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석렬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

11월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회원국들 간에는 격론이 벌어졌다. 하락하는 유가를 정상화하기 위해 감산하자는 베네수엘라 등과 현재의 생산량을 유지하자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만 왕정국가들 간의 의견대립으로 감산합의는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이를 신호로 국제유가는 표준유가인 브렌트유 가격이 70달러 부근으로 떨어졌다. 더구나 이 유가하락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생산량과 유가결정의 칼자루를 쥔 사우디아라비아의 정확한 의도에 대해 분분한 해석들이 나오고 있으나 분명한 사실은 이로 인해 러시아와 이란, 베네수엘라 등 미국패권에 도전하는 나라들이 가장 큰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소련 붕괴이후 체제전환 과정에서 에너지 자원 수출로 재정의 큰 부분을 충당하여 왔으며 베네수엘라의 재정 역시 거의 석유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저유가는 이들 나라의 경제와 사회 복지 프로그램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며 체제 자체의 안정성을 위협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결정은 미국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셰일 석유개발 등 비전통적 석유에 대한 투자를 위축시킴으로써 시장지배를 강화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분석이 옳다면 미국에게 저유가는 양면의 칼날로 작용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미국패권에 대한 위협세력을 무력화하고 패권을 공고화하는 무기가 될 수도 있지만 셰일석유와 셰일가스의 개발을 무력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정치적 효과에 비하면 셰일석유개발에 대한 영향은 무시할 만하다. 최근에는 일련의 연구자들이 셰일가스 붐이 2020년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른바 핫 스팟(수익성 높은 가스정)에 집중된 개발이 끝나면 실제 채굴비용의 상승으로 더 이상 셰일가스의 증산은 기대할 수 없게 되리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으며, 환경비용을 감안하면 셰일석유와 셰일가스 붐은 오래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국제정치적인 효과가 저유가의 실제적 동기라고 유추할 수 있다. 이 분석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왕정국가들과 미국이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등 미 패권에 도전하는 국가들에 대항하는 동맹관계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 러시아 외무장관 라브로프는 저유가가 러시아의 푸틴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미국 등 서방의 음모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러시아는 4천억 달러에 달하는 국부 펀드를 동원하여 저유가에 저항하고 있으며 베네수엘라는 사회복지분야를 제외한 재정지출을 최대한 줄이고 대외 자산과 채권의 판매를 통해 외환 방어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나라가 에너지수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제구조의 체질을 바꾸지 않는다면 국가부도(디폴트) 등의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러시아의 경우 우크라이나 문제와 서방과 대립하고 있으며 베네수엘라는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남미 동맹을 견인하고 있다.

이들 나라가 미국이 시작한 경제전쟁에 대해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와 그 나라 민중이 경제적 어려움을 얼마나 참아 줄 것인가가 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할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정변과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대해 미국과 EU, 나토 구성국, 호주, 뉴질랜드 등은 러시아에 대해 경제제재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 맞서 푸틴정권은 중국과 대규모 가스수출협정을 체결하여 유럽시장을 대체할 준비를 하였으며 원래 건설 예정인 남유럽 행 가스관(흑해에서 불가리아와 세르비아를 거쳐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로 연결), 즉 사우드 스트림을 포기하고 터키와 가스공급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런 일련의 정책으로 유럽국가 내에서도 미국 주도의 대 러시아 제재조치에 대한 불만이 일어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열전(우크라이나 내전, 시리아 내전)과 냉전이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이 상황이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는 남북관계의 진전과 평화구축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