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옥의 묵시록>으로 이어진 소설, 영국의 야만을 되묻다

영화를 통해 문학 읽기17

윤정용 평론가

조셉 콘래드는 원래 폴란드 부모 사이에서 출생했으나 폴란드 독립 운동에 참가했던 그의 아버지가 북러시아로 유형당한 끝에 죽자 삼촌에게 양육되었다. 그 후 선원이 되어 세계 각지를 항해하다가 영국에 정착하면서 ‘전업 작가’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특이한 인생 역정에 걸맞게 평생 ‘아웃사이더’로, 그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이중 인간’(homo duplex)으로 살았다. 콘래드의 소설이 대부분, 영국 이외의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은 오랜 기간에 걸친 선원 생활과 평생 아웃사이더일 수밖에 없었던 그의 삶에서 비롯한다.

지구촌 곳곳을 누비고 다닌 경험은 콘래드가 후에 쓰게 될 소설들의 풍요로운 원천이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바다는 T.S. 엘리엇의 표현을 빌자면, 콘래드의 정신세계에서 형성되는 관념을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객관적 상관물”이다.

증기선의 선장이 된 작가

▲ 지옥의 묵시록 Apocalypse Now , 1979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출연 말론 브랜도, 마틴 쉰, 로버트 듀발, 프레드릭 포레스트
콘래드의 다층적인 정체성은 무엇보다도 언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의 삶의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선원이 되기 위해 성인이 되어 영어를 배웠기 때문에 영어보다는 프랑스에 능통했다. 언어 구사력에서 보았을 때 영어는 폴란드어, 프랑스어 다음이었다. 그래서 콘래드에게 있어, 영어로 소설을 쓴다는 것은 두 언어로부터의 번역 과정을 거치는 정교하고도 복잡한 작업이었다.

『암흑의 핵심』을 비롯해 『로드 짐』,『노스트로모』등의 작품들은 모두 작가 자신의 이런 내적 번역 과정을 거친 산물이다. 요컨대, 콘래드의 작품들은 제1차 세계대전 이 후 실존주의적 인간관과 엄격한 정치인식을 환기시킨 바, 현재 콘래드는 영국 문학 더 나아가 세계 문학에서 19세기와 20세기를 연결시키는 중요한 작가로 인식된다.

『암흑의 핵심』은 콘래드의 자전적 체험의 기록이다.『암흑의 핵심』은 서술자 말로우의 체험담으로 시작한다. 그는 젊은 시절 숙모의 도움으로 벨기에 통치령 콩고(사실은 국왕 레오폴드 2세의 사유지)에서 오지를 운항하는 증기선의 선장이 된다.

콩고에 도착한 말로우는 며칠을 초조하게 기다린 끝에 무역기지의 감독관이 있는 곳으로 출발한다. 그런데 말로우가 도착하자 감독관은 그가 운행하기로 되어 있던 증기선이 며칠 전에 가라앉았다고 말한다. 결국 그는 증기선을 수리하는 동안 하릴없이 기다린다.

그 사이 말로우는 현지 책임자 커츠에 대한 소문을 전해 듣는다. 소문에 따르면, 커츠는 원주민들을 ‘교화’하는 데 있어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며, 동시에 기록적인 양의 상아를 실어 육지로 보냈다. 말로우의 임무는 그런 커츠를 콩고의 오지로부터 데리고 나오는 일이다.

말로우는 어렵게 수리한 배를 타고 감독관과 함께 커츠를 찾아 나선다. 말로우는 러시아 여행객으로부터 커츠가 아주 심각하게 아픈 상태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말로우는 커츠가 원주민들을 문명화시키기는커녕, 그들과 다름없는 야만 상태가 되었으며, 상아를 얻기 위해서 사람들을 죽이는 등 온갖 야만적인 짓들을 서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커츠가 죽인 원주민들의 두개골들을 오두막 주위의 막대기에 꽂아놓은 모습을 망원경으로 직접 확인한다. 감독관과 말로우는 병에 걸린 커츠를 송환하려고 증기선에 태우는데, 증기선에 수리되는 동안 커츠는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악과 ‘어둠의 심연’을 깨닫고 “무서워! 무서워”라고 절망적인 회한의 통곡을 내뱉으며 죽는다.



유럽식민지의 위선과 허상

말로우는 콩고의 오지에서 빠져나온 후 유럽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1년쯤 후, 벨기에에 사는 커츠의 약혼녀를 찾아간다. 그녀는 아직도 커츠가 고귀한 사명을 띠고 아프리카로 파견되었다고 믿고 있다. 표면상 말로우의 이야기는 아프리카 체험담이다.

말로우는 야만인들과의 만남, 위험한 정글, 포악한 야만성, 식민주의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는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심층적 차원에서 살펴보면, 말로우의 주요 관심사는 문명화된 유럽의 잔혹함과 탐욕, 그리고 야만적인 상황과 환경에서 발생하는 복잡다단한 문제들이다. 말로우는 커츠를 통해 자신을 비롯한 유럽 식민주의자들의 위선과 허상을 목도하게 된다.

말로우, 더 나아가 콘래드가 의혹과 환멸의 시선으로 바라본 대상은 당시 벨기에의 잔혹한 제국주의에 국한되지 않는다. 고대 시대 영국을 침략해 정복했던 로마인들이 당시 최고의 문명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정치적 이익을 위해 폭력행위를 저질렀다는 말로우의 언술은 서구 문명의 밑바탕에는 탐욕과 야만이 내재되어 있다는 비판으로 읽힌다.

이는 말로우의 이야기를 전하는 익명의 화자가 19세기 말 세계 최강국인 대영제국의 찬란한 과거와 현재에 대해 느끼고 있던 자부심과 낙관론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발언과 공명한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거짓과 위선, 폭력과 야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1979)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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