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모 대학 학생 4인의 성차별 고발기

혹시 어렸을 때 여자라서 성차별을 당했는가. 아마 많은 사람들이 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마찬가지다. 80년대 후반에 태어난 학생들도 같은 경험을 갖고 있다. 집안에서는 여자라서 사랑을 못 받고, 사회에 나가서는 ‘김여사’ ‘김치녀’ ‘된장녀’라고 불리며 성차별을 당한다. 취업을 할 때도 여자라서 떨어지고, 직장에 다녀도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보다 보수를 적게 받는다. 우리사회에 만연된 성차별 의식을 타파하고, 성희롱·성추행·성폭행 등 성폭력사건을 줄이기 위해서는 성평등 교육이 시급하다. 아래 글은 도내 모 대학 학생들이 여성학 강의 때 성차별에 대한 경험을 쓴 것이다. 학생들의 동의하에 이 글을 싣는다. 필자 이름은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했다.

만연된 여성비하 ‘김여사·김치녀·된장녀’
여성에 대한 혐오적 네이밍 현상을 우려한다

 

요즈음 우리나라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아지면서 지위가 높아지고 인권이 신장되어가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 비하, 혐오 분위기는 오히려 과열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여성은 비난의 대상이 되기 십상입니다. ‘김여사’, ‘김치녀’, ‘된장녀’ 많이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김여사’는 운전을 잘 못하는 여성을 지칭하고, ‘김치녀’는 금전적으로 남성에게 의존하려는 여성을 뜻하며 또 ‘된장녀’는 분에 넘치게 사치하는 여성을 뜻합니다. 모두 여성을 차별하며 인격을 깎아 내리고 있는 표현입니다.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ㅇㅇ녀’라는 제목 하에 여성에 대한 모멸성 글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여자만 ‘ㅇㅇ녀’라 칭하며 화제가 되고 조롱과 비난의 대상을 삼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된장녀, 김치녀를 비롯한 김여사 등은 근거 없이 여성을 네이밍해서 조롱하고 혐오를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치녀, 된장녀라고 불리는 표현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값비싼 가방을 들고 5천 원 하는 커피를 마시는 것이 과연 비판받을 일인가요? 남성들은 술자리에서 수십, 수백만 원을 씁니다. 하지만 남성이 범주화되어 비판받는 일은 드뭅니다. 애초에 김치녀, 된장녀는 없습니다. 가부장적인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프레임을 덧씌울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여사 또한 여간 듣기 불편한 단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성은 운전이 서툴 것이라는 편견 하에 여성 운전자들은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시 받고 차별받아 왔습니다. 운전이 서툰 여성들을 김여사라고 통칭하는데 최근 들어서는 운전이 미숙한 운전자들을 근거도 없이 모두 김여사라고 조롱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여성을 비하하는 성차별적인 용어라는 것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세태가 안타깝습니다.

한 달 전 쯤 페이스북에 올라온 영상 하나가 ‘인도 위를 달리는 김여사’라는 내용으로 수많은 ‘좋아요’와 댓글이 달리며 이목을 끌었습니다. 제보자가 멀리서 인도위를 주행하는 소형차를 촬영한 짧은 영상이었는데, 김여사라고 비난하며 올린 그 영상에는 운전자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전혀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댓글에서 많은 사람들이 “역시 김여사” 라고 하며 조롱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운전자가 남자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김여사라고 조롱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김여사라는 성차별적인 단어 사용을 하지말자.”라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저의 댓글을 향한 대댓글이 수백여 개가 달리며 그 속에는 ‘보슬아치’ 등 글 내용과 무관하게 저를 비판하는 욕과 함께 여성 혐오 내용이 난무했습니다.

성별이 운전 실력을 좌우하나?

