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탑사로 가는 길목, 무채색으로 가라앉았던 하늘이 침묵을 깨고 비를 내렸다. 이 세상 씻어 버려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던가! 목말라 타들어 가는 산야의 신음소리가 애절했던가!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늘어졌던 산야는 금 새 생기를 얻은 듯, 오월의 나뭇잎들은 백일 지난 아가처럼 생글거리고 농부들은 빗속에서 삶을 심느라 분주한 모습들이다. 그들을 바라보다 문학을 한답시고 여유로운 듯 산사를 찾아가는 내 모습이 슬그머니 부끄러워져 나는 쓰고 있던 우산을 접었다. 나뭇잎을 타고 흐르는 초록 물방울로 세파에 찌든 마음 씻어 내리며 상념에 잠기다 보니 어느 덧 보탑사 경내로 들어섰다.

 석가 탄신일을 앞둔 탓인지 안개비 속에 등꽃으로 치장된 산사는 정적인 듯 하면서도 스님들의 발걸음이 재다. 등을 밝히고자 함은 밝음을 찾자는 의미다. 크든 작든 빛의 의미는 우리에게 희망이요, 광명이며, 깨달음이다. 정성을 다한 등 공양은 칠흑 같은 사바세계의 어둠을 씻어 내리고 찬란한 광명을 비추어 주십사 하는 간절한 서원의 표현이라 한다. 합장하며 잠시 눈을 감고 부처님의 자비심이 이 땅의 모든 중생들에게 고루 비추어 지기를 빌었다. 감았던 눈을 뜨고 바라보니 비에 젖는 보탑사의 자태는 깨달음처럼 한 송이 커다란 연꽃으로 보시시 피어올랐다.  

   
▲ 전남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 전남문화재자료 제105호. 박수량의 묘 앞에 세워진 비. 비문의 내용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진천군 연곡리 보련산 자락 연꽃마을에 보탑사가 자리하고 있다. 고려 초기 이 곳에 큰 절이 있었고, 대동여지도에도 연곡리 연꽃마을이 표시되어 있다한다. 이 곳 산세는 빙 둘러 싸고 있는 산봉우리가 마치 연꽃잎을 연상케 하고 있다. 그래서 그 한 가운데 우뚝 세워진 보탑사는 연꽃의 꽃술현상을 하고 있어 부처님과 인연이 깊은 곳이라 한다. 이렇게 형상에 어울리는 지명을 볼 때마다 옛 선인들의 높고 깊은 지혜에 감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연으로 인해, 쇠못 하나 사용 하지 않고 온전한 목조 구조물로 최근에 지어진 보탑사는 이끼 낀 유구한 세월의 흔적은 없다. 하지만 생나무 냄새나는 듯 한 보탑사 경내를 돌다보면, 홀연 듯 수 백 년 침묵의 세월과 만나게 된다. 아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은 거대한 돌비석이 깊은 세월을 일컬음인가 고색창연하다. 한자가 빼곡히 새겨 진 여느 비석과는 달리 새겨 놓은 획하나 보이지 않는다. 누구의 비석인지, 왜 이곳에 있는지 아무런 유래를 알 수 없다.   
 
 비문 없는 돌비석! 그 것은 없지만 있는 듯, 있지만 없는 듯 마음으로 느끼고 바라보라 함인가! 굳이 문자로 새겨 일러 주지 않은 비석 앞에서 키 재기 하듯 서 있는 사람들의 마음마다 수 백 년 돌비석의 상념은 다르게 다가오리라. 수심이 얕을수록 조잘거리는 물소리처럼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적은 것을 크게 보이려고 애쓴 적은 없었는지 내심 부끄러웠다.

