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해바라기 수예점’ 대표 조창래 씨
지역봉사와 만학의 꿈 이루며 제2 인생설계

올 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수능한파 속에서 전국의 수험생들이 시험을 치렀다. 조창래(58) 씨는 작년 이맘때 딸보다 어린 학생들과 나란히 공부해 검정고시를 치르고 현재 충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이다. 보은 읍내에서 35년간 수예점을 운영하면서 가정을 꾸려가는 일이 전부였던 조 씨가 문득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은 순전히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잘 하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언뜻 수예점과 사회복지학이 관련이 있어 보이지 않지만 실제 조 씨는 생활 속에서 이 두 영역을 결합해 의미 있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대학 진학은 자신에게도 큰 선물이 됐다. 여느 대학생들처럼 미래를 그려보게 된 것이다. 지금 조 씨는 만학도로서 공부의 즐거움을 한껏 누리는 중이다.

사진/육성준 기자

조 씨의 수예점은 여성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보은 여성이라면 나이를 불문하고 중앙시장의 ‘해바라기 수예점’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자수 실을 사러오던 여학생들은 지금 뜨개질을 함께 하는 중년의 이웃이 됐다. 조 씨가 한 땀 한 땀 실로 짠 옷과 생활소품들은 튼튼하고 아이디어가 좋아 인기가 높았다. 서른을 넘긴 딸 서혜인 씨에게도 엄마의 뜨개질 솜씨는 자랑거리였다. 딸은 “어린 시절 엄마가 떠 준 옷만 입었다. 예쁜 원피스를 입고 나서면 다들 부러워했다”고 말했다.

뜨개솜씨가 유명세를 타자 조 씨는 학교 방과후교실과 읍면의 주민자치 프로그램에 강사로 활동하게 됐다. 지역 주민들을 찾아가 손뜨개를 가르치던 중 3년 전 시작한 보은 장애인복지관 활동은 조 씨가 손뜨개의 새로운 영역을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지체·지적장애인과 수업을 시작했을 때는 기술을 알리는 방법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면서 “시간이 갈수록 집중력이 좋아지고 안정을 찾게 됐다. 뜨개질은 손을 많이 놀리고 자극을 주게 돼 지체장애인들에게 좋은 활동이다”고 설명했다.

손뜨개로 지역봉사도 열심히

매년 12월에는 복지관수강생들이 정성껏 만든 목도리와 모자 등 작품을 전시하고 패션쇼도 열고 있다. 올해 함께 고른 패션쇼 음악은 ‘내 나이가 어때서’.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모습에서 그가 느끼는 보람이 전해졌다. 복지관에 조금씩 기금후원을 해왔던 조 씨는 얼마 전 내년 몫을 아예 선불로 후원했다고.

복지관의 뜨개반 회원들이 집중력을 발휘해 도전하고 있는 일이 또 있다. 조 씨는 “요즘 아프리카의 신생아들에게 보낼 모자를 뜨고 있다. 주로 도움을 받던 분들인데 자신들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에 즐거워한다.” 손뜨개를 하는 과정에는 나눔과 돌봄의 마음이 스며들게 마련이다. 뜨개질과 사회복지가 자연스레 연결되는 부분이다.

조 씨는 6남매의 맏딸로 생활에 보탬이 되기 위해 어린나이에 전화교환원으로 일했다. 당시에는 당연한 일로 여겼지만 세월이 흐르고 보니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결혼 후에는 시댁의 식구도 챙겨야 했다. 조 씨는 7남매의 맏며느리로 시어머니를 모시고 시동생 뒷바라지를 하며 살았다.

종일 뜨개질을 하면서 직업병처럼 얻은 비염과 두통, 디스크를 앓으며 한동안 혈압약도 복용했다. 오래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시작한 것이 산악회 활동이다. 여성산악회원으로 15년, ‘땅울림’이라는 풍물단의 민요모임에서 활동한지도 10년이 넘었다. 지금은 수예점에 우울한 사람이 오면 밖으로 이끌어내 지역사회에서 함께 활동하도록 하고 있다.

TV 드라마 같은 삶 속에 말로 다 못할 고충이 많았을텐데 그의 얼굴은 밝고 넉넉해 보였다.
“복이 많고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아이들도 제대로 돌봐주지 못한 것에 비해 잘 자랐고, 시동생들은 지금 가장 큰 응원군이다. 수예점하면서 쌓은 실력을 남을 돕는 일에 쓸 수 있는 것도 감사하다”는 그의 긍정에너지는 힘든 순간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품성에서 비롯된 듯 보였다.

중졸 학력 보완, 이제는 대학재학 중

조 씨의 늦깎이 공부는 학교 방과후교실 강사로 활동하면서 최종학력증명을 제출해야 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뜨개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지만 중학교 졸업장으로는 당당하게 강사로 나서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작년에 고등학력검정고시를 치르기로 마음먹고 3년을 목표로 세웠는데 6개월 만에 합격했다. 남편과 시어머니가 적극적으로 도왔다. 언니의 희생으로 공부를 한 여동생이 대학등록금을 댔다.

그에게는 노인복지를 열심히 공부해 노령화사회로 접어든지 오래인 보은에서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새로운 꿈도 생겼다. 지역사람들은 한마음으로 축하하고 격려의 말을 전했다. 운도 좋고 복도 많아 보였다. 물론 모두 그가 스스로 지어온 복들이다. 조 씨는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제2의 인생이 시작된 것 같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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