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발전연구원 배명순 박사

사진/육성준 기자

2012년 9월 27일, 구미시 소재 휴브글로벌이란 기업에서 불산 12톤이 누출됐다. 탱크로리에서 저장탱크로 불산을 옮기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출동한 소방대는 이 회사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누출된 물질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소방관 18명은 밸브를 찾아 차단하는데 8시간을 소비하며 부상을 입었다. 사고의 여파는 컸다.

노동자 5명이 사망하고 주민 1만2000명이 병원을 찾았다. 가축 4000여 마리가 죽고 212ha의 농작물이 고사했다. 소방관 18명은 열려진 밸브를 찾아 차단하는데 8시간을 낭비하며 부상을 당했다.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 ‘만약’이라는 가정은 무의미하다. 가정이 성립하면 사고를 예방 할 수 있었겠지만 현실은 정반대였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다. 그래도 만약 구미시가 평상시에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회사에 대한 집약된 정보와 주민들에게 공개된 정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구미시 뿐만 아니라 우리 지역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창과학산업단지와 청주공단이 전국 발암물질의 30~40% 정도를 배출한다. 청주 산단에 소재한 (주)GD에서 불산누출 사고가 발생하더니 한 달이 멀다 하고 화학물질 누출사고가 발생했다.

배명순(45,충북발전연구원) 박사는 수질오염 분야 전문가다. 대기오염분야는 그의 주 전공분야는 아니다. 연이어 발생한 충북지역의 화학물질 누출사고, 발암물질에 대한 주민들의 불안감 을 그냥 넘길 수는 없어 연구를 시작했을 뿐.

2013년 하반기 경 배 박사는 충청북도 유해화학물질 위험성 완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에 돌입했다. 수 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그해 12월 과제를 끝냈다. 보고서에는 충북지역의 화학물질 이동량, 사용량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실었다. 배 박사가 공개한 데이터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국립환경과학원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반인이 이 자료를 보고 거주지 주변에서 존재하는 위험의 크기를 알 수는 없다. 의사가 처방전을 라틴어로 쓰는 이유는 환자가 모르게 하기 위해서라는 농담처럼 이 자료도 마찬가지였다.

배 박사는 공개된 데이터를 이용해 화학물질 위험 지도를 제작했다. 충북 도내 각 지역별로 위험의 크기와 화학물질 사용량과 배출량에 대한 정보를 지도로 표현했다.

한국에서 첫 번째 만들어진 유해화학물질 위험 지도였다.

한국에서 첫 번째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배 박사가 제작한 화학물질 위험 지도는 환영받지 못했다. 공직사회는 매우 불편해 했다. 충북발전연구원의 상급기관이라 할 수 있는 도청의 분위기도 그랬다.

연구자에서 미운 오리로

2014년 4월, 배 박사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화학물질 위험지도를 공개했다.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 주관 토론회에서 관련 정보를 공개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오창 산단의 디클로로메탄 측정 결과를 두고 지역 국회의원의 발표에 이의를 제기했다.

배 박사의 존재는 이제 공직사회에서 미운 오리 처럼 돼 버렸다. 그 연장선 이었

을까. 충북발전연구원은 2년마다 반복되는 그의 재계약을 거부했다. 충북발전연구원은 배 박사의 연구 실적이 충분한데도 재계약이 안되는 평가를 매겼다. 그가 2007년 입사 후 한 번도 이런 평가를 받아본 적도 없다. 누가 봐도 형평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홀로 시작된 그의 투쟁에 청주노동인권센터가 손을 내밀었다. 동료도 나섰다. 그동안 침묵했던 동료 연구원들과 함께 전국공공연구노조에 가입했다. 배 박사는 노조 지부장을 맡았다.

2014년 9월경 그의 1단계 투쟁은 마무리됐다. 부당해고 여부를 판단하는 충북지방노동위원회 심판 회의 결정을 앞두고 신임 충북발전연구원장이 재계약을 거부한 것을 취소하기로 했다.

해고 문제는 마무리 됐지만 그의 투쟁은 현재도 계속된다. “충북발전연구원 내 30여명의 동료 비정규직 연구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2단계 투쟁 목표다. 그는 30여명의 비정규직 동료들이 없다면 충북발전연구원의 업무는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가 이것을 목표로 하게 된 데에는 상시적인 고용불안과 차별로 인한 소외감을 가진 연구원들이 연구과제에 집중 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충북발전연구원, 노조 일 뿐만 아니라 배 박사가 도전하고 있는 활동은 철인3종 경기.

철인 3종 경기는 수영과 사이클, 달리기 세 종목으로 구성된다. 배 박사가 철인 3종 경기를 시작한 지는 햇수로 3년 째. 철인 3종 경기 중 ‘하프’ 코스인 수영 2km, 사이클 90km, 마라톤 21km를 완주했다.

힘 있는 분들의 눈치에도 아랑 곳 없이 자기 길을 갔던 사람. 그리고 철인 3종과 나홀로 투쟁. 유해화학물질과 시민안전 사이에서 배 박사라는 감추어진 주머니속의 송곳이 세상을 향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