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컨설팅 개입 3년…생산량 급감, 증오와 원한만 남아
노조 취재조차 방해…취재진 건조물 침입으로 112 신고

2011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연봉 8000만원을 받는 귀족 노동자들의 파업”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었다. 모든 언론이 대통령의 말을 따라 노조를 비난했지만 진실이 드러나는 데에는 채 2년도 필요하지 않았다.

드러난 진실은  진상 귀족노동자들의 모습이 아니라 돈으로 매수된 창조컨설팅의 계획된 노조파괴 작전에 불과했다.  "검찰이 밝히지 못하면 그보다 몇 배 유능한 수사관인 세월이 언젠가는 진실을 파헤친다"고 말한  강천석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말처럼 노조파괴 실체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힘으로 노조를 누를 수 있다고 꼬드긴 창조컨설팅. 그 말에 호응해 십 수억원이 넘는 돈을 아낌 없이 제공한 사용자. 3년 동안 노사의 손익을 계산해본다.

▲ 유성기업의 얼어 붙은 노사관계 단면일까. 회사는 노조가 부착한 현수막에 대해 법적 조치를 경고하고 노조는 아랑 곳 없다. 눈 덮인 산을 뒤로 한 채 바람에 나풀거리는 현수막이 한 겨울 서낭당같은 을씨년스런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사진/육성준 기자

모든 것이 얼어 붙었다. 사람은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의 칼날은 욕설보다 날카로웠다.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휩쓴 유성기업은 제3자가 보기에도 사람이 살지 않는 화성같은 동네였다. 노사가 한 솥밥을 먹는 다는 것이 신기해 보일 정도였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이 났을 때  서쪽지역을 점령한 연합군과 동쪽지역을 점령한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이하 소련)의 이해관계에 따라 독일은 2개의 국가로 나뉘었다. 독일의 수도였던 베를린.

이곳도 2개 구역으로  분할 돼 서쪽은 미‧영‧프 연합국이 주둔하는 서베를린, 동쪽은 소련군이 주둔하는 동베를린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문제는 베를린이 소련군이 주둔하는 동독 지역안에 있는 고립된 섬이라는 데 있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인류 최대의 냉전 시대. 하지만 이때도 출입자체는 통제되지 않았다. 동독은 서독지역에서 서베를린까지 연결되는 고속도로는 개방했다. 이를 통해 서독 국민들은 자유로이 동독 땅 안에 있는 서베를린을 드나들 수 있었다.

하지만 유성기업은 그러지 않았다.

충청북도 영동군 용산면 백자전리에 위치한 (주)유성기업 영동공장. 겨울에 공장안으로 들어온 고라니를 잡을 정도로 외진 산골에 위치해 있다.  공장으로 들어가는 길은 험난했다. 길을 따라 노사 갈등에 대한 원한서린 내용을 담은 노조 현수막이 걸려있다.

유성기업 사측은 노조의 현수막으로 인해 회사의 명예가 실추되고 직원들이 정서적 피해를 입는다며 사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경고 문구가 담긴 피켓을 설치했다. 현수막과 피켓에는 노사 모두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기, 아니 살기(殺氣)가 가득 풍겼다.

유성기업의 노조 사무실은 정문에서 20m 남짓 떨어져 있다. 하지만 사전 취재 일정을 약속한 본보 취재진의 노조 방문은 회사에 의해 가로막혔다. 경비실에 신분과 사전 약속을 밝혔지만 유성기업 회사 관리자는  막무가내였다. “이곳은 회사 땅이지 노조 땅이 아니다. 당장 퇴거하라”며 취재를 가로 막았다.

이정훈 유성기업 노조 지회장이 “우리집에 온 손님인데 왜 가로막나. 노조가 언론에 입장을 밝히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회사 관리자는 취재진의 옷을 잡고 “당장 나가지 않으면 건조물 침입 현행범으로 신고하겠다”고 위협했다.

이 관리자는 취재진에게 “노조를 취재하고 싶으면 회사 밖에서 하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말하면서 손으로 길거리를 가리키기도 했다.     

“어떻게 밥을 같이 먹나”

우여곡절 끝에 정문에서 20m에 위치한 노조 사무실을 방문했지만 취재는 순탄치 않았다. 노조 사무실을 방문한 지 10분 정도만에 용산파출소 소속이라고 밝힌 경찰관 3명이 출동했다. 

