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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학습자를 아시나요?

“애정 쏟으며 끼고 가르치니 효과 있어요”

2020. 10. 20 by 최현주 기자

- 충북 지역아동센터 경계선지능아동 위한 맞춤형 교육 눈길
- 인천, 경기남부, 광주, 충남, 충북 전국 5개 지역 1000여명 참여
- 충북 38곳 190명 대상 일대일기초학습, 사회성향상 프로그램 진행
- 올해부터 2022년까지 3년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시범사업
- “쟤네들만 왜 따로 해요?”…낙인 막기 위해 담임교사제 도입
- 더 이상 개인문제 아냐…힘들지만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

카드로 한창 한글공부를 하고 있는 초등학교 2학년 A군. 지난 5월만 해도 A군은 한글읽기를 어려워했다. 드문드문 읽었고 읽다가 빠뜨리는 곳도 여럿 있었다. 쓰기도 잘 되지 않아 “넌 왜 글씨가 날아가니?”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수학도 마찬가지여서 구구단 외우기가 A군에겐 힘든 과업이었다.

그랬던 A군이 놀랍게도 세달 만에 한글을 뗐다. 수학도 자신감이 붙어 이제는 구구단을 노래한다. 공부에 자신감이 생기니 친구들과의 놀이에도 적극적이다.

“일단 일대일로 아이를 끼고 가르치니까 세달 만에 한글도 떼고 구구단도 웬만큼 되요. 마음의 안정도 조금씩 찾아가는 것 같고요. 효과가 있으니까 정말 뿌듯합니다. 앞으로도 이 사업이 계속 진행됐으면 좋겠어요.”

청주시 율량동에 있는 A지역아동센터에 파견된 이향숙 강사의 말이다. 이향숙 씨는 A센터에서 경계선지능아동 5명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고 있다.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대일로 한글 등 기초학습과 일주일에 한 번씩 사회성향상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사회성 향상 프로그램은 5명이 모두 참여할 때도 있고 일대일로 진행할 때도 있다. 컵 쌓기, 아이클래이로 만들기, 보드게임 등을 함께하면서 규칙을 익히고 상대방에게 양보하는 법을 몸으로 배운다.
 

A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A 지역아동센터 제공)
A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A 지역아동센터 제공)

“처음 5명이 모두 참여할 땐 난리도 아니었어요. 정신이 하나도 없고 수업을 하고 나면 진이 다 빠졌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규칙도 잘 따르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재밌어 합니다. 가끔 골을 부릴 때도 있지만 이맘때 아이들이면 누구나 하는 행동이에요.”

이 강사는 “경계선지능아동들도 꾸준히 반복하고 애정을 쏟으면 어느 정도 교과도 따라갈 수 있고 사회성도 좋아집니다. 아이들과 어울리는데 문제가 없어요. 물론 그 과정이 쉽지 않고 힘들긴 하죠. 그러나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시스템 구축이 궁극적인 목표

경계선지능아동을 위한 프로그램이 충북의 지역아동센터(센터)에서 진행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6월부터 오는 11월까지 센터 한곳 당 5명의 경계선지능아동 또는 의심학생을 1명의 파견교사가 전담해 기초학습과 사회성향상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충북지역 180개 센터 중 38(청주 25개, 청주외 시·군 지역 13개)개가 참여하고 있다. 참여하는 학생은 모두 190명이다.

이 사업의 공식 명칭은 ‘경계선지능아동(느린학습자)의 사회적응력 향상 지원사업’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원하고 아동권리보장원이 사업을 총괄한다. 또 지역아동센터충북지원단(충북지원단)이 실제 사업을 진행한다.

지역아동센터충북지원단이 진행한 지역간담회 모습.(충북지원단 제공)
 지역아동센터충북지원단이 진행한 지역간담회 모습.(지역아동센터충북지원단 제공)
지역아동센터충북지원단 제공.
지역아동센터충북지원단 제공.

이 사업은 전국적인 사업으로 현재 인천, 경기남부, 광주, 충남에서도 각 지역의 센터지원단이 진행하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올해 5개 지역을 시작으로 내년에는 9개 시·도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 사업의 목적은 사업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경계선지능아동들의 인지와 학습능력, 사회적응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지능지수가 71~84인 경계선지능인들은 사실 그동안 장애인과 비장애인 경계에서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

특히 이 사업이 센터에서 실시되는 이유는 센터를 이용하는 아동들이 이용하지 않은 아동에 비해 경계선지능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충북지원단에 따르면 경계선지능아동 비율은 13.5%인데 센터를 이용하는 아동의 경계선지능 비율은 15.6%다.

충북지원단 이창희 단장은 “경계선지능인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이들은 학교폭력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고 말 그대로 복지의 사각지대죠. 경계선지능에 대해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의 이해를 높이고 사회에서 자립할 수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이 사업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라고 설명했다.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경계선지능아동

충북지원단은 이 사업을 진행하며 한 가지를 우려하고 있다. 바로 낙인효과다. 경계선지능아동만을 위한 별도의 학습이나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면 다른 아이들에게 무시당하거나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A센터는 주목할 만 하다. A센터에서는 경계선지능아동들의 낙인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아이들을 대상으로 담임제를 실시했다. 센터장, 생활복지사, 돌봄교사, 파견강사, 사회복무요원이 모두 참여해 교사가 되고, 교사 1인당 아이들 4~5명이 모여 한 반이 되는 것이다. 결국 경계선지능아동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에게도 ‘담임선생님’을 배정한 것이다.

A센터의 센터장은 “예전에는 20여명을 한꺼번에 돌보고 교육하다보니 못 따라오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방임하게 됐는데 지금은 파견선생님이 돌봐주니까 경계선지능아이들도 자신들만 특별한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라 모두 같이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5개월 남짓 진행된 사업이긴 하지만 이 사업은 이미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셈이다.

충북지원단 느린학습자 지원사업 담당자 윤상이 씨는 “현장 모니터링을 했을 때 아이들이 우리선생님이라고 부르고 껴안는 모습을 보고 울컥했습니다. 아이들의 지지대가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라며 “경계선지능인 문제는 이제 더 이상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입니다”라고 전했다.

한편 충북지원단에서는 프로그램 진행 외에도 각종 홍보 사업을 벌여 경계선지능인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인식개선에 일조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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