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침 TV방송을 보면 가끔씩 전업주부로 가사노동을 도맡아 하는 남성들이 나와서 아주 당당하게 살림이야기를 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어떤 남성은 이미 살림이 손에 익은 듯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아 장난으로 잠깐 하고 마는 것이 아닌 듯 싶다.
그걸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세상 말세라고 통탄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고, 어떤 사람들은 역시 역사는 변화 발전하는 것이라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을 듯 싶다.
어찌되었든 세상이 참 많이 달라지기는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 10년 전만 해도 남성이 그렇게 공개적으로 TV방송에 나와서 아내는 돈벌고 자신은 집에서 살림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했다면 아마도 덜된 남성 취급을 당했을 것이 뻔하다.
10년 전이면 여성민우회가 창립하고 2년쯤 지난 시기이다. 그 때 충북대 철학과 교수 한 분이 찾아와서는 정회원은 바라지도 않을 것이니 준회원으로라도 여민회 회원으로 받아달라고 사정(?)아닌 사정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유인즉 남성중심의 사회 속에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피해를 당하고 산 대다수의 여성들에게 죄를 갚는 길은 여성단체에 가입해서 열심히 봉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 여민회 최초의 남성회원이 돼서 열심히 봉사를 했다. 그때는 여성운동단체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여성운동을 하는 나로서도 약간은 신선한 충격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 후로 십 년 세월동안 여성단체에서도 남성들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싶다고 하면 두손들어 환영하고 있고, 많은 남성들이 여성민우회 후원회원으로 가입해 후원도 하고 활동도 하고 있다. 이제는 남성회원들 중에 왜 돈만 받아가고 남성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만들어 주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도 양성평등한 세상을 위해서 일한다고 하면서도 여성들을 위한 프로그램과 조직에만 신경을 썼지 열심히 후원해주고 참여해주는 남성들을 위해서는 변변한 프로그램 하나 생각을 못한 것이 사실이다.
며칠 전 여성민우회 행사에 한 남성을 초대했더니 "여성단체에 남자가 가도 되는 겁니까?" 라며 회신이 왔다. 아차 싶었다. 내 가까운 사람들조차 여성운동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할 정도로 제대로 설득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양성평등한 세상을 실현하는 여성운동의 물길을 열어갈 것인가.
10년 전 남성으로서 여성운동단체에 굳이 가입하고자 했던 그 교수님의 속내를 제대로 읽었다면 진정으로 우리의 동지이자 후원자인 남성들과 함께 하는 여성운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했을 것인데 그 속내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을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야 반성하게 된다.
그래서 이제 2002년 한해는 여성들에 대한 프로그램을 70% 한다면 남성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30%는 해야겠다 싶다. 이제 남성들도 많이 자각하면서 '딸들을 위한 아빠모임' '남성학 연구모임' '좋은 아빠모임' '전업주부를 희망하는 남성모임'등 많은 모임들이 생겨나고 있다.
여성단체도 여성들의 권익향상을 위해서 정열을 쏟는 30%만이라도 또 다른 피해자이며 우리의 동지들인 남성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힘써야겠다. 오늘은 장문의 편지를 써서라도 "남자가 가도 되는 겁니까?" 하고 물어왔던 그 남성에게 자세하고 친절하게 남성이 와야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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