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근선 충청투데이 기자

▲ 손근선 기자
2003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판소리는 조선시대 양반 신분 사회를 비판하던 서민들의 대표 전통음악이다. 현재, 판소리의 유파인 동·서편제는 전라도 지역 중심으로 발전돼 가고 있다. 한마디로 ‘판소리= 전라도’인 셈이다.

그런데 최근 충북 청주에서 의미 있는 공연이 열려 지역민들에게 큰 관심을 끌었다. 충북지역 국악계 인사들은 지난달 2일 충북문화관 북카페(옛 충북지사 관사)에서 첫 판소리 유파인 ‘중고제(中高制) 원류를 찾아서’를 주제로 풍류방을 연 것이다. 중고제 풍류방은 10월 매주 목요일 같은 장소에서 모두 4차례 진행됐다.

충북지역 국악계가 이처럼 중고제 풍류방을 연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전라도 지역의 동·서편제처럼 충북 등 충청도 역시 ‘중고제’라는 판소리 유파가 성행했다. 그러나 중고제는 어느 순간부터 사라졌다. 중요한 것은 ‘충청도가 판소리의 발생지였다’는 것이다. 국악의 불모지로 알려진 충청도가 전라도 지역보다 먼저 불렸다는 얘기다.

판소리 학자인 노재명(46·경기 거주) 국악음반박물관장은 2000년대 초반 전라도 광주지역의 허름한 골동품 상점에서 의미 있는 판소리와 관련된 악기를 발견했다. 이 판소리 북의 중앙에는 ‘충청북도 청주군 청주읍 박행충 소리북’이라고 적혀 있다.

제작 년도는 1931~1946년 사이로 추정된다. 소리북에 지명과 사람 이름이 기록돼 있는 예가 극히 드물다. 당시 양반 신분 사회에서 노비보다 못한 광대인 소리꾼이 자신의 이름을 썼다는 게 이색적이다. 때문에 전라도에서 발견된 ‘청주의 소리북’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노 관장은 당시 청주군 청주읍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소리북(박행충의 것으로 추정)에 큰 의미를 뒀다. 소리북에 ‘박행충’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는 것으로 볼 때 청주지역에도 소리꾼이 많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청주지역에서 활동한 ‘박씨 광대(소리꾼)’라면 국악 가야금 산조의 명인 박팔괘(1882~1940년)의 친인척일 가능성이 크다.

충북 청원 출신인 박팔괘는 독자적으로 ‘충청제(忠淸制)’라는 산조가락을 만들었고 가야금 병창으로도 유명한 국악계의 큰 어른이다. 특히 충남지역은 조선 말기 판소리 5명창 가운데 2명을 탄생시켰다. 이동백과 김창룡 명창이다.

조선창극사는 판소리가 김성옥, 김정근, 김창룡, 김세준, 김차돈 가문에서 주로 이뤄지면서 ‘중고제 판소리의 발생지’라고 기록하고 있다. 김차돈(91) 명창은 현재 일본 오사카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생존 여부는 알 수 없다.

이처럼 ‘판소리의 고장은 충청도다’라는 주장은 충청도의 정서와 지리적 여건에서도 찾을 수 있다. 특히 충남 서천과 보령의 경우는 주로 바닷가 주변에서 일상이 시작된다. 당시 바닷가는 늘 사고가 이어졌던 곳이다. 따라서 판소리 역사는 바닷가에서 이루어진 무속인들의 소리와 스님들의 범패에서 유례 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전통음악인 중고제가 부활되는 것까지는 요원한 일이라 하더라도 ‘충청지역에서 있었다’라는 정도는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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