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無償)이란 말의 무상(無常)함이여

글: 이재표 그림: 옆꾸리


“내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는 얼굴도 아름답고 꽃다운 나이에 옷차림도 깨끗했습니다. 한 가지 맛있는 음식이라도 당신과 나누어 먹었고, 몇 자 되는 옷감이 있으면 당신과 함께 해 입었습니다. 집을 나와 함께 산 지 50년에 정분은 가까워졌고 은혜와 사랑이 깊었으니 두터운 인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몇 년 이래로 쇠약해져 병이 날로 심해지고 굶주림과 추위도 날로 더욱 심해지고 굶주림과 추위도 날로 더해오는데, 곁방살이에 하찮은 음식조차 빌어먹지 못하여 이집 저집에서 구걸하며 다니는 부끄러움은 산과 같이 무겁습니다. 아이들이 추위에 떨고 굶주려도 돌봐줄 수가 없는데, 어느 겨를에 사랑의 싹을 틔워 부부의 정을 즐길 수가 있겠습니까?”
<삼국유사 탑상 제4 낙산의 두 성인과 정취, 그리고 조신 중에서>

패러디가 필요 없다.

두꺼운 삼국유사 중에서 처음으로 패러디할 필요가 없는 완벽한 내용을 만났다. ‘조신몽(調信夢)’으로 널리 알려진 스토리는 승려 조신이 태수 김흔의 딸을 깊이 사모해 낙산사 관음보살에게 인연을 맺어달라고 빌자 관음보살이 꿈속에서나마 조신의 소원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조신은 꿈속에서 그녀와 50년을 해로한다.

그러나 조신이 하룻밤 꿈에서 깨어나자 수염과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어 있었다고 한다. 차라리 꿈이라 다행이다. 조신은 결국 인생무상(人生無常)을 깨닫고 수도에 전념한다.

야당이 ‘신혼부부 집 한 채’ 공약을 내놓자 여당이 또 ‘무상타령’이냐고 비난하고 나섰다. 임대주택이라도 안정적으로 공급하자는 얘긴데, 느닷없이 공짜논리로 몰아세우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에 대해 ‘무상(無償)’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부터가 문제다. 어차피 정부살림이란 게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인데, 걸핏하면 공짜로 베푸는 양 무상논리를 펴는 것이다.

지난 정권이 ‘사자방(4대강, 자원외교, 방위산업)’ 비리로 낭비한 혈세가 100조원이라는 말이 나온다. 국민이 맡긴 재산을 멋대로 쓴 청지기들을 족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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