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투쟁’과 ‘주체성’으로 살펴본 헤롤드 핀터의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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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투쟁’과 ‘주체성’으로 살펴본 헤롤드 핀터의 ‘귀향’
  • 충북인뉴스
  • 승인 2014.12.18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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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극의 전통을 따르는 사실주의 극작가

영화를 통해 문학 읽기19

윤정용 평론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 희곡에서 버나드 쇼 이후 영어로 최고의 희극적 재능을 펼치는 작가로 평가받는 해롤드 핀터는 몇몇 비평가들에 의해서는 ‘키친 싱크’(kitchen sink) 계열의 사실주의 극작가로 평가된다.

원래 키친 싱크 드라마는 영국의 중하층 계급의 말투와 주거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연극을 특별히 구별하여 지칭하던 용어로서 언론계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특히 1956년 로열 코트 시어터에서 존 오스본의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의 성공 이후에는 영미희곡의 한 전형적인 하위 장르가 되었다. 키친 싱크 드라마는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의 보수적이고 부르주아적인 영국 연극의 관습을 탈피한 혁신적인 극 장르로 규정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핀터의 작품은 사무엘 베케트와 외젠 이오네스크 등과 같이 목적이나 의미를 상실한 현대인의 불안과 소외된 삶을 다루는 ‘부조리극’ 전통을 따른다. 요컨대, 핀터는 한편으로는 부조리극 계열의 작가로 규정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부조리 극작가들과는 달리 하나의 잣대로 규정될 수 없는 다층적인 작가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기에, 현대 영국의 가장 대표적인 극작가이면서도 작품의 난해성으로 인해 일반 독자들뿐만 아니라 비평가들까지도 당혹스럽게 만든다.

언어 사용이 탁월해

핀터의 『귀향』(1964)은 초기작이지만 작가 스스로 “나를 만족시키는 구조적 독립체에 어느 정도 근접해 있는 유일한 극”이라고 평할 정도로, 극의 내용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핀터 극 언어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핀터의 작품에 사용되는 언어들은 일반적인 ‘지시적’ 기능보다는 오히려 ‘대인 관계적’ 혹은 ‘사회적’ 기능이 강조되어, 등장인물 상호간의 공격과 방어, 은폐 및 위장을 엮어내는 직접적인 수단이 된다. 핀터의 극 언어가 그의 극의 직접적인 주제가 된다는 비평가들의 논평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 희곡에서 버나드 쇼 이후 영어로 최고의 희극적 재능을 펼치는 작가로 평가받는 해롤드 핀터는 몇몇 비평가들에 의해서는 ‘키친 싱크’(kitchen sink) 계열의 사실주의 극작가로 평가된다.

핀터의 작품은 등장인물들의 소통 불가능한 대화를 통하여 불안한 자아를 드러내고, 일상적으로 체험되는 ‘헤게모니’ 쟁취를 통해 인간 내면의 욕망을 투사한다. 또한 언어의 이질감 또는 괴리감을 인지한 인물들은 침묵하면서 무언의 항변을 시도한다. 그들은 인간의 존재 방식과 사회 구조, 사회장치 사이에서 야기되는 부조리 속에서 본래의 자아를 찾기 위해 방황하고 고민한다.

핀터는 ‘침묵’(silence) 또는 ‘휴지’(pause)와 내러티브의 적절한 혼용으로 언어 사용에 대한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서 침묵/휴지와 내러티브는 극 중 등장인물 간의 지배와 종속의 관계를 규정하는 언어전략이다. 『귀향』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이전의 핀터 극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장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핀터가 초기에 천착했던 등장인물의 신체적 영역과 심리적 영역 간의 상관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인물간의 관계 구성으로의 회귀이다.

핀터 극의 주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인 ‘권력투쟁’은 물리적 공간과 추상적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주도권 다툼에서부터 ‘성욕’(sexuality)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남녀 간의 갈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다층적이다.

특히 최근 비평가들이 핀터의 극을 성욕과 ‘성’(gender)의 문제와 관련하여 조명하려고 시도하면서 이 힘겨루기의 주요한 측면은 남성에서 여성으로 이동했다. 지금까지 남성 비평가들에 의해 여성의 육체와 성욕은 남성이 자신들의 욕망을 투영하기 위한 수단으로써만 사용되어왔다.

하지만 최근 페미니즘 비평가들은 오히려 여성의 육체와 성욕을 직접 드러내 보이고 이를 응시하는 남성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기존 관념에 대한 전복을 시도한다. 이런 시도를 가장 잘 예증하는 작품이 『귀향』이다.

여성에 대한 기존 관념을 전복

『귀향』의 주제는 극 중 유일하게 등장하는 여성인물 루스를 두고 벌이는 남성들 간의 ‘권력투쟁’, 그리고 루스와 남성들 간의 ‘권력투쟁’에 의해 형상화되고 있고, 이를 통해 루스의 ‘주체성’의 확립 과정으로 귀결된다. 이 작품은 구체적인 가족사를 재현하면서 보편적인 인간관계의 권력구조 변화와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부조리성과 모순의 양상을 반영한다.

핀터의 극에서의 등장인물들은 자기보호본능에 의거해 세상에 대처하며 상대방과 언어대결을 벌이는데, 이들은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고 폭력적인 언어를 조작해 낸다. 『귀향』의 남성 등장인물들은 침입자라 할 수 있는 루스의 출현이전부터 이미 자기들끼리 언어 대결을 통해 권력투쟁을 벌인다. 또한 그들은 권력 투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과거를 조작하며 현재를 이상화하려 하지만 결국 맥스, 레니, 테디 등 모두 루스의 언어에 모두 굴복된다.

루스가 『귀향』에서 보여주고 있는 언어는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도록 조작된 직관적 언어로서 남편 테디의 형이상학적인 언어와 대비되어 그 위력을 나타낸다. 이처럼 이 극은 이처럼 언어의 폭력성 뿐 아니라, 언어의 조작이 추동하는 효과에 대해서도 예거하고 있다.

루스가 선택한 새로운 삶은 과거에 여성의 육체와 성적 욕망이 남성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 것과 달리, 남성을 통제하고 때로는 복종시키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제시됨으로써 여성에 대한 기존 관념을 전복한다.

결론적으로 루스는 더 이상 과거의 인습을 답습하는 수동적인 여성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이며, 기존의 극에서처럼 남성들의 싸움에서 승리자의 전리품이 아니라 남성들과의 싸움에 직접 참여하는 능동적인 주체라는 점에 있어서, 핀터의 발전된 여성관을 구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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