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의 말 한마디가 국민의 안위와 생업보다 중요하던 1983년. 대통령 별장이 청주시 문의면에 들어서는 과정에서 주민들은 큰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청남대에서 이런 역사적 사실은 찾아볼 수 없다. 대통령기념관을 차지한 건 전두환 씨가 사용하던 호화 스포츠물품과 생전 전 씨 가족의 에피소드, 그리고 왜곡된 역사들이다. 현재 청남대의 운영 주최는 충청북도. 대통령 전시 관련 내용은 누가 만들고 운용하는 건지 궁금했다. 예산집행의 적절성과 투명성도 살펴봤다. - 편집자 주 |
골프공 자동 세척기, 스케이트, 양궁용품, 요트…. 스포츠 전문점 같아 보이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세면도구, ‘면도기 받침’, ‘손수건 받침’으로 쓰였던 사기그릇, 지팡이 고무 패킹도 있다. 누구를 위해, 어떤 목적에서 지어진 공간인지 정확하게 알아맞히기 어려운 이곳은 청남대 대통령기념관이다.
청남대는 1983년 12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에 세운 대통령전용별장이다.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충청북도에 청남대를 이양하면서 대통령별장의 기능을 버리고, 국민의 공간으로 거듭났다. 어렵게 국민의 곁으로 돌아온 청남대를 세금까지 들여가며 운영할 필요가 있을까. 청남대 관계자의 답변은 이렇다.
“어떻게 보면 흔한 일반 생활용품인데 왜 전시하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충분히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에 버리지 않고 전시를 한 게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거기 때문에 더 귀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시품을 두고 관람객에 따라 시각차는 발생할 수 있다.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지점은 ‘누가 전시품의 가치를 어떻게 결정하느냐’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그 근거를 찾아봤다.
청남대관리사업소 관계자는 “(그 법령이) 나온 지가 오래되지 않았다”며 “개방할 당시엔 법령에 구애받거나 그러지 않았다”고 답했다. 대통령역사문화관이 개관한 때는 2007년,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은 2010년도에 제정됐다. 그 덕에 청남대는 심의를 피해갈 수 있었다.
심의와 기준을 철저히 지켜지지 않다 보니 역사 왜곡이 우려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혁에는 ‘6·10 민주화 운동 전개’라고 쓰여 있다. 6.10 민주화 운동은 전 전 대통령의 장기 집권에 대항하기 위해 시민들이 맞선 항쟁이다. 역사적 맥락이 빠져 있어 전 전 대통령이 민주화 운동을 한 것처럼 읽힌다.
노태우 전 대통령 그림 아래 달린 설명이다. 12·12 군사 반란, 5·17 내란, 5·18 민간인 학살 등으로 헌정사상 처음 구속된 대통령이지만 평가는 우호적이기만 하다.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라 표현한 문구도 볼 수 있다.
청남대에 전문 인력이 생긴 건 2년밖에 되지 않았다. 2015년 충청북도 감사실에서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과 함께 대통령 박물 관리의 부적절에 대해 시정 권고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터넷이나 이런 데 흔히 나와 있는, 일반인들이 알 수 있는 내용을 넣었거든요. 제가 여기서 30년 넘게 어른을 모셨어요. 자료는 거의 다 제가 해서 만든 거기 때문에 누구한테 공증을 받았느냐, 어쨌느냐에 대해선 제 이름을 대라고 하세요.”
‘청남대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한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청남대가 개방되기 이전인 85년부터 이곳에서 근무해왔다. 취재 결과 역사적·정치적으로 예민할 수 있는 내용을 전문가의 공증조차 받지 않고 개인이 전시 내용을 결정한 사실이 드러났다.
한 보고서에서 동시에 언급된 ‘청남대 역사교육관의 기능’이다. 청남대는 대통령전용별장이란 특수성을 살리기 위해 대통령 세면도구, 취미생활에 쓰인 물건을 전시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만 청남대를 이용했는데 형평성을 맞추겠다면서 나머지 대통령까지 모두 끌어왔다. 이명박 대통령 전시관을 가보면 그가 읽었거나 집필한 서적이 억지스럽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대통령 별장과는 상관없는 임시정부 기록 전시 사업도 계획 중이다. 최근 임시정부 수반을 역사기록화로 제작하겠다고 밝혔다. 청남대는 역대 대통령 역사 기록화 제작에 뛰어든 전례가 있다. 2014년 실시된 이 사업에는 총 10억 원의 예산이 쓰였다. 기록화 한 점당 약 5,000만 원의 혈세가 투입됐다. 제작 당시에도 전시 가치, 세금 낭비, 대통령 우상화 등 여러 문제가 제기됐다. 공모 과정도 불투명했다. 심사위원 명단이나 심사 기준 등을 공개하지 않았다.
개방 당시부터 청남대가 상징성이 사라진 뒤에도 지역 내 관광자원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을지 지역 사회의 걱정이 컸다. 우려는 적중했다. 콘텐츠의 부재는 적자로 이어졌다. 2017년 발표된 충북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청남대 재정 자립도가 40%에 그친 원인으로 콘텐츠를 꼽았다.
청남대관리사업소 운영에 투입되는 예산은 상당하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한 해 평균 약 80억 원의 돈이 쓰였다. 100억 원 넘는 예산이 책정된 적도 있다. 충청북도에서 아동, 청소년, 노인 1만 명에게 35가지 맞춤형 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때 쓰인 세금과 액수가 같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의 청남대관리사업소 감사보고서를 살펴봤다. 늘 비슷한 문제가 감사 지적 사항에 올랐다. △업무추진비 집행 지침 미준수 △부적절한 인력 운용 △예산 집행 방식 △공모 사업 낙찰 과정 공정성 △전시품 관리 및 전시 내용 전문성 결여 등이 지적 사항으로 꼽혔다.
지난 27일(목) 충청북도 감사실에서 공개한 감사 보고서에도 청남대관리사업소가 시설 부대비를 부적정하게 집행하고, 물품 관리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등의 운영 문제점이 발견됐다. 직속기관·사업소 감사를 맡고 있는 문지은 충청북도 감사실 주무관은 "감사 지적 사항에 따라 행정상 처분과 신분상 처분으로 나뉘는데 행정상 처분으로 주의나 시정이 나가게 된다면 (대상 기관에서 지적 사항을) 이행하고, 증빙자료를 첨부해 감사관실로 조치 결과를 제출한다"고 전했다. 운 좋게 감사에 안 걸리면 그만이다.
청남대관리사업소 소장 자리도 매년 바뀌는 실정이라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구조다. 청남대관리사업소 관계자는 “보통 1년만 하고 떠난다”며 “퇴직 전에 와서 마무리한다”고 전했다. 현 청남대관리사업소장도 퇴임을 앞두고 있다. 책임 없는 행정이 청남대에서 이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