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들은 언제까지 이렇게 패를 갈라 싸울 것인가. 그것은 황하의 흙탕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부질없는 일인가.

 대통령 탄핵에 이어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싸고 다시 국론이 둘로 갈려 논쟁이 가열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소회는 그렇습니다. 그것은 수백, 수 천년을 편갈라 내려온 민족성 때문인지, 아니면 시대의 이슈가 연거푸 국민들을 갈라놓는 것인지, 몽매한 필부로서는 분간할 길이 없습니다.

 남북이 날카롭게 대치하던 1970년대 초 한국에 주둔중인 미8군은 하나의 극비문서를 작성합니다. 휴전선이 아닌 후방에서 서울을 쑥대밭으로 만드는데는 얼마나 많은 병력이 필요할까? 답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훈련된 특공대 20명이면 충분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워낙 많은 인구가 한 지역에 지나치게 밀집해 있다보니 20명이 서울 시내에 분산해 일시에 폭탄으로 공격하면 수도 서울은 순식간에 수습할 수 없는 아수라장에 빠진다는 게 핵심 골자였습니다. 폭발직전인 서울의 과밀한 인구가 작전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유신치하의 때가 때인지라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쉬쉬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군사기밀상 어느 매체도 감히 이를 보도 하지 못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7년 서울시 연두보고자리에서 임시행정수도 구상을 선언 한 것은 수도권의 포화상태가 배경이긴 했지만 바로 이 보고서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행정수도 언급이 있자 신문들은 하나같이 박대통령을 치켜세우고 앞다퉈 지지의사를 밝혔습니다. 신문들은 ‘대통령의 일대 영단’이라면서 “행정수도 건설은 박대통령의 영도자로서의 심모원려(深謀遠慮)에 의한 구상”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때 서울시 인구가 752만이었는데 해마다 지방에서 올라오는 유입인구가 엄청나던 터라 행정수도 구상에 대해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던 게 당시 사회분위기였습니다.

 정부는 곧 일사천리로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했고 예정지로 공주군 장기면이 확정됐다는 소문이 파다한 가운데 정감록의 예언지가 계룡산인데 신통하게도 그곳이 현실화된다는 얘기도 함께 나돌았습니다. 1979년 박대통령이 비명에 가지만 않았던들 행정수도는 일찌감치 이번에 후보지가 된 연기·장기지구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지난해말 기준 서울의 인구는 1027만 명입니다. 서울의 면적은 605.41㎢(약183.136.647평)로 전 국토 면적 99.585㎢의 0.6%이지만 인구는 전국민의 20%입니다.

 또 국토의 11.8%에 불과한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 인구는 46.3%나 됩니다. 전 세계를 통틀어도 인구가 이처럼 한곳에 밀집한 기현상의 나라는 대한민국 말고는 없습니다.

 수도권의 인구 과밀은 국가적 골칫거리입니다. 노대통령이 아니라 누가 대통령이 된다한들 행정수도 이전은 국정추진 과제 1순위입니다. 왜, 박정희가 20수년 전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했고 92년대선 때 김영삼이, 97년대선 때 이회창이 대선공약으로 똑같이 행정수도이전을 히든카드로 내 놓았겠습니까.

 소위 조중동으로 일컬어지는 메이저 신문들이 박정희의 행정수도 이전에는 ‘위대한 영단’이라고 칭찬을 하고 김영삼, 이회창의 대선공약에는 침묵하다가 노무현의 수도이전에는 거품을 무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노무현이 싫은 겁니다. 노무현이 미우니까 행정수도고 뭐고 다 싫은 겁니다. 내 말이 틀립니까. 아닙니다. 국가의 현실이나 장래를 생각할 필요도 없이 노무현대통령이 추진하는 한 어떤 일이건 그것은 반대인 것입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 말입니다.

 이 무슨 무책임한 행동입니까. 지난 연말 국회에서 만장일치에 가깝게 찬성을 했던 한나라당이 몇 달 사이에 반대로 돌아서서 없던 일로 하자고하는 국민을 우롱하는 이 작태야말로 고약한 코미디입니다. 박근혜 전 대표가 명확히 반대를 하지 않는 것은 아버지가 했던 일을 너무나 잘 알고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역사는 흐릅니다. 그리고 증언합니다. 나라의 장래를 길게 보는 안목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오늘입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