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신 ‘고등학생이 된 아들에게’ …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연규상
(주)열린기획 대표

▲ 연규상 대표

고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아빠가 권해준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고 네가 그랬지. “와~ 대박! 이거 읽다가 머리가 어떻게 되는 줄 알았어요.”

미안하다. 아빠 때문에 학기초부터 또 머리에 쥐가 났구나. ‘대박’이라는 말 속에는 ‘마음의 양식에 불후의 명작이라더니, 믿을 놈 하나 없네’라는 뜻도 들었을 줄 안다. 원래 세상에는 믿을 놈이 많지 않은 법이지. 게다가 그런 반응은 아주 정상적이기도 하고. 이 책을 읽은 사람치고 몸이 배배 꼬이고, 경미한 신경쇠약에 시달리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머리에 쥐가 난 아들아. 교육을 통해 배운다는 것은 기존의 가치관을 흡수하는 것인데, 온몸으로 깨치지 않고 들입다 구겨 넣기만 하면, 지식은 삶의 곤경을 풀어주는 지혜로 자라지 못하고 도리어 자신을 억압하는 괴물이 되기도 한다는구나. 입시교육의 최전방에 ‘공부기계’로 투입돼 그렇잖아도 머리에 쥐가 나는 판에, 아빠가 이 책 좀 읽어보라고 잔소리를 끌어부었던 이유는, 오래오래 무감각하게 사느니 미리 머리에 쥐가 나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란다.

예방접종이라 여기고 <고도> 속으로 들어가보자. ‘시골길,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1막의 무대 설명이다. 2막으로 넘어가도 무대는 그대로이다. ‘다음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라는 무성의한 설명은 애당초 새로운 사건이 펼쳐질 거라는 기대를 품지 말라는 경고이다.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강력한 암시이지.

이 암시는 정신없이 떠들어대는 등장인물들의 잡담과 맥락없는 행동을 통해 더욱 분명해진다. 두 명의 나이든 부랑자 디디(블라디미르)와 고고(에스트라공)는 춤추고, 체조하고, 욕하고, 누군가를 흉내내고, 모자를 번갈아 쓰거나 구두 한 짝을 벗지 못해 쩔쩔매는 한심한 짓거리를 하며 지독한 권태를 견딘다. 이유는 오직 하나, 고도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지. 고도는 누구일까. 신일까? 자유일까? 희망일까? 빵일까? 그럴지도 모르지.

고도와 여래, 지금과 여기

▲ 고도를 기다리며 사뮈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민음사 펴냄.

여기서 좀 생뚱맞은 얘기를 해야겠구나. 불현듯 고도는 여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으니 말이다. 그래, 부처 말이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면서 부처는 ‘여래’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그 이름이 생각할수록 묘하더구나. 여래(如來), 마치 올 것 같다는 뜻이잖니? 소년을 통해 내일은 꼭 온다는 전갈을 보내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는 고도 때문에 연상된 것이겠지만, 내친김에 ‘고도’ 대신에 ‘부처’를 넣어 물어보자.

부처는 어디에 있을까? 불당에? 절에? 경전에? 서역에? 부처는 ‘일체의 법이 모두 불법(一切法皆是佛法)’이라고 말하더구나. 세속과 탈속을 가리지 않고 부처는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는 말이니, 고개만 돌리면 피안(回頭彼岸)이라는 말도, 내가 곧 부처라는 말도 그럴듯해진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니? 우리는 왜 고도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만 궁금해하는 걸까. 정작 왜 고도를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모른 체하면서 말이야. 디디와 고고에게 기다림이 곧 형벌인 까닭은 바로, 왜 기다려야 하는지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미래에 희망을 저당잡힌 채 현재의 부당함에 굴복하는 한, 우리 또한 언제나 디디나 고고가 될 것이 분명하다. 관습의 노예가 된 디디와 고고의 초상은 주종관계인 푸조와 럭키를 통해 재차 확인되고 있지.

그런데 아빠도 이 미혹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걸 고백해야 겠구나. 입시교육을 비판하면서도 네가 ‘빡세게’ 공부시키는 ‘명문사학’에 진학하기를 은연중 기대했을뿐더러, 네 앞날에 가장 넓은 선택지를 확보하는 길은 오직 공부 뿐이라고 속으로 자인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니 말이다. 이제 내 머리에서도 쥐가 나려 하는구나. 이번 두통은 피차 비긴 것으로 할까?

하지만 아들아, 이것만은 믿어주렴. 지금껏 단 한 번도 너를 미래형으로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 언제나 지금의 네가 내 생애에 받은 최고의 선물이었다는 것. 그러니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고 만족하기를. 그게 <고도> 속에서 여래를 찾아보라고 한번 억지를 부려본 까닭이니, 아들아, 제발 이 말만은 의심하지 말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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