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의 40번째 소설 <소금>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이은자 前 공무원

▲ 소금 박범신 지음. 한겨레출판사 펴냄.

봄비는 산하와 들판에 스며들어 자연에 혈기를 돌게 하고, 따스한 햇살은 초목을 들쑤셔 꽃피게 한다. 복사꽃이 피는 4월에서 6월은 햇살이 좋아 소금을 만들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지금쯤 미풍이 불때마다 잔주름이 잡히는 고요한 염전에서는 강렬한 햇살을 못 이겨 몽글몽글 팝콘이 터지듯 흰 소금꽃이 피어나는 계절이기에 몇 년 전 읽은 박범신의 <소금>을 소개하려 한다.

이 책은 소설가 박범신이 <은교> 이후 2년 만에 발표한 신작이며 문단 데뷔 40년, 마흔 번째 소설이기도 하다. 신경숙의 <어머니를 부탁해>가 어머니의 실종을 다뤘다면, 박범신의 <소금>은 아버지의 실종을 다룬 점이 다르다. 다만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한 부모가 가출해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한 염부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실종된 아버지를 찾아 과거와 현재의 궤적을 쫓는 추리형식으로 전개되기에 독자에게 긴장감과 호기심을 불러 단숨에 읽힌다.

선명우의 아버지는 평생을 뙤약볕 아래 피부가 고약처럼 타들어가도록 소금을 긁어모으는 대파질을 하던 고단한 염부였다. 소금결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햇빛이었지만 결국 그는 강렬한 햇빛과 염분부족으로 소금더미에서 쓰러진다. 선명우는 그런 아버지를 잊지 못하고 평생을 죄스러움과 고통 속에 지내다 훗날 염전으로 다시 찾아들게 된다.

이 작품은 가족의 끝없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평생을 희생한 아버지가 가출하여 끝내 돌아오지 않는 자본과 소비문명에 대한 비판, 췌장암이 걸렸음에도 환자가 될 권리조차 없이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고통스런 삶과 부성을 잔잔한 아름다움과 깊은 감동, 그리고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미학적인 감성으로 그려내고 있다.

소금은 세상의 모든 맛

그의 소설 속에는 언뜻언뜻 아름다운 시도 보인다. 나슬나를, 덤턱스럽게, 얄망스럽게, 어연번듯한, 반주그레, 해낙낙한 등의 우리 고유어를 발굴하여 묘사하는 작가의 뛰어난 표현력과 미학의 문장력이 돋보인다.

“그 위에서 수 많은 꽃이 막 떠오르는 우주선처럼 장중한 타원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태양의 광채를 품은 비의적인 영원성을 아낌없이 내게 보여주었다”

“빈 운동장에 서 있으면 작은 것들의 소멸을 보는 애련함이 가슴에 나붓나붓 들어찼다”

“꽃그늘이 그녀의 이마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눈은 천지의 원근을 없애고, 땅거미는 세상의 경계를 없앴다” 등.

소금은 방부제이며, 조미료이고 생명이라고 할 만큼 우리 삶에 절대적인 물질이기에 인류는 오래전부터 소금을 얻기 위해 노력해 왔고, 역대 통일중국 통치자들의 관심대상 또한 항상 소금이었다.

소금은 염화나트륨 등 화학적 성분만의 물질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바닷물이 햇빛과 바람 등 하늘과 자연의 도움을 받고, 여기에 염부의 땀과 눈물이 정제되어 비로소 보석 같은 육각결정체인 소금이 탄생하게 된다. 그래서 소금은 짠맛만이 아니라 단맛. 신맛, 쓴맛, 그리고 인생의 맛까지 모든 맛을 지니게 된다.

소금이 우리 생활에 이렇게 귀한 물질인 것처럼 가족 또한 우리 삶의 절대적인 존재이자 원천이요. 살아가는 이유이며, 가장 사랑해야 할 대상이다. 가족은 혈연이기에 보이지 않는 신경망과 실핏줄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가족의 슬픔과 고통은 곧바로 나에게 전이된다.

이 책은 물질만능시대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경종을 울리고, 부모의 끝없는 헌신과 희생에 감동을 주며, 작가의 순도 높은 완숙미와 문학성이 돋보인다. 읽고 나니 마치 수액을 맞은 것처럼, 보양식을 먹은 것처럼 영혼에 살찐 포만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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