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묵시록 리덕스> 미국 군대와 미국 정부의 끊임없는 거짓말에 대한 폭로

영화를 통해 문학 읽기18

윤정용 평론가

오슨 웰즈의 영화 <시민 케인>(1941)은 제작된 지 70년이 훨씬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화 역사상 최고의 영화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오슨 웰즈는 자신의 첫 영화를 원래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을 원작으로 하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이 영화는 성사되지는 못했고, 대신 그는 <시민 케인>에서 『암흑의 핵심』모티프를 차용하고 있다. 『암흑의 핵심』을 직접적인 원작으로 한 가장 유명한 작품은 그로부터 30년이 훨씬 지난 1979년이 되어서야 나온다. 그것은 바로 또 다른 영화 거장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이다.

<지옥의 묵시록>이 제기하는 여러 문제점들 가운데 주목해야 할 점은 콘래드의 소설과의 연관된 각색의 문제다. 이 지점에서 코폴라 감독이 <지옥의 묵시록>에 49분의 장면을 복원해 세상에 내놓은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2001)를 다시 한 번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하 <리덕스>로 표기).

왜냐하면 코폴라는 <리덕스>의 새롭게 추가된 장면을 통해 스토리라인을 좀 더 명확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옥의 묵시록>에서 결여되었던 ‘역사적 리얼리티’를 보강함으로써 자신의 영화를 보다 더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 안에 놓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리덕스>는 이처럼 현대 미국의 역사적·문화적·정치적 문맥 안에서 베트남 전쟁을 파악할 뿐만 아니라 콘래드 텍스트와의 대화를 통해 미국에 윤리적·이데올로기적 비판을 가한다.

미디어의 허구와 왜곡 비판

▲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출연 말론 브란도 / 마틴 쉰 / 로버트 듀발
사회적·문화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리덕스>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베트남 전쟁을 통해 드러난 미국 군대 혹은 미국 정부에 관한 영화다. 코폴라 감독 스스로 <리덕스>와 관련된 인터뷰에서 <지옥의 묵시록>의 주제는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정부가 월남전에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거짓말을 했다”고 역설했다.

코폴라는 영화에서 베트남 전쟁과 관련해서 미국 대통령을 포함해 정치인들이 계획적으로 오랜 동안 거짓말을 해왔다고 주장한다. <지옥의 묵시록>에서는 은연중에 미국 정치인을 비판했다면, <리덕스>에서는 좀 더 직접적으로 비판한다.

새로 추가된 장면에 따르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커츠 대령은 컨테이너에 갇혀 있는 윌라드에게 실제 『타임』(Time) 지의 베트남 전쟁 관련 기사를 읽어준다. 이 기사에서는 베트남 전쟁과 관련해 당시의 미국 대통령 린든 존슨은 베트남 전쟁 보고서 공개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언급된다.

이 장면은 <리덕스>에서 새로 복구된 부분으로서, 코폴라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개봉 당시 명시하지 않았던 영화 속 현실의 시간을 분명히 함으로써 영화의 리얼리티를 높였다.

전술했듯이, 영화 <리덕스>의 주제는 ‘거짓말’이다. 베트남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져들자 미 행정부는 의회, 언론, 국민을 상대로 대대적인 홍보 캠페인을 펼쳤다. 그 주된 내용은 공산군의 세력이 약해지고 있으며 미국이 전쟁을 이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얼마 뒤 그 선전은 거짓임이 드러난다. 영화 속에서 커츠는 윌라드에게 미국 정부의 베트남 전쟁에 대한 낙관론이 어떻게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는지를 폭로한다.

<리덕스>에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장면은 코폴라 감독이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는 부분이다. 감독은 영화의 첫 전투 장면에서 TV 카메라 팀의 프로듀서로 등장한다. 그는 육지에 상륙한 윌라드 일행에게 “카메라를 쳐다보지 말라”고 외친다.

이 장면은 베트남 전쟁의 본질을 잘 예거한다. 베트남전은 TV로 방송된 최초의 전쟁으로, 이제 미국인들은 TV에서 방송되는 뉴스를 통해 전쟁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나 TV를 통해 접하는 전쟁은 전체가 아닌, 단지 TV가 제공하는 전쟁의 단편적인 이미지일 뿐이다. 그 단편적인 이미지 조차도 사실이 아닌 왜곡의 가능성이 크다.

결국 영화 속 TV의 존재는 전쟁 또는 진실의 전모가 아니라 편린만을 보여주는 TV 보도의 한계성을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전쟁에 관련된 TV 보도는 베트남 전쟁 당시의 미국뿐만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오늘날까지 전 지구적으로 지속되고 있기에 코폴라의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야만과 폭력의 역사

<지옥의 묵시록>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역시 전쟁광 킬고어의 부도덕하고 부조리한 모습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해변의 베트콩 마을을 공습하는 시퀀스’다. 표면상 마을을 공격하는 이유는 윌라드 일행의 초계정을 그곳까지 호위하기 위해서이지만, 킬고어에게 더욱 중요한 이유는 그 마을의 해변에서 유명한 서핑 선수의 묘기를 보기 위해서이다. 그의 헬기 부대가 이륙할 때 나팔수는 마치 아메리카 원주민을 토벌하기 위해 기병대의 출동을 알리듯 나팔을 불어댄다.

특히 킬고어는 베트남인들을 ‘야만인’이라고 부르거나 경멸하는 호칭들을 사용하는데, 이는 『암흑의 핵심』에서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터무니없이 ‘범죄자’ ‘반역자’ 등으로 몰아세웠던 것을 연상시킨다. 세계 최강의 미국도 폭력과 야만의 역사 위에 세워진 국가라는 점에서 『암흑의 핵심』에서 언급되는 로마 제국이나 대영제국과 다를 바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콘래드 소설의 현대적 해석을 통하여 탄생한 코폴라의 <리덕스>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에드워드 카의 명제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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