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연구단체 “읍성 동문지 주차타워 건립 저지”
성돌 잇따라 발견, 시 ‘도시재생 활성화 계획’ 추진

▲ 충주시는 올해부터 2020년까지 5년 동안 200억 원을 들여 성내·충인동 도시재생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향토연구단체들이 충주읍성 동문 터(붉은색 3번) 인근에 설치 예정인 주차타워건립을 반대하고 있다.

충주시가 충주읍성 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읍성의 동문지에 주차타워를 건립하겠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어 정비·복원정책에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충주시는 성내동 옛 충주읍성(忠州邑城) 주변에서 성돌이 잇따라 발견됨에 따라 읍성 복원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 4월 남문 터 주변에서 성돌 8개가 발견된데 이어 최근 이곳에서 50m 떨어진 곳 건물의 건축폐기물 처리과정에서 성돌 8개가 추가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 2003년 발견된 충주읍성 성돌.

충주읍성 성돌이 발견된 것은 2003년 성내동 가구점 골목 보문당 부근에서 1개가 발견된 이후 처음이다. 성문의 홍예(아치 모양의 문) 위쪽 좌우에 하나씩 달린 성돌은 누문(樓門)의 낙수를 성밖으로 흘려보내는 시설이다. 건물 안쪽의 물이 밖으로 빠지도록 성벽이나 다리 등의 끝에 설치한다. 배수물이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벽면에서 약간 튀어나오도록 만든다. 석누조(石漏槽)라고도 불리는 성돌은 순우리말로는 ‘물홈돌이’다.

당시 공개된 성돌은 길이 2m 20㎝, 높이 50㎝로 인근 덕주산성의 남북문이나 문경새재 1·2·3관문 등보다 커서 충주읍성 문 규모가 다른 성문보다 컸음을 보여준다. 성돌은 충주읍성의 실제 모습을 파악하는데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충주박물관은 보고 있다. 시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 추가경정예산 또는 내년 본예산에 용역비를 확보할 계획”이라고 했다. 시는 용역을 통해 정비·복원 방향과 소요 예산, 주민생활권 보장방안 등을 마련할 방침이다.

충주시 “주차타워 확정된 것 아냐”

충주읍성 복원 사업과 더불어 시는 올해부터 2020년까지 5년 동안 성내·충인동 활성화 방안을 세웠다. 도시재생 활성화 계획 선도지역으로 선정된 성내·충인동은 공공기관 이전으로 도심공동화현상이 발생하고 원도심 외곽의 관광자원과 연계 부족, 보행환경 불량 등으로 상권이 급격히 쇠퇴했다. 이에따라 시는 이곳에 2020년까지 200억원(국비 100억 원)을 들여 문화·창업·재생센터를 비롯해 청년가게와 친화적 원도심 조성 등의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원도심 보행친화 공간 조성사업으로 주차장 확충과 경관 개선 등을 꾀할 예정이다. 문제는 시가 추진하는 도시 재생사업 중 주차장 확충과 충주읍성이 상충되는 점이다. 시는 성내·충인동 도시재생사업의 하나로 동문지 인근 문화회관 동측 터 3000㎡와 건물을 매입해 2019년부터 197대 주차 규모의 지상 2층 지주식 철골 주차타워를 건립하기로 하고 조만간 시행계획 용역에 들어갈 계획이다. 때문에 이같은 사실을 인지한 충주지역 향토사 연구단체인 (사)예성문화연구회와 (사)충주전통문화회는 주차타워 건립을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 단체는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충주의 활력을 위한 도심 재생사업 자체를 반대하는 건 절대 아니다”라며 “다만 거시적 안목으로 생각한다면 충주읍성 동문지에 주차타워를 건립하겠다는 황당한 사업 계획은 세울 수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충주읍성은 일본인들에 의해 강제로 훼손된 유적이며 충주시민이라면 시의 얼굴이 될 읍성을 복원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나 생각하고 있다”면서 “충주시는 면밀한 계획 하에 읍성 흔적이 있는 곳을 지금부터 확보해야 제대로 된 읍성 복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나주시는 읍성 내 객사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주차타워는 동문지가 아닌 다른 곳에 건립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시는 읍성 복원을 위한 단계적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시민들에게 공개하라”며 “주차타워 계획을 폐기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주차타워는 읍성 복원지와 떨어져 있고 아직까지 확정된 것이 아니다”라며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고, 사업 추진과정에서 읍성 복원과 관련한 단체와 협의를 통해 갈등 없이 잘 추진하겠다”고 답변했다.
 

