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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는 살아있다

[각하는 살아있다 ③] 한국 관광 100선에 이름 올린 청남대의 모순

전두환이 민주화 운동을? 대통령은 어떻게 기록돼야 하나

2019. 06. 29 by 계희수, 김다솜 기자

각하의 말 한마디가 국민의 안위와 생업보다 중요하던 1983년. 대통령 별장이 청주시 문의면에 들어서는 과정에서 주민들은 큰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청남대에서 이런 역사적 사실은 찾아볼 수 없다. 대통령기념관을 차지한 건 전두환 씨가 사용하던 호화 스포츠물품과 생전 전 씨 가족의 에피소드, 그리고 왜곡된 역사들이다.

현재 청남대의 운영 주최는 충청북도. 대통령 전시 관련 내용은 누가 만들고 운용하는 건지 궁금했다. 예산집행의 적절성과 투명성도 살펴봤다. - 편집자 주 



골프공 자동 세척기, 스케이트, 양궁용품, 요트…. 스포츠 전문점 같아 보이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세면도구, ‘면도기 받침’, ‘손수건 받침’으로 쓰였던 사기그릇, 지팡이 고무 패킹도 있다. 누구를 위해, 어떤 목적에서 지어진 공간인지 정확하게 알아맞히기 어려운 이곳은 청남대 대통령기념관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구기류는 모두 모인 것만 같다. 피구공부터 테니스공, 축구공까지. 종목을 가리지 않는다. (좌)  누군가 사용했던 칫솔과 면도기는 물론이고 수건이 곱게 개어져 있다. 한 번도 봉지를 뜯지 않은 면봉도 있다. 청남대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대통령이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전시되고 있었다. (우) © 계희수·김다솜 기자
이 세상에 존재하는 구기류는 모두 모인 것만 같다. 피구공부터 테니스공, 축구공까지. 종목을 가리지 않는다. (좌) 누군가 사용했던 칫솔과 면도기는 물론이고 수건이 곱게 개어져 있다. 한 번도 봉지를 뜯지 않은 면봉도 있다. 청남대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대통령이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전시되고 있었다. (우) © 계희수·김다솜 기자

청남대는 1983년 12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에 세운 대통령전용별장이다.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충청북도에 청남대를 이양하면서 대통령별장의 기능을 버리고, 국민의 공간으로 거듭났다. 어렵게 국민의 곁으로 돌아온 청남대를 세금까지 들여가며 운영할 필요가 있을까. 청남대 관계자의 답변은 이렇다.

“어떻게 보면 흔한 일반 생활용품인데 왜 전시하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충분히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에 버리지 않고 전시를 한 게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거기 때문에 더 귀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시품을 두고 관람객에 따라 시각차는 발생할 수 있다.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지점은 ‘누가 전시품의 가치를 어떻게 결정하느냐’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그 근거를 찾아봤다.

청와대 외형을 본 따 만든 청남대 대통령기념관 본관. 지금 청남대는 대통령기념관 2곳을 본관과 별관으로 나눠 운영하고 있다. 역사 교육이 기념관의 주된 목적이지만 여전히 찬반이 나뉘는 내용이 기록돼있거나 대통령의 공만 부각하고 있는 실정이다. ⓒ계희수·김다솜 기자
청와대 외형을 본 따 만든 청남대 대통령기념관 본관. 지금 청남대는 대통령기념관 2곳을 본관과 별관으로 나눠 운영하고 있다. 역사 교육이 기념관의 주된 목적이지만 여전히 찬반이 나뉘는 내용이 기록돼있거나 대통령의 공만 부각하고 있는 실정이다. ⓒ계희수·김다솜 기자

 

  • 제24조(대통령기록관의 운영) ①대통령기록관의 장은 대통령기록관의 운영에 관한 주요 사항을 결정하려는 경우에는 전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며, 전문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존중하여야 한다. 

청남대관리사업소 관계자는 “(그 법령이) 나온 지가 오래되지 않았다”며 “개방할 당시엔 법령에 구애받거나 그러지 않았다”고 답했다. 대통령역사문화관이 개관한 때는 2007년,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은 2010년도에 제정됐다. 그 덕에 청남대는 심의를 피해갈 수 있었다.