자신의 신분을 용산파출소장이라고 밝힌 경찰관은 “회사가 주거침입으로 112로 신고했다”고 말한 뒤 “자기집에 손님을 데리고 온 건데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유성기업의 노사관계는 없었다. 노사관계자의 대화는 욕설과 증오로 얼룩졌다. 이정훈 지회장에 따르면 금속노조와 비노조원들은 같은 곳에서 밥도 먹지 않는다. 

영동공장 노동자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기존 회사 식당에서 밥을 먹고 비조합원들은 다른 관리동에서 밥을 먹는다. 식구란 ‘같은 집에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 이란 뜻이다. 이런 면에서 유성기업 직원들은 더 이상 한 식구가 아니다.

실제로 창조컨설팅 노조 파괴 시나리오가 휩쓸고 간 자리는 끝내 죽음으로 얼룩졌다.  

2011년 6월 파업 도중 업무 복귀한 유 모씨. 그는 복귀 후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게 회사로부터 통제당한 상태에서 장시간 노동과 구사대 역할을 수행하다 중증우울증에 걸렸다. 유 씨는 이후 고통을 호소하며 다섯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결국  유 씨는 같은 해 12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런 상황은 비단 유 씨만이 아니다. 지난 6월 근로복지공단 청주지사로부터 업무상 재해 판정을 받은 유성기업 영동공장 노동자 김 모 씨.

김씨는 2011년 5월 18일부터 용역경비업체 컨택터스 관계자들에게 폭행당해 피를 흘리고 쓰러지는 모습을 목격했다. 차후에 법원이 불법으로 판결한 유성기업의 장기 직장폐쇄로 비닐하우스에서 3개월을 농성했고 이후 구사대와 충돌하면서 심한 스트레스와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이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은 “김 씨가 정신질환과 관련한 가족력 및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경력이 전혀 없고 위와 같은 상황에서 발병한 것이라는 의학적 소견이 있다”며 “설령 신청인의 성격적 특성으로 스트레스에 대한 취약성이 내재하고 있었더라도 극도의 불안감 등이 계속되는 조건과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겪은 정신적 스트레스와 충격으로 이 사건 상병이 유발되었거나 자연적인 진행경과 이상으로 악화되었다고 추단할 수 있다”고 산재 인정사유를 밝혔다.

전쟁에나 나올 법한 죽고 죽이는 관계. 유성기업 사측은 계속해서 소속 노동자에 대한 법적 권한을 행사했다. 지금까지 영동공장에서 10여명의 노동자를 해고 했고 수십 명의 노동자를 징계했다. 

노조 관계자들은 유성기업의 노동자에 대한 해고에 대해 ‘생존권을 볼모로 한  사적(社的) 살인’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해고에 대해 법원은 현재까지 모두 부당해고로 판결했다.

회사의 법적 권한 남용은 이제 부메랑이 돼 거꾸로 회사를 향하고 있다. 창조컨설팅이 개입해 노조 파괴 공작을 실행한 유성기업, 보쉬전장 등 피해 노동자들은 연합해 대전고등법원 앞에서 6개월째 노숙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창조컨설팅과 회사의 노조파괴 증거들이 이미 드러났다. 이는 노동조합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노조파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며 검찰이 부당노동행위 불기소 처분에 항의해 대전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접수한 뒤 계속해 농성을 펼치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단 하나,  불법을 저지른 사용자가 법적인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법으로 금지돼 있는 인위적인 노조 파괴. 이를 유혹한 창조컨설팅은 해체되고 없지만 그들이 떠난 빈 자리에서 노사는 현재까지 ‘전쟁 중’이었다.

생산량도 급감, 전년대비 10% 하락
2013년 월 399만9423 생산…2014년 362만6932로 하락

악화된 노사관계 탓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공교롭게도 유성기업의 생산량은 지속적으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성기업이 작성한 ‘2014년 12월 생산계획수립 WORKFLOW'란  문서에 따르면 전해에 비해 10% 가량 생산량이 감소했다.

이 문서를 보면 2013년에는 월 평균 399만9423개가 생산됐지만 2014년에는 월 평균 362만6932개로 하락했다.

이에 대해 유성기업 노동자 김 모씨는 “일할 때 즐거움이 없다. 회사가 동원한 용역깡패가 쇠파이프로 우리를 때렸다. 내 동료가 자살도 했다”며 “회사를 위해 일한 다는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