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발행인

▲ 한덕현 발행인

역시 똑같은 욕심도 나이가 들어 부리게 되면 불편하다. 노추(老醜)라는 말은 이래서 나오는가 보다. 이건희의 성매매의혹 동영상을 본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거동조차 불편한 그가 노구를 이끌고 한꺼번에 젊은여성 서너명을 불러들이는 모습은 분명 호기심을 부추기기도 남는다. 그가 누리는 국가, 사회적 평판 못지않게 그 나이에 이성에 대한 그만한 힘의 여력을 갖췄다는 사실 자체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분도 잠시, 곧바로 엄습하는 느낌은 사람 아니 인간에 대한 측은함이다. 제 아무리 본능에 충실한다 하더라도 74세의 나이에 꼭 저런 식으로 이성을 탐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같은 인간으로서의 연민과 자책이 앞서는 것이다.

어찌 보면 본인 삶의 갈무리를 준비해야 할 시기에 무슨 거창한 이지적(理智的) 풍모는 아니더라도 그가 이 나라를 대표하는 대그룹을 일궈냈다는 일말의 자존심이라도 있었다면 그렇듯 업소의 여성들을 부르면서까지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려고 안달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문제의 동영상 속 방으로 들어오는 여성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이건희의 눈빛이 마치 목에 걸린 이물질 정도로 역겨웠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건희의 탐욕은 우리사회에 이미 관행처럼 굳어져버린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도 만연하는가 하면 앞으로도 절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기엔 돈과 권력의 그릇된 창출, 그리고 이것들의 잘못된 만남이 만들어내는 천박한 국가문화가 깔려 있다.

이건희 뿐만 아니라 힘있고 돈있는 이들에게 여성편력은 이젠 필수코스가 됐다. 장자연이 자살로써 세상에 밝히려 했던 ‘리스트’를 우리는 기억한다. 거기엔 대기업 총수는 물론이고 잘 나가던 신문, 방송사 간부들이 줄줄이 언급돼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그들이 장자연에 눈독을 들인 계기는 당연히 돈과 사회적 관계에서의 권력이다. 그것으로 세상을 재단하려 했고 마음대로 횡행했다.

이경미라는 가수가 있었다. ’87년 최고 안방드라마 ‘사모곡’의 주제가를 불러 스타덤에 오른 후 유명 CF출연에 쇼프로 사회자, 연기자까지 섭렵한 연예인이다. 하지만 그는 미모의 가수가 어떻게 해서 재벌총수와 권력가들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가를 말 그대로 몸으로 체감한 후 돌연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어 나중엔 자전소설(타래)로도 이름을 알렸다. 그가 문제의 책에 유난히 강조한 것은 “돈있고 권력을 가진 ×들은 결국엔 똑같다”였다. 장자연이 죽음으로써 ‘가진자’들을 응징했다면 이경미는 자전소설로써 이들을 세상에 고발한 것이다.

5.16 쿠데타정권이 국민여론을 달래기 위해 내건 공약 중엔 ‘축첩축출’이라는 것도 있었다. 당시 유명 조간신문의 기사에는 이런 제목까지 달렸다. ‘축첩공무원 모두 해면(解免)키로, 이미 1385명 적발’. 나라가 썩을 대로 썩었다던 당시의 공직문화와 자본, 권력의 일탈이 어떠했는지는 안보고도 눈에 선하다.

가진자들의 축첩이나 여성편력은 꼭 남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 지역사회에도 알만한 인사중엔 이런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면서 그들은 오피니언 쯤으로 행세하며 되레 여론을 왜곡시키고 지역의 정체성마저 깎아 내린다. 스스로를 지역사회의 지배층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선 민중은 개 ,돼지에 불과하다며 대한민국을 1%의 상인(上人)과 99% 하인(下人)의 신분제 나라로 고착시켜야 한다는 나향욱의 막말은 일견 일리가 있다.

잘 알다시피 삼성은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폭로와 떡값 명단의 X-파일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이번에 노익장을 과시한 이건희는 조세포탈과 배임죄 등으로 징역 3년형(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2009년 MB에 의해 4년만에 특별사면을 받은 전력도 있다. 평창올림픽유치에 그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정도의 경제범죄는 미국에선 종신형감이다. 실제로 한 분식회계 기업가는 시장질서를 파괴했다는 이유로 25년형을 받았고 식중독을 일으키는 세균에 노출된 버터를 판매한 기업인은 28년 형을 선고받아 뉴스를 탄 적이 있다. 이를 감안한다면 비록 집행유예 기간이 끝났지만 이건희를 수사하는 당국이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기업과 기업인의 범죄는 사법이 아닌 공적범죄로 다뤄야 한다. 그만큼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다.

꼭 이건희 뿐만 아니라 그동안 유수의 대기업 오너들이 돈과 권력을 등에 업고 이 나라의 1%로 살아 온 노하우는 분명하다. 대선 때마다 유력 후보에게 거금을 건네고, 국회의원들에게 청탁과 로비를 하고, 사법당국에는 떡값을 뿌리고, 잘 나가던 법조출신들은 기업으로 영입하고, 언론사는 자사홍보의 첨병으로 활용했다. 물론 다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요즘 시중에선 우리나라가 부패공화국이 되었다는 원성의 목소리가 말 그대로 자자하다. 어디 한 곳 안 썩은 데가 없다는 것이다. 얼마전까지도 양심껏 살다간 나만 손해본다는 피해의식 정도였다면 지금은 쥐도 새도 모르게 목줄이 끊길 지도 모른다는 공포심마저 공유하는 것이다. 이번 이건희 사건은 국민들의 이같은 박탈감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다. 그만큼 충격이 크다.

민주국가에서 이 정도가 되면 이는 심각한 수준이다. 지금 당장, 부패와의 전쟁이라도 벌여야 할 것이다. 1992년 이탈리아가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할 때도 현재 우리의 상황과 유사했다. 기업, 정치, 권력, 사회, 심지어 마피아 조직까지 안 썩은 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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