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복 청주노동인권센터 노무사

▲ 조광복 청주노동인권센터 노무사
2008년이었을 게다. 단양버스 노동자들이 사장한테 하도 시달림을 받아서 여러 차례 단양으로 넘어갔더랬다. 청주에서 승용차로 가자면 제천을 거치는데 수산면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거기 무척 오래된 건물에 ‘서울의원’ 간판이 걸려 있었다. 출입문은 꾹 닫혔고 빛바랜 종이에다 매직글씨를 써 붙여 놓았던 것이 아직껏 기억에 삼삼하다.

“37년 동안 서울의원에서 진료를 보면서 주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제 더 이상 몸이 불편해 진료를 볼 수 없습니다. 소중한 37년의 인연을 뒤로 하고 주민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합니다.”

같이 갔던 김남균(당시 민주노충충북본부 비정규부장)도 이 글이 와 닿았나보다. 지역신문 칼럼에 소개하기도 했다.

시골마을에 사는 것이 소망인 나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내가 들어갈 마을엔 여름에 그늘 잘 들고 겨울엔 볕 잘 드는 곳에 널찍한 평상 하나 쯤 있어야겠지? 난 그 평상에 앉아서 슈퍼에다 막걸리 한 주전자와 계란 ‘후라이’ 다섯 장을 시켜먹을 거야.

얼마 전 청주노동인권센터에서 충북 음성 지역에 노동상담소(가칭)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내년 초에 추진할 것이다. 참 감개무량하다. 센터 설립 4년 만에 내가 꿈꾸는 마을의원 같은 상담소를 하나 더 늘리게 되었다는 감회 때문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20여 년 전에 그런 곳이 제법 있었다. 노동자의집, 노동상담소 같은 이름을 걸고 기댈 곳 없던 노동자들의 지역 사랑방이 되었던 곳들이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공식 출범한 후 거의 소멸했다. 아마도 거기서 일했던 분들이 많이들 민주노총으로 옮겨 갔을 테고 거기다 민주노총이 노동상담소의 역할을 흡수했던 것도 이유가 되었을 게다.

하지만 나는 노동인권센터에 몸담으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마을의원 같은 노동상담소들이 늘어야 한다는 생각을 키우게 되었다.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같은 곳에서 일을 못 해서가 아니다. 사람의 몸을 고치는 일도 종합병원과 동네의원과 보건소가 각기 필요하듯이 주위에 쌔고 쌘 노동자들에게도 가까이서 의지할만한 상담소들이 있었으면 하는 거다.

그런 일을 하자고 청주노동인권센터를 설립했다. 안타깝게도 전국의 민간단체인 노동상담소, 노동인권센터들은 거의 없어졌거나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빈 자리를 자자체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비정규직지원센터들이 채워가고 있다.

물론 지원센터들도 많이 생길수록 좋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은 허전하다. 이를테면 상담을 통해 인연을 맺었던 노동자가 술 한 잔 걸치고 함께 정을 나누자고 소주 한 병에 순대 한 접시 사들고서 사무실 문을 여는 풍경이 나는 좋은 것이다(이 글을 쓰는 도중 동일운수 기사 두 명이 술 한 잔 마시고 찾아와 소주 한 병 대신 빵을 주섬주섬 내놓았다).

물론 나도 느낀다. 이런 소망을 이루기가 참으로 난망한 일이 되었다는 것을. 사회운동도 이제는 경제적인 안정을 토대로 삼아 분업화, 전문화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멀찍이 갔다는 것을 말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산하에 법률원이나 법규담당 부서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도, 노동단체들이 지자체로부터 비정규직지원센터를 수탁 받는 것도, 많은 인권 노무사들이 개업을 하여 활동하는 것도 다 그런 양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시대를 거스르고 싶다. 노동자들이 먹여 살리는 노동인권센터, 노동상담소가 얼마나 근사하고 활력 넘치는 것인지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꿈꾼다. 제천시 수산면의 서울의원 원장님이 마을 주민에게 보낸 작별인사처럼 먼 훗날 주위 노동자들에게 따뜻한 작별인사 나눌 수 있는 마을의원 같은 상담소들이 이곳저곳에서 자꾸 만들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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