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세평/ 오진숙 변호사

▲ 오진숙변호사

최근 청주에서 현장실습 나온 여고생을 상사가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하여 그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 학생은 그 전에도 업무 중에 출장지의 직원에게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하여 이 사건 역시 수사 중에 있다.

성폭력상담소의 통계에 따르면, 직장 상사에 의한 성폭력 2위(15%)를 차지할 정도로 직장 내 위계질서 속에서 여성 노동자는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다. 하물며, 현장실습으로 일을 처음 시작한 청소년은 이러한 폭력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상사는 실습을 나온 여고생에게 늘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잘하라’고 말했다. 그녀보다 앞서 일을 시작한 직원들 중 그의 말을 잘 들어서 일을 잘하게 되고, 잘 되었던 모범사례를 자주 들려주며, 그녀도 그렇게 말 잘 듣고 ‘잘’하면 다 잘될 거라고 늘 말했다.

결국 자신의 말을 잘 듣고 잘 지내는 것이 곧 일을 잘하는 것이라고 교육하면서, 한편으로 그녀를 범하기는 참 쉬웠는지도 모른다. 그의 말은 더욱이 효과적이었다. 현장실습을 나오기 전 학교에서도 ‘꾹 참고, 말 잘 듣고 잘 해야 한다.’는 당부를 단단히 듣고 일을 시작했던 참이었으니까.

이렇게 현장실습이란 이름으로 노동현장에 발을 들인 청소년들은 그 흔한 지옥알바에 단련된 학생이라 할지라도 배겨내기 녹록치 않은 취약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노동자처럼 일하지만 학생신분도 가지고 있는 이들은 현장실습에서 잘못하면 학교에서도 징계를 받는 이중의 부담을 안고, 각종 인권침해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결국 학생도 아닌, 노동자도 아닌 제3의 위치 어딘가에 서 있는 그들에게, 세상이 만만치 않은 것임을 배우는 인생 공부로 치부하기에는 지나친 상황까지 흔히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요즘 청소년들 당차고 무섭다고들 하지만, 청소년노동인권교육 현장에서 만난 청소년 노동 경험이 있는 아이들 참 착하다.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하는 편의점의 청소년 노동자들에게, 밀린 임금을 못 받고 있는 고깃집 청소년 노동자들에게 노동부에 신고하고 임금을 청구하라고 하면 요즘 사장님 매출이 줄어서 힘들 것이라며 걱정하고, 아는 사이에 어떻게 그러냐고 말하고, 성희롱을 당한 여학생에게 ‘싫다고 분명히 말하라’고 하면, 그럼 다음날 어떻게 얼굴을 보냐고 반문하는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이제 노동자로 세상의 첫 걸음을 내 딛는 청소년들에게 그저 말 잘 듣고 잘하라고 말할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잘하라’기 보다는 ‘당당하라’고 말하자. 자신의 노동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래서 당연히 법적으로 보장되는 많은 권리들이 있다는 것을 먼저 말해주자. 꾹 참고 견뎌내는 것이 잘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는 주장하고 그만큼 자신이 맡은 역할은 열심히 해내면 된다고 말하자.

상사가 주는 술을 왜 다 받아마셨냐, 아버지뻘 되는 상사가 어깨를 감싸고 허리를 주무르고 껴안으려고 할 때 왜 싫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못했냐고 묻지 말자. ‘어른이 다 먹지도 않았는데 일어나?’라는 말에도 머뭇하는 아이들에게, 이미 우리는 그들에게 꾹 참고 잘하라고 수없이 말해왔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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