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세평/ 김현이 청주노동인권센터 사무차장

▲ 김현이 청주노동인권센터 사무차장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관대할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두 말 모두 일리가 있다. 이를 종합해서 말하면 “내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겐 엄격하다”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글을 하나 읽었다. 채식을 시작한 시민단체 활동가의 글이었다. 채식을 한다고 사람들에게 말하는게 부담스럽다고 했다. 주변사람에게 채식을 한다고 말하면 “‘그럼 생선은 왜 먹냐’, ‘달걀은 왜 먹냐’”며 자신의 실천 활동을 지지해주기보다는 “그게 무슨 채식이냐고 오히려 비난을 한다”는 이야기였다.

내 남편은 사회주의 세상을 바라는 사람이다. 특별히 남편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어본 적은 없었지만 관련된 활동을 해왔던 터라 자연스레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자신의 물건을 타인에게 빌려 주려 하지 않거나, 벌레 잡은 휴지를 밖에 버리거나, 운전중에 과격한 끼어들기를 하면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기는 사회주의자도 아냐! 어떻게 사회주의자라면서 그럴 수 가 있어.”하고는 주절주절 잔소리를 했다.

나는 사회주의를 꿈꾸는 사람이 어째서 삶 속에서 실천을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당연히 남과 나누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주변의 가장 가까운 사회주의자가 보면 볼수록 이기적인 모습을 보였다. 실망스럽기도 했고,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며 조금 통쾌(?)하기도 했다.

나는 사회주의 세상을 위해 실천하며 살아가는 남편을 동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상대방과 나를 견주어 온 것 같다. 그러고는 상대방이 무언가 완벽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 그것을 콕 집어 지금까지의 실천들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렸다.

따지고 보면 그때 나는 묘한 정서적 쾌감을 느낀 것 같다. “당신도 나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며 나의 존재를 확인 받아 온 것은 아닌가 싶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앞서가는(?) 사람들에게 많은 책임을 강요한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에게 도덕적인 선함과 일적인 부분에서의 전문성, 희생정신. “당신이 선택했고, 그런 삶을 산다고 했으니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아주 까다로운 잣대로 바라본다.

그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나처럼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기도 할 테고, 무심결에 하기도 하고, 말한 것에 책임을 지우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저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위해 작은 실천들을 하며 살아가는 한 인간일 뿐인데 너무 많은 책임을 강요하는 건 아닌가 싶다. 나는 그 시작에 용기조차 내지 못하면서 상대방을 비난하다니 부끄럽다.

나에게 주어지는 책임감이 부담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활동가들에게도 그런 책임을 과하게 지운 것이 아이러니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세상을 위한 작은 실천을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기 전에 따뜻한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면 좋겠다. 나도, 내 남편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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