공증 없이 이뤄진 대통령기록 

심의와 기준을 철저히 지켜지지 않다 보니 역사 왜곡이 우려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혁에는 ‘6·10 민주화 운동 전개’라고 쓰여 있다. 6.10 민주화 운동은 전 전 대통령의 장기 집권에 대항하기 위해 시민들이 맞선 항쟁이다. 역사적 맥락이 빠져 있어 전 전 대통령이 민주화 운동을 한 것처럼 읽힌다.

청남대 ‘전두환대통령 길’에 세워진 전두환 동상 옆에 자리한 업적 안내석의 한 부분. 내란목적 살인죄 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전 씨는 청남대에서 ‘민주화’를 위해 애쓴 대통령이 됐다.ⓒ계희수·김다솜 기자
청남대 ‘전두환대통령 길’에 세워진 전두환 동상 옆에 자리한 업적 안내석의 한 부분. 내란목적 살인죄 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전 씨는 청남대에서 ‘민주화’를 위해 애쓴 대통령이 됐다.ⓒ계희수·김다솜 기자

 

  • “1987년 6월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민주화 운동과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기원하며 대통령 직선제 요구 등을 수용하는 6·29 선언을 소재로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 대통령의 고뇌에 찬 모습을 그려냈다” 

노태우 전 대통령 그림 아래 달린 설명이다. 12·12 군사 반란, 5·17 내란, 5·18 민간인 학살 등으로 헌정사상 처음 구속된 대통령이지만 평가는 우호적이기만 하다.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라 표현한 문구도 볼 수 있다. 

청남대에 전문 인력이 생긴 건 2년밖에 되지 않았다. 2015년 충청북도 감사실에서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과 함께 대통령 박물 관리의 부적절에 대해 시정 권고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터넷이나 이런 데 흔히 나와 있는, 일반인들이 알 수 있는 내용을 넣었거든요. 제가 여기서 30년 넘게 어른을 모셨어요. 자료는 거의 다 제가 해서 만든 거기 때문에 누구한테 공증을 받았느냐, 어쨌느냐에 대해선 제 이름을 대라고 하세요.” 

‘청남대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한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청남대가 개방되기 이전인 85년부터 이곳에서 근무해왔다. 취재 결과 역사적·정치적으로 예민할 수 있는 내용을 전문가의 공증조차 받지 않고 개인이 전시 내용을 결정한 사실이 드러났다. 

청남대 전경. 역대 대통령들은 휴가철마다 이곳을 방문해 휴양을 즐겼다. © 계희수·김다솜 기자
청남대 전경. 역대 대통령들은 휴가철마다 이곳을 방문해 휴양을 즐겼다. © 계희수·김다솜 기자

 

억지스러운 전시에 관광객들 ‘외면’ 

  • ‘충청북도 소속으로 충청북도와 각 대통령과의 관련성, 또한 대통령의 별장이었던 청남대라는 특수성 최대한 살리는 것이 활용방안의 관건’ 
  • ‘청남대는 한 명의 대통령 기념관이 아니라 역대 10인의 대통령 모두의 기념관으로 각 대통령을 종합할 수 있는 기념관 지향’ - 대통령 역사교육관 운영 및 역사기록화 연구사업 요약 보고서 (2013) 

한 보고서에서 동시에 언급된 ‘청남대 역사교육관의 기능’이다. 청남대는 대통령전용별장이란 특수성을 살리기 위해 대통령 세면도구, 취미생활에 쓰인 물건을 전시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만 청남대를 이용했는데 형평성을 맞추겠다면서 나머지 대통령까지 모두 끌어왔다. 이명박 대통령 전시관을 가보면 그가 읽었거나 집필한 서적이 억지스럽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용한 물건보다 그가 집필하거나 읽은 책이 더 많다. © 계희수·김다솜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용한 물건보다 그가 집필하거나 읽은 책이 더 많다. © 계희수·김다솜 기자

대통령 별장과는 상관없는 임시정부 기록 전시 사업도 계획 중이다. 최근 임시정부 수반을 역사기록화로 제작하겠다고 밝혔다. 청남대는 역대 대통령 역사 기록화 제작에 뛰어든 전례가 있다. 2014년 실시된 이 사업에는 총 10억 원의 예산이 쓰였다. 기록화 한 점당 약 5,000만 원의 혈세가 투입됐다. 제작 당시에도 전시 가치, 세금 낭비, 대통령 우상화 등 여러 문제가 제기됐다. 공모 과정도 불투명했다. 심사위원 명단이나 심사 기준 등을 공개하지 않았다. 

