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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방송 이재학 PD 사망 사건

고 이재학 PD, 그의 명복을 비는 추모결의 대회 열려

청주방송 비정규직 PD의 ‘죽음’…49일이 지나도 바뀐 건 없어 

2020. 03. 24 by 김다솜 기자

“그날 이후 청주방송은 달라진 것도, 방송하는 것도 없습니다. 겉으로는 사과도 했고, 본인들이 할 일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뒤에서는 이 사건에 책임을 느끼는지 의문이 들 만한 짓을 서슴없이 하고 있습니다.”

형이 세상을 떠난 건 눈 내리던 겨울이었다. 49일이 지나는 동안 계절도 바뀌었다. 그러나 형을 떠나보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고 이재학 PD의 동생 이대로 씨는 분노와 그리움이 뒤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 김다솜 기자
ⓒ 김다솜 기자

얼마 전 이두영 청주방송 회장이 직원 조회를 열어 유족들에게 협조하지 말라고 재갈을 물리고, 유족들이 연락하는 데도 받아주지 않았다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고, 심지어 유족들이 돈을 원한다고 말했다는 것…. 그는 고 이재학 PD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유족들 앞에 벌어지고 있다고 외쳤다. 

“이게 진짜 그들이 원하는 반성의 태도입니까? 이게 머리가 있고, 심장이 있는 인간이 할 짓인가요? 이 건물 안에 있는 다른 동료들을 위해서 (형은) 혼자 외롭게 싸웠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저희 형이 외롭지 않게 억울함을 풀고, 이제라도 편해지도록 나서주십시오.”

영정 속에서 이재학 PD는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옅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이재학 PD의 넋을 위로하고 망인의 영혼이 극락으로 가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긴 발원이 시작됐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 7명이 함께했다. 스님들은 두 손을 모으고 정좌했다. 목탁 소리와 함께 구슬픈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님들은 경을 읽어 내려가며 고인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 김다솜 기자
ⓒ 김다솜 기자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것이 없다. 억울하다.’

해찬스님 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이재학 PD의 유서를 언급했다. 해찬스님은 “14년을 일했으면서도 비정규직 딱지를 떼지 못하고, 얼마나 억울했으면 그렇게 말했겠느냐”며 “‘억울하다’는 그 한 마디가 아마 이 땅의 많은 비정규직의 가슴 속에 있는 단어일 것”이라고 말했다. 

 

ⓒ 김다솜 기자
ⓒ 김다솜 기자

동료 언론인의 고백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사람들은 줄지어 절을 올렸다. 향에 불이 붙자 연기가 피어올랐고, 간간이 부는 바람에 흔들렸다. 150명이 이재학 PD의 49재 추모 결의대회에 운집했다. 조종현 민주노총 충북본부장이 추모사를 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 조 본부장은 “방송국 한편에서 쪽잠을 자면서도 당신은 땀과 노동으로 작품을 만들었다”며 “그 작품들이 당신의 또 다른 분신이었음을 우린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조 본부장은 이재학 PD를 두고 ‘사람을 사랑한 노동자’였다고 말했다. 사람을 사랑한 노동자, 이재학 PD가 남겨준 과제는 무거웠다. 추모 결의대회에 모인 이들은 열악한 방송 제작 환경과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힘쓰겠다고 서로가, 서로에게 약속했다. 김영석 언론노조 MBC충북지부장은 ‘부끄러움’을 고백했다. 

“이재학 PD가 떠난 뒤, 두 달이 안 되는 시간 동안 안타까움과 분노. 그보다 제가 느끼는 더 큰 감정은 부끄러움이었습니다. 과연 어떤 언론사에서 지금의 이런 상황,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문제를 지금까지 해결하기 위해 언론인들이 했던 역할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 김다솜 기자
ⓒ 김다솜 기자

 

김 위원장은 “지금도 수많은 언론사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동일 노동에 관한 문제가 소송으로도 이어지고 있고, 취업규칙도 없이 허술한 운영 규정 때문에 저임금을 받으며 차별받고 있다”며 “자본의 논리로 무장한 언론사 사주들은 여전히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고용 체계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 위원장은 “언론 노동자들의 치열한 자기반성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짚었다. 언론노조의 이름으로 수많은 파업과 투쟁을 했지만, 자본 논리와 내부 권력에서는 노동 문제에 관대했던 언론인들의 자기반성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청주방송은 스스로 의무를 방기한 것”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방송 현장은 ‘지옥’이다. 여전히 많은 언론인이 비정규직이란 이름 아래에 쫓기고 있다. 이한빛 PD의 이야기도 함께 나왔다. CJ ENM 정규직 PD였던 그는 비정규직 스태프들에게 ‘갑질’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 2016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한빛 PD의 뜻을 기리며 세워진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도 함께 했다. 진재연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이재학 PD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한빛센터로 찾아오는 노동자들의 삶과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며 “청주방송은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을 절망에 이르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비판했다. 

이재학 PD의 죽음을 두고 보여준 청주방송의 태도에 분노를 크게 표했다. 진 국장은 “청주방송은 정당한 문제 제기에 부당해고로 답했고, 경찰에는 위증 교사라면서 진실을 은폐하려 했다”며 “지금도 청주방송은 갖은 공작과 협잡으로 진상조사를 방해하고 있다”고 분개했다. 

ⓒ 김다솜 기자
ⓒ 김다솜 기자

이날 오전 11시에는 이재학PD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진조위)가 현장 조사에 나섰다. 진조위 3차 회의도 열렸다.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진조위 진행 상황을 알렸다. 그는 진조위를 독립적이고, 투명하게 운영하겠다고 공언했다. 

“진상조사를 위해 필요한 요구사항을 말해도 사측 위원이 배제됐다는 이유로 거부하면서 대표자 회의 결과에 따라 이행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모순되고, 상반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측 위원이 배제됐다고 하지만, 선임 의무가 회사에 있는데 스스로 의무를 방기한 상태에서 배제됐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윤 변호사는 “회사에서 진조위에서 요구하는 조사에 성실히 협조하고, 결과를 무조건 수용하겠다고 했지만, 사실상 원활한 진상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가족 △시민대책위 △노동조합 △청주방송에서 세 명의 위원을 추천해 진조위를 구성하기로 했지만, 사측 위원이 연이어 사퇴한 상황이다. 현재 사측 위원은 공석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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