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연의 소설 『DMZ』

영화를 통해 문학 읽기16

윤정용 평론가

재료가 조금 부족하다고 느껴질지라도 영화적 완성도로 그 부족함을 채우는 드문 경우도 있다. 아니 영화가 조금 부족한 원작 소설을 빛나게 해준다. 개인적으로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JSA>(2000)는 문학적으로 조금 부족해 보이는 작품을 원작으로 했지만 좋은 결과물로 이어져, 영화를 통해 문학 작품을 빛나게 해 준 좋은 예라는 생각이 든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공동경비구역JSA>는 박상연의 소설 『DMZ』(1996)를 원작 소설로 하고 있다. 사실 영화가 개봉될 당시에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한 동안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재작년인가 한 시네마테크에서 주관한 영화 강좌를 들으며 잊고 있던 그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글은 기본적으로 당시의 영화 강좌 내용에서 촉발되었음을 밝힌다.

소설 『DMZ』는 주인공 지그 베르사미가 판문점 총격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메인 플롯과 그의 가족사라는 서브플롯으로 구성되어 있다. 베르사미는 중립국 장교로서 판문점에 발생한 총격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그는 생물학적으로는 한국인 아버지를 두고 있지만, 그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오직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애쓴다. 이 소설에서 조금 특이한 점은 판문점 총격사건에서 ‘누가 (먼저) 총을 쐈느냐’보다는 ‘왜 쐈느냐’를 규명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주인공의 복잡한 가정사

▲ 공동경비구역 JSA Joint Security Area, 2000 감독 박찬욱 출연 송강호, 이병헌, 이영애, 김태우
메인 플롯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주인공 베르사미의 가족사가 길게 펼쳐진다. 즉 베르사미의 아버지 이연우는 6.25 전쟁 당시 인민군 포로였고, 그의 동생 이연철은 국군포로였다.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 갇힌 상황 속에서 포로 간에 서로 충돌이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이연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동생 이연철을 죽이게 된다.

그는 동생을 죽였다는 죄의식에 시달리고, 정치적으로는 자신의 정신적 지주였던 박헌영이 숙청당한 것에 대해 절망감을 느껴 결국 제 3국 브라질로 떠난다. 그 곳에서 스위스의 좌파 지식인 여성을 만나 결혼하고 정착하지만 그러나 동생을 죽였다는 심리적 외상과 정치적인 절망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그의 괴로움은 아내와 아들에게 투사된다.

소설은 공학적으로 아쉬움 남겨

소설 『DMZ』는 일단 굵직한 ‘서사’가 있는 소설이다. 요컨대 이 소설은 판문점 북쪽에서 벌어진 남한 병사에 의한 북한 병사 총기 난사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일종의 추리 기법으로 전개해 나가고 있다.

90년대 중반 많은 젊은 작가들이 서둘러 정치와 역사와 현실로부터 일탈하고 대신 개인으로 탈주하려는 경향이 득세한 가운데, 신인이 과감하게 ‘분단’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새롭게, 아니 과감하게 들고 나온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또한 분단이라는 상황을 정치적으로 편향되지 않고 베르사미로 시선을 통해 중도적으로 바라보고 역사를 현재화하고 있다는 점은 이 소설의 특장으로 꼽을만하다.

물론 소설 『DMZ』에서 몇 가지 아쉬운 점이 남는 게 사실이다. 먼저 주인공의 복잡한 정체성에 관련된 정보를 필요 이상으로 미리 밝히는 바람에 추리 소설로서의 극적 긴장감이 떨어진다. 서사적 구조의 취약함으로 인해 주제가 분산되어 앞에서 언급한 뛰어난 장점에도 불구하고 소설 『DMZ』는 소설 공학적으로 아쉬움이 남는다.

반면에 영화 <공동경비구역JSA>는 원작소설에서 무겁고 장황하게 전개되는 주인공 소피 장의 가족사를 과감하게 덜어내고 대신 사건의 전말을 수사하는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장면을 의도적으로 세세하게 나누어 전개하고, 작품 전반에 걸쳐 플래시 백 기법을 통해 사건을 되짚어 가면서 극적 긴장감을 조성하고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무엇보다도 영화 <공동경비구역JSA>의 가장 큰 매력은 출연배우들의 인상적인 연기와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이다. 감독은 배우들의 과도한 감정의 분출이 아닌 감정의 절제를 통해 시종일관 영화를 통제하고 있다.

또한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상적이거나 정치적으로 풀지 않는다. 즉 소설에서는 슬픈 가족사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면, 영화는 남북한 병사들의 끈끈한 형제애에 방점을 찍고 있다.


영화를 통해 소설이 ‘무임승차’

그러나 감독은 낭만적으로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우연적인 총격 사건을 통해 현실은 냉정하고 비참하다는 것을, 그렇기에 더욱 아프다는 것을 환기 시킨다. 그 과정에서 남측 병사 남성식과 이수혁의 자살을 극화하면서 비극성을 고조시킨다. 즉 감독은 이들의 죽음을 통해 그들이 꿈꾸던 세계가 붕괴되었다는 것을,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환기시킨다.

결론적으로 영화 <공동경비구역JSA>는 서사구조가 탄탄하고 주제가 남북한 병사의 형제애라는 주제를 선명하게 극화하고 있다. 대체로 원작 소설을 영화화 한 많은 작품들이 원작 소설을 제대로 형상화하지 못했다는 비판 또는 비난을 받는 현실을 고려할 때, 영화 <공동경비구역JSA>는 소설의 한계를 극복하고 영화의 텍스트적 가치를 예증했다고 할 수 있다.

대체로 원작소설을 영화한 작품들은 원작 소설의 유명세에 일정부분 ‘무임승차’를 하는 반면 <공동경비구역JSA>는 오히려 소설을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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