근거 없이 김여사라 비난하는 사건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지난해 대전역 앞 차도에 차를 세워 많은 시민들에게 불편을 줬던 ‘무개념 차주’ 사건이 알려졌습니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를 두고 해당 차주의 성별이 여성일 것이라 짐작해, 여성 운전자들을 비하하는 단어인 ‘김여사’를 사용하며 비난했습니다. 또한 “집에서 솥뚜껑이나 운전해라” “여자들은 믹서기나 밥솥, 세탁기 정도나 만지고 집안 살림이나 해라” 등의 날선 비판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 있던 경찰관이 해당 게시물에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 댓글을 달며 상황은 역전되었고 대전역 무개념 주차 사건의 장본인은 남자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과연 모든 여성들은 운전에 소질이 없을까요? 10년 운전한 여성과 갓 면허를 따고 운전을 시작한 남성 중 누가 운전을 더 잘 할까요? 당연히 10년 경력의 여성 운전자 일 것입니다. 운전 실력은 성별이 아닌 경력의 차이입니다. 극단적으로 운전을 못하거나 주차 실수를 한 여성들의 사례 몇 가지로 전체 여성을 일반화하며 조롱하고 그를 넘어서 운전이 미숙한 모든 운전자들을 근거 없이 김여사라고 통칭하며 비난하는 것은 매우 부당한 일입니다.

이처럼 세계적인 남녀평등의 흐름과 달리 우리나라 여성은 여전히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불평등을 일상으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양성 평등이란 말은 지겨울 정도로 되풀이 되고 있지만 이는 무의미한 메아리로 느껴질 정도로 현실의 개선은 더딥니다. 법적, 제도적 보완도 중요하지만 사회 전반의 인식 제고가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심코 사용하는 양성평등을 저해하는 사소한 표현부터 고쳐 나가는 게 어떨까요? /박주선

여자라서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손녀라서 할아버지 사랑을 일찍이 포기해야 했던 사연

 

내가 간신히 기억할 수 있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께서는 나를 보며 웃는 일이 없으셨다. 할아버지께서는 나를 당신의 가족으로 여기지 않으셨다. 당신에게 있어 자식이란 오직 사내들뿐이었다. 여자는 남자들의 곁을 조용히 따라다니는 부속품 같은 존재여야만 한다고 여기셨다. 내가 종종 할아버지 댁 마당을 걷고 있을 때면 계집아이가 정신 사납게 움직이지 말고 얌전히 좀 있으라는 꾸중을 들었지만 어린 남동생이 울고 불며 소란을 피울 때에도 사내아이답게 씩씩하다며 웃어넘기곤 하셨다. 할아버지 댁에서, 어렸던 나의 콤플렉스는 내가 여자인 것 그 자체였다.

시간이 흐르고, 내가 여자인 것이 죄가 아니라는 것을 겨우 알았을 때 나는 할아버지의 사랑을 일찍이 포기했다. 그러나 돌도 아직 지나지 않은 친척 남동생에게도 주셨던 어린이날 선물을 여자형제들은 아무도 받지 못했을 때, 당신의 자랑스러운 장손인 나의 어린 남동생이 세뱃돈으로 100만원이 담긴 통장을 받을 때 나는 제사에 참여도 하지 못하고 방에 들어가 있어야 했을 적에는 상처를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에게 할아버지 댁과 친가는 언제나 어렵고 숨 막히는 공간이다. 그곳은 언제나 집안 여자들끼리 음식을 하고 제사상을 차리지만 제사에는 참여할 수 없고, 친척들끼리 밥을 먹을 때에도 겸상을 하지 못하고 남자와 여자가 밥상을 따로 쓰며, 모든 뒷정리 또한 여자들끼리만 해야만 하는 체념과 포기의 연속인 공간이었다. 어렸던 내가 받았던 상처를 나는 잊지 못하고 있다. 당신 시대엔 그랬으니까, 하며 혼자 위로를 해봐도 진실로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사고방식이다.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었던 어린 나는 여자로 태어난 것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나는 언제나 남자를 부러워했다. 단지 남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족에게 겪은 성차별은 그 무엇보다도 나의 자존감을 앗아갔다. 나의 타고난 성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것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성차별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친동생을 질투하게 만들었으며 가부장적인 남자에 대한 엄청남 거부감을 심어주었다. /정은주