▲ 디지털로 복원된 충주읍성 내 관아전경(왼쪽)과 북문 전경
▲ 충주읍성에 사각형, 반원형 4개 옹성이 존재(3D로 복원)

충주읍성 터 유구 보호 ‘시급’

이와 함께 성내동 옛 충주읍성 주면에서 성돌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성곽의 구조 등을 알 수 있는 유구(遺構) 보호를 위해 관련 전문가의 입회조사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는 여론이다. 성돌이 나온 곳이 충주읍성 남문 터 주변으로 건물을 철거하면서 확인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성돌 일부가 건물 철거 과정에서 굴착기 등으로 훼손되고 성돌 위치가 바뀌는 등 성곽의 구조를 알 수 있는 유구가 변형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따라서 문화재 관련 전문가들은 충주시가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면서 주차장 조성 등 공공사업을 진행하지만 읍성 공간 개발과 관련한 매뉴얼이 없는 것 같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건물 철거 과정에서 각종 장비가 투입되면서 일부 성돌이 훼손되고 위치가 이동될 수 있다”며 “성돌과 유구 훼손을 막으려면 문화재 관련 전문가가 건축허가에 따른 터파기 과정 이전인 건물 철거 때부터 입회조사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시는 관련 규정에 따라 건축허가 후 굴착과정에서 입회조사하도록 해 현재 충주읍성 터 주변에서 진행되는 건물 철거 과정에서는 관련 전문가의 입회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문화재 입회조사는 관련 전문가가 공사현장에서 굴착시점에 참관해 매장문화재 출토 여부를 확인하는 조사다. 시는 사업비를 확보해 충주읍성 정비·복원사업을 위한 연구용역을 추진할 계획이지만, 건물 철거 과정에서 성돌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어 성돌과 유구 보호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일제 훼손 충주읍성, 복원해 역사적 가치 높여야

충주읍성은 신라 문무왕 13년(673년) 낭자성이란 이름으로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충렬왕 3년(1277년)에 다시 쌓은 뒤 ‘꽃성’이란 뜻의 예성(蘂城)으로 불렸다. 마지막 개축은 고종 6년(1869년) 충주목사 조병로에 의해 이뤄졌으며, 당시 둘레는 약 1㎞, 두께 7.5m, 높이 6m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다 유인석이 이끄는 의병군이 충주성 탈환 전투 중에 4개의 문루와 수문청이 불탔고, 일제강점기에 시가지 발전에 저해된다는 이유로 모두 헐렸다.

지금은 충주목사가 근무하던 동헌인 청령헌(충북도 유형문화재 66호)과 제금당(도 유형문화재 67호), 충주성사적비(도 유형문화재 68호)와 관아 터만 남아 있다. 남겨진 유적은 많지 않지만 충주읍성에 대한 가치와 시민들의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2006년 8월 충청대학 박물관이 청령헌 주변에 대한 발굴조사 현장설명회를 열었는데 삼국시대부터 근세 생활유물까지 다양하게 출토됐다.

장준식 박물관장은 “조사 결과 청령헌 주변이 조선시대 뿐만 아니라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는 건물 유구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이는 한국 고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간에 가장 중요한 연구과제의 하나인 고려사에 기록된 충주서의 위치 문제에 대한 그동안의 의구점을 해결할 수 있는 단초가 됐다”고 평했다.

2012년에는 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와 충북도문화재연구원이 ‘충주읍성의 3D 디지털 복원과 활용’을 주제로 학술 세미나를 가졌다. 조선왕조에서 충청도의 최대 군현이었던 충주에 대한 내용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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