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헌 한의원 원장

▲ 임종헌 한의원 원장
어느 날 여럿이 국수를 먹으러 갈 일이 생겼다. 마침 후배가 승용차를 가지고 와서 얻어 타게 됐다. 후배는 “앞자리에는 짐이 있어서 불편하니 뒷자리에 타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후배의 승용차 뒷자리에 타고 가서 국수를 먹었다. 그리고 올 때도 뒷자리에 타고 왔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내가 승용차 뒷자리에 앉은 모습을 보고 안 좋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전후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은 승용차 뒷자리에 앉은 내 모습이 상당히 고지식하고 권위주의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차를 탈 때도 조심해야겠다. 뒷자리에 타면 고지식하고 권위주의적인 사람으로 비쳐질 수도 있으니까.

또 다른 어느 날 다도인들과 전통차를 마실 기회가 있었다. 말차라는 것을 마시게 되었는데, 나는 ‘다도’의 ‘다’자도 모르는 사람이라 아무 생각 없이 찻잔을 한손으로 들고 마셨다. 그런데 옆 사람은 찻잔을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들고 마시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는 내가 다도에 어긋난 행동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두 손으로 찻잔을 받들었다.

다도인들에게는 내가 다도에 무식한 사람으로 보였을 거다. 내가 다도에 대해 문외한이니 그들이 나를 그렇게 생각한대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다도의 격식과 예법이 까다롭고 번거로운 것이라면 나는 앞으로 전통차를 마시고 싶지 않다. 전통차가 커피에 밀리는 이유도 아마 번거로운 격식이나 예법 때문이 아닐까 한다. 커피를 한손으로 마신다고 뭐라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격식과 예법은 누가 만들었을까? 예로부터 왕실이나 귀족, 사대부 등 지배층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지배층은 까다로운 격식과 예법을 하층민들에게 강제함으로써 체제에 순응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그래서 체제가 경직된 사회일수록 격식과 예법이 까다롭고 번거로운 경향이 있다. 내가 번잡한 격식과 예법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번잡한 격식과 예법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시간이 많은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다. 다도가 유한마담들의 전유물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번잡한 격식과 예법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에겐 사치일 수도 있다.

다도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다성으로 불리는 초의 선사다. 초의 선사도 말년에는 다도의 예법 같은 거 다 버리고 바가지에 차를 넣은 다음 물을 부어서 훌훌 마셨다고 한다. 다도에서 형식을 버린 초의 선사는 우리에게 차를 대하는 자세, 차를 마시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격식과 예법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상호 평등한 관계 속에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격식과 예법을 아무리 차려도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게 무슨 소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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