남자와 여자를 이렇게 키워서야 되겠는가?
누나가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당했던 성차별 기억들

 

나의 유년 시절에 관한 기억은 마당에 감나무가 심어진 고덕동의 한국식 2층집에서 시작한다. 나는 4살부터 8살까지의 유년기를 60평가량 되는 그 집에서 조부모님, 부모님, 4살 터울의 누나와 함께했다. 어린 시절 기억을 반추하여 보니 나의 기억에 나의 조부모님은 가부장적이었고, 권위적이었으며 성역할에 관해 굉장히 보수적이었다. 특히나 우리 집안은 남자와 여자의 역할에 대한 유교적 관념과 기독교적 관념이 혼재되어 있어, 매우 보수적일뿐만 아니라 성에 대한 이야기 자체가 터부시되어왔다.

집안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그 4년 동안 나와 누나가 성적으로 차별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누나는 여자였기 때문에, 나는 남자였기 때문에 강요받는 역할이 있었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조부모님께 누나는 손녀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았다. 나는 남자라면 목소리는 장군처럼 크고 행동은 어른스러워야 한다며 크고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말하고 행동을 점잖고 예의바르게 해야 한다고 배웠고, 누나는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집안에서 큰 소리를 내거나 마루를 뛰어다녀서도 안 되었다.

손님이라도 오시는 날이면 누나는 좋든 싫든 방에 들어가 만화영화를 보며 얌전히 있어야만 했다. 그때마다 나는 할아버지 옆에서 몇 시간이고 손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졸음이 쏟아지고 발가락이 마비되는 것을 참아가며 무릎을 꿇고 앉아 버텨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어린 나이에 그게 잘 될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참 많이 혼났고, 누나는 나보다 훨씬 많이 혼났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7살이 되던 해에 네발자전거를 할아버지께서 사주셨는데, 어느 날 누나가 자기도 한 번 타보고 싶다고 해서 자전거를 빌려준 일이 있었다. 내 기억에 그 날 누나는 자기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자전거를 끌고 가서 저녁 먹을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자전거를 타고 운동장을 돌았다. 그런데 운동장을 한창 돌던 중 보조바퀴가 빠지는 바람에 누나는 중심을 못 잡고 넘어졌다. 누나는 어깨에 멍이 들고 무릎이 긁힌 채 만신창이가 되어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자전거는 체인이 빠져 바퀴가 돌아가지 않았다.

할머니께 꾸중 듣는 모습에 분가 결정

요즘 같았으면 손녀가 자전거를 타다가 다쳐서 돌아왔으면 다른 어떤 것보다 손녀의 몸을 걱정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 때 누나는 다친 것도 서러운데 얌전히 집에 있지 않고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가 결국에 자전거를 고장 냈다는 이유로 할머니, 할아버지께 참 많이 혼났다. 누나가 할머니께 꾸중듣는 그 모습에 부모님이 분가를 결정하셨다고 한다. 그 때 분가를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손자로서의 역할, 손녀로서의 역할 때문에 누나와 나는 그 집에서 4년 동안 피차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다. 조부모님으로부터 분가해 네 식구가 살기 시작한 후로는 그러한 손자, 손녀로서의 역할에 대한 압박은 없었지만 여전히 우리 집에는 조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고정된 성 관념이 남아있다.