본래 역사기록화는 사진이 보급되지 않은 시절을 담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다. 하지만 지금의 청남대에서는 대통령을 기념하기 위한 방법으로 역사기록화를 택했다. © 계희수·김다솜 기자
본래 역사기록화는 사진이 보급되지 않은 시절을 담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다. 하지만 지금의 청남대에서는 대통령을 기념하기 위한 방법으로 역사기록화를 택했다. © 계희수·김다솜 기자

주먹구구식 운영 방식, 예산만 100억 원? 

개방 당시부터 청남대가 상징성이 사라진 뒤에도 지역 내 관광자원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을지 지역 사회의 걱정이 컸다. 우려는 적중했다. 콘텐츠의 부재는 적자로 이어졌다. 2017년 발표된 충북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청남대 재정 자립도가 40%에 그친 원인으로 콘텐츠를 꼽았다. 

  •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역사문화 관련 사항을 포함한 학습성이 만족도, 추천 의향, 재방문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대통령 별장이라는 공간의 역사성을 전달할 수 있는 콘텐츠의 매력도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추론할 수 있음’ - 청남대 개방으로 인한 관광 및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 분석 및 발전방안 보고서 (2017)
2~3년에 한 번씩 충청북도에서 자체 감사를 실시해 지적 사항이 발견되더라도 행정상 처분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계희수·김다솜 기자
2~3년에 한 번씩 충청북도에서 자체 감사를 실시해 지적 사항이 발견되더라도 행정상 처분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계희수·김다솜 기자

 

청남대관리사업소 운영에 투입되는 예산은 상당하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한 해 평균 약 80억 원의 돈이 쓰였다. 100억 원 넘는 예산이 책정된 적도 있다. 충청북도에서 아동, 청소년, 노인 1만 명에게 35가지 맞춤형 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때 쓰인 세금과 액수가 같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의 청남대관리사업소 감사보고서를 살펴봤다. 늘 비슷한 문제가 감사 지적 사항에 올랐다. △업무추진비 집행 지침 미준수 △부적절한 인력 운용 △예산 집행 방식 △공모 사업 낙찰 과정 공정성 △전시품 관리 및 전시 내용 전문성 결여 등이 지적 사항으로 꼽혔다. 

지난 27일(목) 충청북도 감사실에서 공개한 감사 보고서에도 청남대관리사업소가 시설 부대비를 부적정하게 집행하고, 물품 관리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등의 운영 문제점이 발견됐다. 직속기관·사업소 감사를 맡고 있는 문지은 충청북도 감사실 주무관은 "감사 지적 사항에 따라 행정상 처분과 신분상 처분으로 나뉘는데 행정상 처분으로 주의나 시정이 나가게 된다면 (대상 기관에서 지적 사항을) 이행하고, 증빙자료를 첨부해 감사관실로 조치 결과를 제출한다"고 전했다. 운 좋게 감사에 안 걸리면 그만이다. 

청남대관리사업소 소장 자리도 매년 바뀌는 실정이라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구조다. 청남대관리사업소 관계자는 “보통 1년만 하고 떠난다”며 “퇴직 전에 와서 마무리한다”고 전했다. 현 청남대관리사업소장도 퇴임을 앞두고 있다. 책임 없는 행정이 청남대에서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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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좀박멸 2019-06-29 21:38:50
오십팔은 반락 폭동이다. 진짜 유공자는 계엄군
최장문 2019-08-13 08:09:51
정말
잊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 잘못하고 누가 덜 잘못했는지.
...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저는 충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