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말로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 일컫는다. 그렇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과거의 잘못일게다.
그것은 과거 잘못에 대한 반성을 전제로 하고 기억해야 한다. 좋았던 일 잘한 일 등은 잊어버리고 또다시 반복해도 되지만 과거의 잘못을 잊어버리고 또다시 반복하는 것은 개인의 불행을 넘어 공동체의 불행까지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부시 미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으로 불거진 한반도 전쟁 위협론이 한동안 언론에 오르내렸다. 부시 행정부의 한반도 전쟁 가능성 발언의 배경은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 미국의 F15 전투기를 팔기 위한 배수진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한 판단인듯 싶다.
미국 내 강경매파의 논리와 무기생산업자의 막대한 자금력을 등에 업고 약소국에 협박하듯 겁을 주는 부르터스의 모습을 보면서 분노하지 않은 국민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1위로 들어왔던 김동성 선수를 실격패시키고 자국의 오노 선수에게 메달을 쥐어주는 미국의 오만방자한 텃세에 우리는 할 말을 잃는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대한 국내 언론의 곡론곡필(曲論曲筆)과 이를 추종하며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수구세력의 준동(蠢動)이다. 올해로 83회째 맞는 3·1절에 발표된 이른바 친일파 명단 파문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그 궤를 같이한다.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 모임에서 708명의 1차 친일파 명단을 발표하자 순식간에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국내 언론사 중에서 친일에 자유롭지 못한 조선과 동아일보는 즉각 보복 대응에 나서 자가당착(自家撞着) 논리로 연일 맹공을 퍼부어대고 있다. 경계하는 것은 국익과 사익을 분별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비약논리로 성경의 구절까지 서슴없이 동원한다.
「죄 없는 자여! 이 여인을 돌로 쳐라」, 「미래 지향적인 21세기 초입에서 해묵은 친일파 타령으로 국론을 분열시키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저의가 의심스럽다」며 되묻는다. 결국은 「나도 잘한 것 없지만 너 역시 잘한 것 없으니 우린 이미 같지 않은가! 똑 같은데 왜 자꾸 이레하는 식이다.
1948년 표면적으로나마 미군정이 끝나고 범국민적인 요구로 설치된 친일부역자 처벌을 위한 특별기구였던 「반민특위」 활동이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좌절된 것은 우리의 역사를 수십 년 후퇴시키기에 충분했다. 당시 친일세력을 청산하지 못하고 좌절된 「반민특위」의 부활을 염원하는 것이 지나친 욕심일까?
본질을 애써 외면하며 상황논리로 돌파하려는 그들을 향해 말콤엑스는 이렇게 말한다. 「노예가 노예임을 모르는 것이 가장 불쌍하다」 고로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 말한다.
잘못된 역사를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고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만이 참다운 미래를 준비하는 시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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