군에 가서 그렇게 실컷 한 설거지도 집에 가서는 어머니에 의해 제지받는다. 억지로 세제를 손에 묻혀 식기를 뺏어들은 뒤에야 설거지를 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는 나와 누나의 잔소리 때문에 청소를 시작하고, 빨래를 널고, 가끔은 요리도 하신다. 요즈음은 이런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집안에서의 재미가 될 정도로 나와 누나는 성장했다. 어렸을 때 누나는 태권도를 배우고 싶었는데 여자라는 이유로 피아노를 배우고, 나는 피아노가 배우고 싶었는데 남자라는 이유로 태권도를 배워서 그게 그렇게 서러웠다는 이야기도 우스갯소리처럼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누나는 운동을 배우고 있고 나는 작년에 피아노를 배웠다. 시간이 흘러 서서히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떨쳐냄으로써 어느덧 조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 실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유년시절 차별의 기억은 나와 누나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지만, 성장한 이후 나와 누나가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답습하기를 거부하는 커다란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좋았던 기억보다 싫었던 기억이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유년시절의 기억은 나에게 큰 재산이 되었다. 적어도 내 손자, 손녀에게는 그렇게 대하지 않을 것이기에, 더더욱. /정훈

여자들은 명절과 제사가 정말 싫다
여자는 뼈빠지게 일하고, 남자는 노는 위계화된 성별규범 문제

 

나의 친가와 외가는 2016년에도 전통식 차례절차를 따르는 보수적인 집안이다. 명절이 다가오면 가족들은 일제히 긴장한다. 명절 당일 마주치는 친척 어른들의 눈에 모난 돌이 되지 않으려면 각종 ‘예(禮)’에 걸맞게 자신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나는 것은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님을 모두가 속으로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불평등한 성별 위계질서 때문에 여성 가족 구성원들은 남성 가족 구성원에 비해 이중으로 고통받고 있다.

명절 당일 우리 집안의 모습을 소개하겠다. 우선 가족 구성원 모두가 차례를 지내는 곳으로 일제히 모인다. 차례를 지내는 곳도 친가 외가 모두 ‘장남’이나 ‘가족 최고연령 남자 어른’이 사는 것이다. 차례를 지내는 장소에 모이면 남자들은 소파에 앉아서 TV를 시청하거나 술을 마시며 논다. 이들이 놀 때에도 여성들은 대부분 아무 불평을 하지 않고 차례를 지낼 준비를 한다. 그리고 잠시나마 남자가 여자들이 음식을 하는 것을 도와주면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남성인양 칭찬을 듣는다.

차례 준비가 끝나면 남자들은 여자들이 다 차려놓은 차례상 앞에서 실질적으로 차례 행사를 주관한다. 그리고 남자들만 절을 올린다. 혹은 여자들도 절을 올리되 남자들이 2번 절을 하는 것을 4번 절하도록 한다. 이는 여자가 남자들의 반 푼어치 인간이라는 뜻이다. 차례가 끝나면 남자들은 멋드러진 큰 상에서 진수성찬을 먹고 여자들은 조그만 소반 위에서 소박하게 먹는다. 음식을 먹는 중에도 여자들은 남자들의 수발에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음식을 다 먹고 난 후에도 모든 정리는 여자가 하며, 남자들은 여자들이 깎은 과일을 먹으며 잠시 휴식하다가 귀가한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차례 및 제사 방식이다. 우리 집은 이러한 방식을 충분히 따르는 집이며 시대가 변함에 따라 남자들이 ‘도와주는’ 정도가 조금 높아졌다. 이는 분명히 철폐되어야 할 악습이다. 왜냐하면 가족 구성원의 반을 담당하는 여자를 철저히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성이 위계화된 성별 규범에 신음하는 모습은 비단 제삿날에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일까? 답은 ‘아니오’이다. 우리나라는 OECD에서 남녀 소득 격차가 가장 큰 나라이다. 남자가 한 달에 100만원을 벌면 여자는 66만원을 번다. 그리고 여성들은 취업시장에서 같은 스펙임에도 불구하고 남성에 비해 홀대당할 때가 많다. 요즘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남자’가 최고 스펙이라는 말이 떠돌 정도이다.

세상은 온갖 불평등(성, 인종, 장애, 계급 등)으로 가득 차 있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바로 교육이다. 나는 미래의 예비교사로서 학생들을 정의로운 민주시민으로 자랄 수 있게 교육할 것이다. /김영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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