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의 동생 전순옥의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

김수정
성공회대 NGO 대학원 실천여성학과 재학

나는 49세, 직업은 전업학생이다. 성공회대에서 여성학 석사과정 중이며 논문을 쓰느라 일상을 접고 지내고 있다. 그러니 읽는 책도 주제와 관련된 논문이나 단행본들이 대부분 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충북대학교 도서관은 나의 즐거운 놀이터다.

충북대 학생이 아니므로 일반인으로 도서관 이용증을 발급받아 서가를 누빈다. 필요한 책을 찾아 헤매는 나의 실루엣은 먹고 살기에 급급했던 지난 시절에 비해 미식가가 맛난 음식을 찾아 전국을 기행하는 듯 호사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연구자 전순옥을 만난 것은 논문에 참고할 만한 도서를 찾다가 손에 잡게 되었다. 그녀는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전태일의 동생이다. 평화시장 한 가운데서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절규와 함께 화염 속으로 사라져버린 노동운동가 전태일, 그로 인해 어머니 이소선여사는 노동운동의 대모가 되었고, 그의 동생 전순옥은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라는 박사학위논문으로 우리 앞에 고난의 70년대를 고스란히 펼쳐 놓는다.

▲ 제목: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 지은이: 전순옥 출판사: 한겨레신문사
그녀는 89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2001년 워릭대학에서 ‘70년대 한국 여성 노동자’를 주제로 쓴 논문이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으며 노동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노동자 전태일의 누이동생이자 한 사람의 여성 노동자이기도 했던 전순옥은 70~80년대 여성 노동자들의 고통과 눈물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논문이라는 기존의 인식을 깨는 현장의 이야기이며, 그녀의 표현처럼 “벌들이 꽃에서 재료를 모으는 것처럼 경험적 자료를 충분히 모은 다음 자신의 힘으로 변화시켜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방법”으로 박사학위 연구물을 날 것 그대로의 육성으로 우리 앞에 내 놓았다.

이 책의 모태가 되는 논문 원고는 박사학위 심사위원들과 지도교수의 추천을 받아 ‘They Are Not Machines'(Ashgate)라는 제목으로 2003년 9월에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출판되었다. 그리고 2004년 한겨레신문사에서 다시 한글판으로 출판하게 된다.

이 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1997년 1월에 시작하여 현장조사에 6개월이 넘도록 할애했으며, 180시간 분량의 인터뷰, 당시의 활동가들을 찾아내어 인터뷰를 하는 것의 지난함, 남한과 영국을 오가며 자료를 정리하는 어려움 덕에 2000년 중순 탈고를 목표로 했던 것이 6개월을 지연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진술통해 작성한 생생한 기록

한국의 노동운동사는 남성들의 독무대다. 주체는 언제나 남성이었으며 여성노동운동가들의 역사는 드러나지 않은 채 숨겨져 있다. 책 속에서 전순옥이 만난 최장 집은 남한의 정치, 경제, 노동조합의 역사와 관련하여 결정적인 저술들을 발표했다고 기술하였다.

그러나 여성들이 남한의 노동운동에 공헌한 것이 거의 없다는 그의 과소평가는 전순옥으로 하여금 강하게 도전하겠다는 결기를 다지게 만들기도 했다. 가혹한 70년대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온 몸으로 투쟁해야 했던 여성노동가들은 기억되지 않았으며, 주체라고 취급되지도 않았다. 이 책은 과소평가에 대한 반작용으로 여성노동의 주역들을 찾아내고, 진술을 통하여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재현하며 기록하고 있다.

역사에 대한 기록이 어느 위치에서, 누구의 관점이었는가는 그래서 중요하다. YH노조의 투쟁이 도화선이 되어 부마항쟁이 일어나고 급기야는 박정희의 암살로까지 이어졌다는 분석은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나에게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한국의 근대사에 있어 가장 영향력이 있다고 할 수 있는 박정희에 대하여 그의 암살이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도 선명하게 분석되지 않고 있음이 안타깝다고 토로한 그녀의 글로 인해 나는 김재규에 대해 진지한 관심이 생기기도 했다.

한명숙은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민주화 과정에서 여성이 맡았던 역할에 대한 명쾌한 역사로서 정당한 자리를 차지한 흠잡을 데 없는 연구 성과물이며, 인간 정신의 극기와 인내, 그리고 유명을 달리한 여성 노동자들에게 가장 훌륭한 경의의 표시”라고 이 책을 추천한다.

나는 첨단정보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이 책을 읽고 개인의 삶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하는지 실감나게 깨닫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보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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