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사유가 깃들어 있는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이연호 꿈꾸는책방 대표

 

▲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승효상 지음. 컬처그라피 펴냄.

서울 종로통에서 피맛(避馬)길이 사라지고 있거나 줄어든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옵니다. 그 옛날 고관대작들은 종로통 큰길을 따라 가마나 마차를 타고 궁에 드나들었습니다. 길에서 가마나 마차를 만날 때마다 허리 굽혀 예를 차려야 했던 서민들의 처지에서 보면 종로통 큰길은 꽤나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그래서 마련해 둔 길이 바로 피맛길이었습니다. 작은 골목길을 만들어 일상의 번거로움을 살짝 피해가는 지혜를 보여주는 뒷골목이었지요. 뒷골목은 빡빡하게 짜인 일상에서 조금은 느슨하게 이완된 삶의 여지와 여백을 담는 공간이었습니다. 혹은 역설적으로 삶의 활력을 만들어내는 창조적 공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일상이란 것이 보이는 것들로 촘촘히 이뤄지는 것이라면, 일상의 단조로움을 넘어서는 삶의 온전함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교차하면서 만들어내는 다양한 무늬로 짜이기 마련입니다. 그 무늬에 대한 사유와 성찰이 바로 역동적인 삶을 구성하는 상상의 힘이 됩니다. 어쩌면 이것이 조선 오백 년의 역사를 이끌어 온 힘의 근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피맛길 같은 골목조차 없었다면 서민들의 삶은 얼마나 더 팍팍하고 윤기 없는 것이었을지 가늠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라지는 피맛길이 서울에만 있을 리 없겠지요. 효율과 무한 경쟁의 논리로 자행되는 모든 개발과 파괴의 행위가 여지와 여백을 지워내고 결국은 삶의 근원을 사라지게 하고 있음을 곳곳에서 봅니다.

이럴 때 건축가 승효상의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를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청주시의 결정이 무엇보다 반갑고 지혜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승효상은 건축을 부의 축적 과정으로 바라보는 속물적 시선을 거부하는 건축가입니다.

또한 예술적 감성을 자극하는 조형물로 취급하려는 예술적 태도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고개를 젓습니다. 그에게 건축은 단지 삶을 담는 그릇일 뿐입니다. “건축가의 임무는 외관을 스케치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다”라는 사실을 잘 아는 그는 초라하고 남루하지만 나누며 살아가는 달동네 골목길에서 '승효상 건축'의 화두를 얻기도 했습니다. 스스로를 추방함으로써 존엄해진 이들의 삶과 죽음을 자리를 살펴 진정한 화해와 공존의 가능성을 모색하기도 합니다. 인문학적 사유로서 건축을 바라보는 그의 생각이 새로운 천 년을 준비하는 문화의 도시, 청주시에 의미 있는 선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에게도 길은 언제나 각별한 영감과 사유의 대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대구 '유가사(瑜伽寺)'에 이르는 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유가사에 이르는 길은 고졸한 풍경에 소리 없이 담겨 있는 길입니다. “도무지 길 같지 않은 길이며 보이지 않는 길”입니다. 그 길은 대웅전을 향해 있지도 않고, 나한전에서 멈추지도 않습니다. 산신각마저도 무심히 지나는 그 길은 저 멀리 비슬산 산중으로 올라가는 듯하다가 끝내는 아스라이 사라지고 마는 길입니다.

“종교의 목표가 우리의 삶에 대한 성찰이라면, 절로 가는 길은 그 종점이 있을 수 없는 게다. 여태 나는 보이는 길만 걸었고 목적지를 가져야만 걷지 않았을까(중략).... … 그리하여 이 '보이지 않는 길'은 나의 삶에 잊히지 않는 길이 되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에게 길은 세상을 '가르고' '나누는' 구분이 아닙니다. 길은 “선이 아니라 공간이며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머무는 곳이고, 눈으로 보는 곳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곳”이라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길'이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가는 장엄을 여기서 보게 됩니다.

<사피엔스>를 저술한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가 가진 언어의 진정한 특이성은 단순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에 있지 않다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과 그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는 능력이 오늘의 인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며 바로 이 허구에 대한 신뢰가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 집단적 상상”'을 가능하게 했다고 합니다. 결국, 이 '집단적 상상'이 신화의 영역을 만들어냈고 “그런 신화들 덕분에 사피엔스는 많은 숫자가 모여 유연하게 협력하는 유례 없는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하고, 보이지 않는 공간을 만들어 보이는 것과 나란히 바라볼 줄 아는 사유와 성찰이야말로 사라져가는 '피맛길'을 지키는 참된 힘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파리 남서부에 있는 '사르트르 성당'에는 순례자를 위한 미로가 있다고 합니다. 무릎을 꿇고 미로 가운데를 향해 기어가다 보면 중심원에 거의 다다랐다고 여기는 순간 미로의 방향은 다시 중심원과 멀어지기 시작하고 끝내는 가장 바깥 둘레로 다시 나오게 된다고 합니다. 다시 중심원을 향해가기를 일곱 차례나 반복하고 나서야 중심원에 이르게 된답니다. 삶의 진리를 깨닫는 어떤 말씀이 거기에 있지는 않을까요? 단 몇 걸음만으로 중심에 닿는다면 결코 들을 수 없는 어떤 말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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