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소설 『모히칸 족의 최후』

영화를 통해 문학 읽기⑭

윤정용 평론가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모히칸 족의 최후』(1826)는 1754년부터 1763년 사이에 식민지 미국의 패권을 두고 프랑스와 영국이 각축을 벌이던 ‘프렌치-인디언 전쟁’(French and Indian War)을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 작품은 1757년 7월 말부터 8월 중순 사이에 윌리엄 헨리 요새 주변의 자연을 배경으로 내티 범포(호크 아이)와 칭가치국, 그리고 요새 사령관의 두 딸 코라와 앨리스의 모험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실제 전투와 대학살, 그리고 윌리엄 헨리 요새의 사령관인 먼로와 프랑스군 사령관 몬트컴 등 실제 사건과 실제 인물들과 함께 내티 범포 등 허구적 주인공들을 혼합하여 작품을 구성한 일종의 ‘로맨스’(romance)로 볼 수 있다.

『모히칸 족의 최후』는 기본적으로 “쫓고-잡히고-도망치고-다시 쫓는” 긴박한 구성을 취하고 있기에 시종일관 독자의 흥미를 끈다. 따라서 총 33장의 구성된 이 소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역시 등장인물의 ‘모험’이다.

문명과 야만의 존재

▲ 라스트 모히칸 The Last of the Mohicans 감독 마이클 만 출연 다니엘 데이 루이스, 매들린 스토우, 러셀 민즈, 에릭 슈웨이
『모히칸 족의 최후』의 줄거리를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영국군 먼로대령의 딸들인 코라와 앨리스는 던컨 헤이워드 소령과 함께 아버지를 만나러 전쟁터를 가로질러 길을 떠난다. 그들은 길잡이 아메리카 원주민 마구아의 안내를 받는데, 마구아는 영국군에 앙심을 품고 있는 프랑스 군의 첩자였다. 마구아가 그들을 프랑스 진영으로 유인하는 도중, 내티 범포와 모히칸족의 추장 칭가치국, 그리고 그의 아들 웅카스가 그들을 구해낸다.

그러나 마구아 측 아메리카 원주민들 휴런족은 그들을 추적한 끝에 인질로 잡는다. 내티 범포와 모히칸족의 도움으로 탈출한 헤이워드 일행은 가까스로 윌리엄 헨리 요새에 도착하지만, 곧 영국군이 프랑스군에게 항복하여 다시 돌아가야만 한다. 휴런족은 영국군이 돌아가는 도중 프랑스군의 묵인 하에 영국군을 학살하고, 다시 일행을 납치한다. 내티 범포 일행과 마구아 일행의 격투 끝에 웅카스와 마구아가 죽고, 코라도 휴런족의 손에 죽게 된다. 내티 범포와 칭가치국은 모히칸족의 마지막 후예 웅카스를 잃고 슬퍼한다.

『모히칸 족의 최후』가 출간된 1826년은 역사적으로 미국이 본격적으로 근대 국가로 자리 잡으며, 1812년 영국과의 영미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서부로의 개척을 활발히 진행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미국인들은 ‘미국이란 무엇인가’, 또한 ‘미국인이 누구인가’라는 미국과 미국인들에 대한 정체성 문제에 필연적으로 직면하게 되었고, 쿠퍼는 미국의 정체성 문제를 내티 뱀포를 비롯한 등장인물을 통해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요컨대 이 작품은 흥미로운 모험 소설이라는 외피를 빌려 ‘인종’(race)과 성(gender), 그리고 미국(인)의 ‘정체성’(identity) 등 다양하고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먼저 인디언(아메리카 원주민)을 통해 인종 문제에 대해 살펴보자. 19세기 초 미국인들은 인디언을 자신들의 ‘문명’과 대립되는 ‘야만’의 존재로 규정하고 정형화시켰다. 그리고 『모히칸 족의 최후』가 출간된 1820년대 중반에는 ‘연방인디언 제거 정책’이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정책으로 채택되었다.

『모히칸 족의 최후』에서 마구아를 비롯한 인디언에 대한 쿠퍼의 ‘성격화’(characteriz ation)는 이 담론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칭가치국과 같은 이상적인 인디언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마구아의 예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미국 문학에서 인디언은 대체로 사악하고 야만적이며 때로는 악마적인 인물로 형상화된다. 동시에 인디언에 대한 백인의 우월성이 부각된다.

요컨대, 쿠퍼는 1820년대 당시 미국 정부의 공식 정책인 인디언 말살 정책에 대해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고 『모히칸 족의 최후』도 그 연장 선상에 있다.


앨리스와 코라의 이데올로기

『모히칸 족의 최후』에서는 코라와 앨리스 자매를 중심으로 ‘여성성’(femininity)의 문제가 다루어진다. 코라는 작품 전반에 걸쳐 불굴의 용기와 흔들리지 않는 이성을 지닌 독립적인 여성으로 형상화된다. 그녀는 당시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요구하는 연약하고 수동적인 여성상이 아니라, 상황을 극복하고 심지어는 남성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인물이다. 앨리스는 코라와 정반대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순응하고 수동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모히칸 족의 최후』에서 쿠퍼의 선택은 분명하다. 헤이워드에게 사랑받고 선택받는 인물은 앨리스이며, 코라는 웅카스와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수동적인 앨리스가 아닌 능동적이고 독립적인 코라의 죽음을 통해, 쿠퍼는 어떤 여성이 미국의 이상적인 여성인지를 독자의 무의식에 각인시키며, 궁극적으로는 당대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고 할 수 있다.
쿠퍼의 원작은 많은 영화화가 이루어졌다.

그 중 마이클 만의 <모히칸 족의 최후>(1992)는 상당히 흥미롭다.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대부분의 영화들이 대체로 원작의 줄거리와 등장인물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면, 마이클 만의 영화에서는 등장인물과 그들의 운명에서 완전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즉 원작을 상당 부분 각색한다 하더라도 보통 등장인물의 운명, 직접적으로는 생사가 바뀌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마이클 만의 영화에서는 원작과 정반대로 코라와 내티 범포가 살아남고 앨리스와 헤이워드가 죽는다. 이처럼 영화에서는 내티 범포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원작보다 명징하게 드러난다.

특히 영화에서는 원작에서보다 인디언의 폭력적인 양상이 더욱 강조된다. 이것은 원작에서 쿠퍼가 재현했던 인디언과 야만인을 동일시했던 담론이 영화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원작과 영화의 유사성은 170년이라는 시차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인종적 담론이 여전히 미국 사회에 유효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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