 청주에서 꽤 오랜 역사를 가진 서문우동이 세트장을 지은 뒤 영업중인데 항상 손님들로 북적인다.
 

청주시는 드라마 ‘카인과 아벨’의 주인공 소지섭, ‘부탁해요 캡틴’의 지진희·구혜선, ‘힐러’의  동상을 곳곳에 세웠다. 여기에 현대백화점에서 지역관광 활성화를 위해 충북지역개발회에 기탁한 1억5000만원의 사업비가 들어갔다. 하지만 난개발의 대표적인 마을이 돼버린 수암골에 즉흥적으로 동상까지 세워 거리가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관광객들 중에는 동상이 실제 배우들의 모습과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주민은 “수암골 전체 100가구 중 지금은 절반 정도가 남았다. 지금 카페거리가 된 곳에 빈집도 있었지만 마을을 떠난 사람들이 많다. 땅값이 오르자 매매가 이뤄지기 시작했고 세입자와 지상권만 가진 사람들은 이사를 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은 자기 땅에 자기 집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난개발을 못본척하는 행정기관과 장사해서 돈만 벌면 된다는 일부 업주들, 드라마 유치해 관광객을 불러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수암골을 망쳤다. 옛날 모습이 사라진 수암골은 더 이상 수암골이 아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 주민들이 붙여놓은 경고문. 하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사진/육성준 기자.

수암골은 관광지 역할을 하지만 실제로는 관광지가 아니다. 일반주거지역일 뿐이다. 이 때문에 난개발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게 청주시 설명이다. 하지만 같은 피란민 주거지역인 부산 감천문화마을은 부산시 공무원, 마을주민, 예술인들이 협의체를 만들어 상업시설 들어서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는 등 난개발을 막고 원형을 최대한 보존했다. 청주시가 배워야 할 점이다. 수암골은 관광지가 된 뒤 마을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에 대한 후속대책 없이 유명해졌다. 관광지를 꿈꿨던 일부 사람들은 이 점을 간과했다. 수암골은 드라마 촬영지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잃은 게 너무 많다. 향후 제2의 수암골이 탄생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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