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준비 측과 단체장 모두 생각 바꿔야···자칫하면 행사장 찾다 임기 끝
“선거법에 구체적인 행사 참석 기준과 횟수 제한하면 지킬 것” 여론 있어

자치단체장 행사장순례 뒤집어보기
단체장들에게 시간을 주자

 

▲ 지자체 행사는 신년인사회(사진)로 시작해 타종식으로 끝난다. 올해 신년인사회에도 대부분의 기관·단체장들이 참석했다. / 육성준 기자 eyeman@cbinews.co.kr

자치단체장들의 일정은 지자체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일정을 자세히 올리는 지자체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청주시는 그동안 시장일정과 축제행사, 공연전시, 강연, 회의, 교육 등을 구분없이 함께 올려 시장이 어떤 행사에 참석했는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취임 1년 7개월만에 시장 일정과 기타 행사를 분리해 보여주는 작업을 현재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외부업체에 외주를 맡겼다는 것이나 2주일이 넘도록 마무리가 되지 않고 있어 불만을 사고 있다.

반면 옥천군은 군수일정을 지난주-이번주-다음주로 나눠 일목요연하게 정리, 한 눈에 볼 수 있다. 단양군도 군수 일정을 잘 정리해 한 눈에 들어온다. 단체장들의 일정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게 전부가 아니다. 주말이나 퇴근 후에도 행사참석이 이어지나 이를 밝히지 않아 알 수 없다. 모 비서실 관계자는 “일정을 모두 올리지는 않는다. 굳이 알릴 필요가 없는 것은 제외한다”고 말해 특정단체 행사참석이 있음을 시사했다.

“정기총회, 회장 이·취임식 참석 왜?”

단체장들이 시간을 갖고 공부하고 시민들을 위해 뭔가 구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남기헌 충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선거중심으로 움직이는 단체장의 마인드가 우선 바뀌어야 한다. 고유업무를 추진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 선거에서 당선되면 다음 날부터 차기 선거를 위해 뛴다. 그러다보면 4년 임기 내내 행사장 찾아다니다 말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주민과 소통하는 행사라면 당연히 참석해야 하지만 얼굴보이기 위한 것이라면 갈 필요가 없다. 이제 초청장 받았다고 무조건 갈 게 아니라 꼭 필요한 것만 선별해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들을 ‘표’로 보고 ‘표’를 얻기 위해 행사장에 참석하는 것이라면 자제하라는 것이다.

또 남 교수는 “시민사회단체에서는 행사 때 자치단체장 초청안하기 운동 같은 것을 벌이고 정책토론회처럼 여론수렴을 할 수 있는 행사를 여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윤정 충북청주경실련 사무처장은 “표 관리를 위해 가는 건 무의미하다. 이런 행사장 참석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주로 관변단체라 일컬어지는 단체들은 정기총회 때, 회장 이·취임식 때도 단체장을 초청한다. 이런 행사에 왜 단체장이 필요하고, 단체장들은 왜 이런 곳까지 다니려고 하는가. 그럼 일은 언제 하는지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최 처장은 행사를 주최하는 측과 단체장의 생각이 동시에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기관·단체 총회나 회관 준공식, 기관장 이·취임식, 노인대학 졸업식까지 굳이 시장·군수가 가야 하느냐고 보는 여론이 많다. 이근규 제천시장은 지난해 10월 청전동 아파트 다목적회관 준공식, 관광협의회 총회, 11월에는 한수면 상노리 다목적회관 준공식, 12월에는 노인대학원 졸업식 등에 참석했다. 그리고 정상혁 보은군수는 지난 1월 MG보은새마을금고 정기총회, 한국여성농업인 보은군연합회장 이·취임식, 지난해 11월에는 마로면 노인대학 졸업식 등에 참석했다.
 

행사참석 기준 생기면 단체장도 ‘OK’

자치단체장은 공직선거법상 선거일 60일전부터 선거 끝날 때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에 대해 규제를 받는다. 공직선거법 제86조 2항에 따르면 직능단체 모임, 교양강좌, 사업설명회, 공청회, 체육대회, 경로행사, 민원상담 등 각종 행사를 개최하거나 후원할 수 없다. 다만 법령에 따라 개최하거나 특정일, 특정시기가 아니면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행사, 집단민원 또는 긴급한 민원을 해결하기 위한 행사나 모임은 제외된다.

따라서 오는 13일부터 총선 끝날 때까지 직능단체 모임, 교양강좌 등을 개최하거나 후원할 수 없다. 이럴 때 외 자치단체장의 행사참석을 규제하는 것은 없다. 단체장들이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지나친 행사참석을 규제하려면 선거법에 명시하는 것이 가장 확실할 것이라는 여론이 있다. 선거법에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지키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도지사는 연 몇 회, 시장·군수는 몇 회라는 식으로 횟수를 제한하고 각각 갈 수 있는 행사를 명시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충북도선관위 관계자는 “그런 여론이 있을 수 있으나 선관위에서 답할 사항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행사참석 기준이 생기면 단체장과 지자체 입장에서도 나쁠 게 없다. 밀려드는 행사참석 요청을 힘들이지 않고 거절할 수 있고, 거절에 따른 ‘후유증’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도가 없으면 행사장만 순례하다 임기를 마치는 단체장이 많을 것이다. 한 단체장은 “오라는 행사 다 가다보면 일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절반 정도 가고, 절반은 어렵게 거절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곳은 오고, 어느 곳은 오지 않는다는 말이 생길까봐 솔직히 눈치를 보고 있다”며 “기준이 생긴다면 환영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또 모 단체장은 “한 때 충북시장군수협의회에서 기준을 만들자고 나섰지만 강제력이 없으면 지켜지기 어렵다. 누구는 지키고, 누구는 지키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을 것이다. 행사장에 가서 주민들을 만나고 악수하는 게 선거운동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기 때문에 자율적으로는 안될 것이다. 다른 지역 사례를 참고해 우리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편 단체장의 일정을 보면 그 단체장이 어떤 분야에 주력하고 그 지자체의 주력산업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충북도내 어떤 지자체도 그런 것을 가늠할 수 없다. 대부분의 단체장들이 판에 찍은 듯 똑같은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얼굴 비추는 행사를 사절하고 특별한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단체장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다보니 충북에는 지역에 맞는 산업과 문화를 발굴해 전국적으로 이름 난 지자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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