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실제 겪은 이야기를 그린 김정애 산문집 <길 끝에서 천사를 만나다>

이종수
청주 흥덕문화의집 관장

가족의 완성은 늘 벼랑과도 같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장례식장이나 화장터 같은 쓰거운 눈물의 백척간두에서 완성되는. ‘엄마와 사춘기 딸이 함께한 치유 에세이’란 부제에서 각자의 가족 모습이 떠오르지 않나.

<길 끝에서 천사를 만나다>란 제목을 달기까지의 가족사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사춘기에 이른 아이는 외계인이란 말이 있지 않나. 외계인은 우리와 다른 종족이어서 어마어마한 힘에 맞서 싸울 필요가 없다, 체면만 구겨질 따름이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명언을 믿고 기다려보자는 집들이 얼마나 많은가.

일간지 기자 생활을 하던 저자는 사표를 쓰고 어느날 홀연히 외계인과 함께 인도로 떠났다. 제도권 교육 현실에서 스스로 종양 하나를 안고 떨어져나가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헤아려 보니 2년 3개월씩이나 지구를 떠나있었던(우리 눈 밖에 나면 그것이 지구를 떠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셈이다.

돌아와서야 오래 비우고 떠났음을 알았으니 이 또한 소용이 없다. 무슨 애절한 사연을 안고 인도라는 만만치 않은 곳을 다녀왔을까, 수능을 앞둔 고3의 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이 더 뜨거운 솥뚜껑에 손을 데이는 것처럼 아찔했을 텐데, 무슨 마음으로 다시 돌아왔을까, 그때는 적잖이 궁금하고 의아하기도 했다.

여기가 어디인가. 지구 가운데 가장 뜨겁고 난감한 과제가 산적한 곳 대한민국. 두 모녀는 다시 한국적인 삶을 살기 위해 엄마는 다시 기자가 되었고 딸은 대학 진학을 한다. 우리들 기억에서 잠깐 바깥 마실을 하면서 사라진 것 말고는 변한 것은 없는 듯하다.

우주 신세계를 보고 온다한들, 젊어지는 샘물을 마시고 돌아온들 여기가 어디인가. 변화하지 않는 대한민국 아닌가. 불시착이란 말은 이런 경우에 하는 것이리라. 친구 없이 혼자 집에서 공부만 해야 하는 딸과 그녀가 밥벌이를 질끈 감고 쓰는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긴장어린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엄마 사이의 갈등이란 이루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벼랑에서 만난 천사

▲ 제목: 길 끝에서 천사를 만나다 지은이: 김정애 출판사: 옐로스톤
이때 책 제목처럼 나타난 천사가 일본 여인 쿠마리다. 길 끝에서 만난 천사라기보다 벼랑에서 만난 천사라고 해야 맞는 말이다. “살다 보면 우리는 수많은 천사를 만난다.그동안 곁을 스쳐간 수많은 천사들 중에 특별한 천사와 함께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겹쳐 떠올리는 그림책이 있다. 바바라 쿠니의 그림책 『에밀리』에 나오는 옆집 아주머니가 준 시,
지상에서 천국을 찾지 못한 자는
하늘에서도 천국을 찾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어디로 가든 간에
천사들이 우리 옆집을 빌리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이기도 한 이야기에서 천사는 길 끝이 아니라 우리 옆집, 아니 우리 집으로 찾아온 치유의 천사이기도 했던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딸과 함께 인도로 배낭여행을 가서 겪은 오로빌 공동체와 티루반나말라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 진학을 위해 가정학습을 하는 과정에서 겪은 갈등의 끝 길에서 만난 쿠마리가 그림책에서 만난 시와 다름없다.

치유의 전성시대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가족이란 가장 작은 테두리에서도 욕심, 오만, 집착, 화, 두려움이 범벅이 된 힘에 휘둘려 살고 있다. 그래서 언젠가 쓴 시에서 가족의 완성은 장례식장과 화장터에서야 이루어진다고 한 적이 있다.

실제로 가장 가깝고 살가운 줄만 알았던 가족이 가족을 핍박하고 미워하면서 만들어진 나쁜 에너지가 길 끝에서 폭발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자유롭고 평화로워진다는 말을 참뜻의 이름으로 불러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가족 안에서 찾고 궁리하고 실천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