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일아, 여기가 니 고향 부산이다. 제발 눈 좀 떠봐라.” 사랑하는 아들이 먼 이국 땅에서 무장괴한들에게 납치돼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오자 아버지, 어머니는 땅을 치며 통곡합니다.


 부모의 애끓는 단장(斷腸)의 메아리는 이 땅의 모든 부모들 가슴, 가슴마다에 비탄(悲嘆)의 화살이 되어 꽂힙니다. 그것이 어찌 그 두 부모만의 일이겠는가. 자식을 가진 모든 부모들의, 아니 온 국민의 슬픔이 아니겠는가.

 
아버지는 통곡합니다.“결국 죽은 몸으로 돌아왔구나.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데이. 내 죽거든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 제이”라며 오열합니다. 실신을 거듭하는 어머니는 “이제 무슨 할 말이 있겠니. 너는 이미 가고 없는데…. 조금만 기다려라 엄마도 곧 네 곁으로 따라가겠다”며 하염없이 눈물짓습니다.


옛말에 “자식은 부모를 선산(先山)에 묻지만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하였습니다.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 오호, 통재라.


[2]

 8월이면 자이툰부대가 이라크로 떠납니다. 날마다 자살폭탄이 잇따르는 불안한 그곳으로 3000명의 국군이 갑니다. 돈을 벌어 공부하겠다던 김선일씨가 억울하게 살해당한 그곳으로 우리 젊은이들이 갑니다.


 미국과의 동맹관계, 신의(信義)때문이라고 합니다. 국익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대통령도 그렇게 말하고 여당, 야당도 그렇게 말합니다. 신문들 또한 덩달아 그렇게 부채 질 합니다.

반대의 목소리도 세찹니다. 전국 곳곳에는 다시 촛불이 켜지고 파병 철회를 외치는 시민들의 함성 또한 커져만 갑니다. ‘파병 찬성’, ‘파병 철회’. 국론은 또 둘로 갈라졌습니다.


 외면 할 수 없는 한미관계 때문이라는 현실론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더 솔직히 말해 미국과 등을 지고 대한민국이 편안할 수 없다는 것을 왜 모르겠습니까. 딱하지만 딜레마가 거기에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그것은 눈앞의 국익만 보는 것입니다. 역사를 두려워 할 줄 안다면 크게 봐야합니다. 파병은 정당성도 명분도 없습니다. 미국이 무슨 말을 한다해도 이라크 전쟁은 침략전쟁입니다.


 우리는 월남전을 기억합니다. 미국이 일패도지(一敗塗地)한 그 전쟁에서 5000명의 우리 국군이 정글에서 전사했습니다. 수만 명이 부상했고 많은 이들이 고엽제후유증으로 지금도 고통받고 있습니다. 당시 격전지 곳곳에는 ‘한국군을 잊지 말자’는 월남국민들의 한 서린 표적비가 세워져 있다고 합니다. 그 전쟁이 애당초 잘못되었듯 이라크전쟁 역시 잘못된 전쟁입니다.

 
 모두 보았을 것입니다. 무자비한 폭격에 폐허가 된 도시들, 아비규환 속에 울부짖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더러운 전장에 우리 국군이 침략자의 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라크 파병은 역사의 오점이 될 것이 명백합니다. 어떤 명분으로도 파병이 합리화 될 수 없습니다. 정부는 긴 안목으로 역사를 보아야 합니다. 찬성이 ‘눈앞의 작은 국익’이라면 반대는 ‘역사의 큰 국익’입니다. “나는 살고싶다”를 절규하던 김선일씨가 왜 목이 잘려 죽어야 했습니까. 그 단말마(斷末魔)의 모습이 파병의 옳고 그름을 웅변으로 말해주지 않습니까.


[3]

 고향에 청포도가 익는다는 7월입니다. 가난했지만 지난 시절에는 이런 여름이면 산천에는 시가(詩)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나라에는 살벌한 대립과 갈등만이 가득합니다. 모두가 목소리를 높이고 돌을 던지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장마가 시작됐으니 또 얼마나 수해를 입게 될지 걱정입니다. 해마다 겪는 자연재해, 위험한곳은 없나, 미리미리 주변을 살피고 빈틈없는 예방으로 피해를 줄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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