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최혁준 군이 쓴 놀라운 책 <고등학생의 국내 동물원 평가보고서>

▲ 이종수 청주 흥덕문화의집 관장
이종수
청주 흥덕문화의집 관장

겨울 동물원에서 호랑이와 대면하고 있다. 동물원을 대표하는 동물 가운데 호랑이가 단연 압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호랑이를 경외시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 때문일까. 내장까지 울리게 만드는 호랑의 포효를 장부다운 기상으로 삼았던 것이나 까치호랑이라는 믿음결합체를 만들어내기도 한 내력을 생각해 보면 늠름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동물원은 호랑이는 뭔가 잔뜩 긴장한 채 어슬렁거리고 있다.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 철창 그늘이 만들어내는 가늠자만으로도 서늘한 위용을 자랑하건만 호랑이는 낮게 으르렁거리며 슬픔의 기럭지를 재고 있는 듯하다. 그대로 철창을 뛰어넘어 올 것만 같은 기운에 저절로 뒷걸음칠 만큼. 하룻밤에도 백두대간을 내달렸다는 호랑이가 살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우리 안에 갇혀 호랑이는 불안하고 분노어린 신음만 흘리고 있다.

호랑이에 정신에 빼앗겨 이야기가 길어졌다. 이 책은 호랑이가 느끼는 불안감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한 소리다. 한창 좁은 책상과 교실에 갇혀 교과서에 밑줄을 긋고 있어야 할 고등학생이 동물권리와 동물복지에 대한 보고서를 냈다기에 한달음에 읽었다.

먼저 동물원은 왜 있어야 하는지, 제 터전에서 잘 살던 동물들을 잡아와 우리에 가두고 관람로를 따라 구경하게 만든 동물원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세심하게 살피고 자료를 만들어 보고서를 쓴 학생이 우리 교육 현장에서 나올 수나 있었다는 게 놀랍다.

▲ 제목: 고등학생의 국내 동물원 평가보고서 지은이: 최혁준 출판사: 책공장더불어
책에 대한 소개를 받은 학부모들마다 고등학생이 어떻게 이런 책을 기획할 수 있었는지, 이렇게 근원적이고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학생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는 학과가 없다는데 다시 한번 놀란다. 동물권리와 복지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학과가 아니라 거개가 동물은 사람을 위한 놀잇감과 먹잇감으로 만들기 위한 학과밖에 없다는 현실에 이곳에 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들 한다.

지금 동물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들

좀 더 책 깊숙이 들어가 보면 동물원 관람객 수준에서 낯설 수밖에 없는 종보전, 페팅 주, 정형행동, 동물행동풍부화, 사회그룹풍부화 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동물들을 더 나은 환경에서 보전하고 사육할 수 있는 동물원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국의 9개 동물원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정리해 놓은 그간의 힘든 여정이 느껴진다.

왜 이렇게까지 정열을 바쳐 학업보다 더 위대한 보고서를 만들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저 우리가 만날 수 없는 여러 동물들을 우리에 가둬두고 보여주기에만 급급한 일종의 동물군락지가 아닌 동물권리와 복지를 아우르는 경영철학이 있는 동물원이 될 수는 없는지 지은이는 담담하게 밝혀나가고 있다.

지금 동물원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나면 그야말로 충격 그자체이다. 우리에 조롱에 가까운 소리와 지극히 오만스런 인간의 먹을거리를 던져주고 해코지까지 하는 관람객의 자리에서 본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근친교배를 비롯한 무차별 번식을 종용하고 전문적이지 않은 지자체 영세사업 정도로 하락해 버린 동물원은 실태는 과연 동물원이 왜 필요한지 다시 묻게끔 하고 있다. 우리 지역의 유일한 동물원인 청주동물원에 대한 실태 조사를 보면 우리가 놓친 사각지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은이는 동물원이 동물복지와 종보전에 최우선을 두고 무지한 관람객들에게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배우고 나누게 하는 현장이 되도록 노력하는 전문가 집단이자 동물애호가의 공간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동물원 경영철학을 내세울 수 있을 만큼의 진보적이고 현대적인 동물원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 때이다. 실천이 중요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한 고등학생의 동물원 평가 보고서 앞에서 숙연해진다. 지루하고 꿈 없는 학교와 현실을 오가고 있는 고딩 아들에게 이 책을 건네주고 새삼 더 강조하지는 않았다. 꿈은 스스로 만드는 길 끝에 있는 것임을 최혁준 학생의 고마운 책 한권에서 실감한다.

최혁준 학생은 보고서와 함께 장렬하게 올해 수시에서 번번히 전사하였다고 한다. 그가 동물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그려내는(삽화까지 손수 그렸다고 한다) 솜씨만으로도 남이 가는 똑같은 길을 가지 않을 것이고 더 나은 대업을 이룰 것이라 응원하는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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