 예부터 사찰이 있는 곳에는 부도가 있다. 부도는 승려의 유골을 봉안하기 위해 그와 인연이 깊었던 사찰에 묘탑을 세워 놓은 것이다. 부도 옆에는 거의 부도비가 같이 세워지며 그 곳에 기록된 것으로, 승려들의 행적은 물론 다른 승려와의 관계, 나아가 당시의 사회, 문화의 일면까지도 이를 통해 알 수 있다 한다. 대부분 부도비의 형상은 비석 받침이 귀부龜趺이고 비석지붕은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 하는 모습이다. 예전에 이 곳에 큰 절이 있었다는 것과 현지의 여러 정황으로 보아 보탑사의 백비는 어느 고승의 부도비가 아닐까라는 추측들을 주변에서 하고 있다한다.

 보물 404호인 이 백비는 근처 논바닥에 있던 것을 현 위치로 옮겨 놓았다. 살아서 천년을 산다 하는 거북모양을 한 받침돌 위에 우뚝 서 있는 돌비석, 비석의 머리위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품고 하늘로 승천 하려는 듯 꿈틀거리고 있다. 수 백 년의 용트림인 듯 어두운 침묵의 그늘 속에 빗소리는 점점 강해졌다.

 우리나라에 이처럼 비문 없는 비석이 더러 있다고 한다. 그중 하나는 전남 장성 황릉면에 있는 백비다. 이는 청백리 박 수량의 것이라 한다. 

  너무 깨끗하게 살아서 오히려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는 박 수량의 백비! 공직에서의 청렴했던 그의 맑은 덕을 더욱 더 기리기 위해 부러 한 글자도 새기지 않고 비워 두었다고 한다. 비문 없는 비석을 바라보며 옛 사람들의 곧고 맑은 영혼의 향기에 푹 파묻혀본다. 
 
 백비는 무언으로 달려와 잠자는 내 영혼을 흔들어 깨웠다.
‘너는 이 세상에 올 때 발가벗은 몸과 우는 재주 하나만 가지고 오지 않았더냐?’하여 돌아보니 이미 나는 내안에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사라진 뒤에 이 세상에 영원히 남을 것들은 무엇인가?
빗물에 씻겨 진 보련산 자락은 보얗게 피어오른 물안개가 산허리를 휘둘러 안고 있다. 마치 내가 천상에서 노니는 듯, 그 황홀함에 도취되어 이름모를 풀들이 내 발에 밟혀 짓이겨지는 것도 모른 채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이렇듯 삶 속에서 내 기분에 따라 무심코 던져놓은 말 한마디나 행동이 누군가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힌 일은 없었는지. 한마디 원망도 질타도 없이 짓이겨진 채로 조용히 일어나 제 자리를 찾는 키 낮은 여린 풀잎을 들여다보며 나는 소름처럼 돋는 두려움에 진저리를 쳤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말들을 주절거렸던가! 목청을 돋우고 질러댔던 모든 말들은 다른 누군가를 짓밟고 그 위에 나를 세우고자 함이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에 그런 나를 말끔히 씻어 내리고 싶다.
 
 오랜 세월 침묵하던 돌비석의 거친 숨결 때문인가? 돌 거북의 등 쪽에 살갗이 벗겨 진 것처럼 깨져 있었다. 상체기의 흔적처럼 떨어져 나간자리, 불심으로 속살까지 파고들었다는 거북등의 문양이 오늘따라 더욱 선명하다. 그 것은 수 백 년 돌비석의 상념이 침묵으로 내리는 깨침의 소리이리라.
 
 백비를 보호하고 있는 비각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도 예사롭지 않아, 문득문득 내 가슴이 내려앉았다. 수 백 년 백비의 숨결에서 시대를 넘나들며 풍겨오는 옛 사람들의 맑고 곧은 향기가 은은하게 다가온다.

들리는가!
보이는가!
백비가 전해주는 무언의 소리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욕심도 부질없음이요, 본래 있던 곳으로 갈 때는 이 세상에 아무흔적도 남기지 말라는 어느 고승의 유언이듯 비 내리는 산사에 풍경도, 저녁 종소리도 울리지 않았다.
수 백 년 백비의 숨결인 듯 적막한 산사에 빗소리만 서늘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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