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페미니스트 마리아 미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권은숙 온갖문제연구실 연구노동자

▲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마리아 미즈 지음. 최재인 옮김. 갈무리 펴냄.

수년전 성폭력피해 장애여성을 지원하면서 지역 언론사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이슈가 되던 사건에 대해 질문과 답이 오갔고, 인터뷰가 끝날 무렵 피디가 지나는 말로 물었다. “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없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본질을 건드리는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이 후 ‘성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에 대한 물음은 현장에 있는 내내 화두였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마르아 미즈를 만났고, 모든 종류의 여성폭력에 대한 근원적 통찰을 얻게 되었다.

미즈는 책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서 ‘폭력’을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체제의 ‘비밀’로 분석한다. 여성의 몸과 노동을 착취할 때는 물론이거니와, 유럽의 초기 자본가가 외국 영토를 정복하고 식민화하는 수단 역시 ‘폭력’이었기 때문이다.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아메리카의 영토와 원주민에 대한 약탈이 없었다면, 또 노예제가 없었다면 근대의 자본주의는 순조롭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여성과 가부장제의 문제를 자연, 식민지, 자본주의와 연결시키는데·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여성의 가사노동과 비공식 영역의 노동을 강제로 숨긴다고 피력하며, 가부장제를 이용한 자본주의적 착취에 대한 기원과 본질에 대해 깊이 탐구한다.

미즈는 먼저 ‘남성 사냥꾼 신화’에 도전한다. 여성이 채집자와 초기 경작자로 우수한 경제적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사냥 덕분에 인류가 살아남았다는 잘못된 신화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남성은 여성이 구해온 음식을 먹고 사냥터로 향했다. 사냥은 위험도가 높은 경제활동으로 빈손으로 돌아오기 일쑤였고, 여성은 자신과 아이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남성을 위해서도 일용할 양식을 준비해야 했다. 한 예로 호주의 티위 여성은 음식의 50%는 채집, 30%는 사냥, 20%는 낚시를 통해 구했다. 초기 사회가 남성-사냥꾼의 생산성에 주식을 의존했다면 인류가 생존하지 못했을 것인데,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남성 사냥꾼보다 ‘여성 채집자’덕분이라는 것이다. 남성 지배가 결코 남성이 우월하게 경제적 기여를 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논지이다.

그리고 여성과 남성이 자연과 관계하는 방식을 그들이 사용한 도구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여성은 아이를 낳고 아이에게 먹일 음식을 만들며, 곡물과 다른 채소를 가꾸고, 뿌리를 파거나 열매를 담기위해 나뭇잎이나 껍질로 만든 바구니를 만들고, 땅 파는 막대기와 호미 등으로 자연과 교감하는 기술을 유지했다. ‘키우고 자라게 하기’위해 처음엔 자신의 몸과 그 다음 대지와 협력했는데, 새로운 생산자로서 여성은 첫 번째 ‘자급적 생산자’였고 ‘생산경제’의 창안자이기도 했지만, 자연에 대해 지배관계나 재산관계를 형성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이후 세상을 고민한다면 이 책

반면 남성은 활과 화살, 창 등 파괴를 위한 도구를 만들었고, 그것은 동물을 죽이는 데만 사용되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데도 사용되었다. 그룹지어 사냥을 나간 남자들은 채집 나온 다른 부족의 여성을 잡아서 노예로 삼거나 팔아서 재산을 축적하기도 했다. 남성의 도구는 자연과의 관계에서 폭력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해서도 폭력적이었다. 무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대상-관계는 기본적으로 약탈적이며 착취적인데, 사냥꾼 간의 긴밀한 유대나 규율이 근대적이고 자본주의적이며 제국주의적인 사회관계들을 보편적으로 이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행복한 여성’라는 이미지와 필요를 벗어난 광고, 중독에 의한 소비를 특히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행복한 주부’ 이미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가리는 허울로 작용하기 때문이며 식민지에서 훔치고 강탈한 물건의 대부분이 사치품이었고, 사치품에 관한 모든 것의 중심에는 여성이 있어왔다는 사실을 상기하라고 강변한다. 19세기와 20세기 자본주의 중심부에서 ‘어머니’와 ‘가정주부’ 이미지는 가정을 ‘소비와 사랑’의 사적인 영역으로 만들고, 남성 ‘부양자’에게 의존하는 여성상을 보편화 시켰다. 또 ‘가정주부화’는 자본가가 감당해야 할 비용을 외부화 한 것으로, 여성노동을 공기나 물처럼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자연자원으로 여기게 했다.

지참금 살해, 여아낙태, 음핵제거, 강간 등 모든 폭력은 여성을 경제적으로 ‘비생산적인’ 존재이고 ‘부담’이자 ‘짐’이라는 실제 사실과 다른 비합리적인 신념 때문이며 여성에 대한 잔혹행위는 자본주의와 별개가 아닌데, 자본주의 역사에서 한시도 사라진 적 없는 사납고 약탈적인 특성이 발현되기 때문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계급, 국가, 카스트, 인종, 자본주의 혹은 사회주의 체제, 제3세계 혹은 제1세계를 막론하고 주된 공통분모이다. 자본주의는 그 축적의 모델을 유지하기 위해 가부장적 남녀관계를 이용하고, 강화시키고, 심지어 발명도 해 냈다고 미즈는 연구결과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동맹해 유지해 온 작금의 파국경제를 벗어나는 길로 그녀가 제시한 페미니즘적 대안경제의 가능성은 지면부족으로 담지 못한다. 자본주의 이후 다음 세상을 고민하는 페미니스트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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