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로 편지/ 홍강희 편집위원

▲ 홍강희 편집위원

나는 아침 저녁 출·퇴근길에 총선 후보들의 인사를 받는다. 아니 인사가 아니라 절이다. 후보들은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깊숙이 숙인 채 절을 한다. 자신의 이름을 앞뒤로 붙인 후보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자리에 서있다. 지난 겨울 눈보라가 치는 날에도 후보들은 출·퇴근길을 지켰다. 지금은 아직 예비후보 단계지만 본선거가 시작되면 후보 가족들의 절까지 받는다.

무료급식 행사장이나 경로잔치에 가면 유권자들은 후보들로부터 대접을 받는다. 이들은 앞치마를 치고 밥과 국을 푸거나 상을 나른다. 후보 부인들까지 거든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목욕탕에 가면 후보 부인들로부터 때밀이 봉사를 받았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후보 부인들은 어르신들 때밀이 봉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후보들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아마 유권자를 업고라도 다니려 할 것이다. 선거법이 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무슨 방법들이 더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출·퇴근길에 후보들의 절을 받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그 추운 아침에 몇 시간씩 떨고 서서 지나가는 차량에 대고 절을 해야 이름 석자를 알린단 말인가. 그리고 무료급식 행사에 가서 꼭 밥과 국을 푸고 상을 들어야 인지도가 높아진다는 말인가. 이런 것 하기 싫어 출마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의 말이 이해된다. 또 모 후보는 이런 겉치레 선거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거만하다는 소리를 오랫동안 듣고 있다.

그래서 말인데, 후보들은 유권자들에게 절 할 시간에 지역발전을 위해 앞으로 무슨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연구했으면 좋겠다. 우리지역에는 벌써 몇 번씩 총선에 출마하는 단골 후보들이 있다. 이들은 올해 또 나왔다. 올해도 정치신인보다는 낯익은 후보들이 더 많다. 그런데 예비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과거에 무슨 공약을 내세웠는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그의 얼굴과 이름, 과거에 몇 번씩 출마했다는 이력 정도만 생각날 뿐이다.

예를 들어 세 번째 도전하는 삼수생이나 네 번째 도전하는 사수생 중 특별한 공약을 해서 유권자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후보가 누가 있단 말인가.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된다면 무엇을 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는 데는 너무 소홀했던 것이다. 올해 네 번째 도전했다면 12년간 국회의원만 생각했다는 얘기다. 어떤 일에 10년만 꾸준히 매달리면 뭔가 소득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간혹 새벽부터 밤까지 선거운동에 매진하는 후보, 인기있는 공약을 많이 쏟아내는 후보를 좋은 후보라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이 있다. 선거운동에 열심인 후보가 부지런하고 일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 꼭 그렇지는 않다. 자신의 당선을 위해 뛰는 것이지 지역발전을 위해 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실제 좋은 후보와 그렇지 않은 후보를 잘 가려야 하고 ‘유사품’에 주의해야 한다. 물론 이것이 당선후에도 이어져 부지런하고 지역현안을 잘 챙기는 의원으로 남는다면 무엇을 바라겠는가마는 그런 사람은 드물다.

정치인 중에는 대통령병 환자, 국회의원병 환자들이 제법 많다. 몇 십년씩 대통령·국회의원 한 번 해보겠다고 선거 때마다 출마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실제 목적을 달성한 뒤 유권자들에게 실망만 안겨주는 경우를 많이 본다. 비전과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살기좋은 나라를 만들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실효성있는 비전과 철학을 제시하는 후보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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