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환 충북대 교수

▲ 김승환 충북대 교수
어느 날 당태종 이세민(李世民)이 신하들에게 물었다. ‘국가를 창업하는 것이 어렵소, 수성하는 것이 어렵소?’ 그러자 충신 방현령은 ‘창업(創業)이 어렵습니다’라고 답했다. 방현령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나라를 창업한 경험 때문에 그렇게 답했다.

또 다른 충신 위징은 ‘수성(守城)이 어렵습니다’라고 답했다. 위징은 창업 이후 수많은 난관을 헤치고 교만과 방종으로부터 나라를 지켰기 때문에 그렇게 답했다. 그러자 당태종은 이렇게 말했다. ‘두 사람 말이 모두 맞다.’ 그후 정관의 치[貞觀之治]로 기록되는 명군 당태종은 사치를 경계하고 문호를 개방하는 한편 균형 있게 인재를 등용하여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고 강성한 국가를 건설했다.

이 고사는 김병우 충북교육감의 창업수성과 유사한 면이 있고 교육감께서 명심해야 할 지혜가 있다. 김병우교육감께서는 어려운 시절의 고난을 헤치고 2014년 7월 1일 창업에 비유되는 교육감 직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당선 이튿날 뜻밖의 소식이 언론을 장식했다. 검찰이 기소를 했다는 것이다. 며칠 후 더 놀라운 뉴스가 이어졌다.

선거에서 낙선한 후보들이 재선거를 위하여 사무실을 알아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분노가 충천하고 망연(茫然)에 자실(自失)이었다. 하지만 날이 차가워진 이후라야 송백의 시들지 않음을 알기에(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 우리는 북풍한설을 맞으며 창업만큼 어려운 수성의 장정을 시작했다.

첫 번째 재판은 청주지검 제천지청장실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시작된 것이며 두 번째 재판은 스승의 날 감사편지에 양말 보낸 것을 고발하여 시작된 것이다. 처음에는 검찰의 추상(秋霜)보다 엄격한 기소에 원망심이 들었고 충북교육발전소의 행사를 ‘무슨 연유가 있기에 굳이 고발을 했을까’라는 의구심도 들었다.

하지만 현실을 겸허하게 수용한 다음 여러분들이 모여 김병우교육감 수성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래서 선거기간 중 상임선대위원장이었던 필자는 그날부터 김병우 교육감 수성위원장으로 직함을 바꾸어 복무하고 있다. 아직 재판의 향방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대다수의 충북도민들이 김 교육감을 수성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망이 높다는 점이다.

김병우 교육감은 개인이기 이전에 아름다운 민주주의의 결실이며, 진실한 교육을 위한 보루(堡壘)이고, 아픔과 희생이 쌓인 진보의 상징이다. 또한 교육감께서 누차 말씀한 것처럼 교육에는 진보와 보수가 없다. 하지만 역사에는 진보와 보수가 있고, 미래를 향해서 전진하느냐 과거로 회귀하느냐의 역사적 전망은 있다.

따라서 교조적이고 파괴적인 진보가 아니라 유연하고 건설적인 진보는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서 필연적인 당위가 도출되는데 그것은 ‘김병우 교육감이 낙마해서는 안된다’는 정언명제다. 그리하여 역사와 도덕이 결합된 칸트(I. Kant)식 정언명제를 지키는 일은 이제 열망을 넘어서 진보에 대한 신념이 되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김병우교육감 수성위원회는 새벽마다 원흥이 정신이 깃든 구룡산 제단에서 하늘북을 친다. 천하고수(天下鼓手)가 치는 하늘북에서는 ‘其能哀而怒矣(기능애이노의) 능히 슬퍼하기도 하고 노하기도 하며’ ‘哀聲悲怒聲壯(애성비노성장) 애통한 소리 슬프고 노한 소리 장엄’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우리는 그 북소리가 검찰과 재판부 그리고 하늘에 닿을 것을 간절히 소망한다.

법의 법리(法理)를 존중하면서 하늘의 천리(天理)를 깨우는 하늘북은 이 재판이 끝나는 날까지 두둥둥 두리둥둥 충청하늘에 울릴 것이다. 아무쪼록 김병우 교육감께서는 당태종을 거울삼아 태산 같은 언행과, 타자를 포용하는 포용력과, 바람 같은 부드러움으로 충북교육의 르네상스를 이루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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