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원작 각색한 영화 <슬리피할로우> 흥행과 비평에서 성공

영화를 통해 문학 읽기⑬

윤정용 평론가

미국은 18세기 말 영국으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하고, 경제적으로도 자리를 잡아가면서, 차츰 ‘미국 문화’ 또는 ‘미국 문학’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미국 문학사에서 19세기는 소위 미국 문학으로 일컫는 국민문학의 형성기이다. 19세기 초반 미국 문학을 이야기할 때 두 명의 작가를 빼놓을 수 없는 데, 그들이 바로 워싱턴 어빙과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다.

어빙은 ‘미국 최초의 전업작가’, ‘미국 단편 문학의 아버지’ 또는 ‘미국 문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며 미국 작가 중 최초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다. 단편 소설 「립 반 윙클」과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이 실린 그의 소설집 『스케치 북』(1820)은 영국과 미국에서 큰 인기를 누렸으며, 당시 신생국이었던 미국으로 하여금 정치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지적·문화적인 면에서도 유럽의 열강으로부터 해방된 진정한 독립 국가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다.

쿠퍼는 뉴저지에서 태어나 뉴욕 주 북부에 그의 아버지가 설립한 쿠퍼스 타운이라는 ‘개척지’에서 성장했다. 개척지에서의 삶은 쿠퍼의 초기 소설인 『개척자』(1823)의 무대가 된다. 이 작품은 개척지에서의 아메리카 원주민, 미국인, 영국인 간의 토지 소유권에 대한 갈등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원주민과 같이 살면서 백인과 원주민 간의 매개적 역할을 하는 주인공 내티 범포라는 주인공을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 슬리피 할로우 Sleepy Hollow , 1999 감독 팀 버튼 출연 조니 뎁, 크리스티나 리치, 미란다 리차드슨, 마이클 갬본
내티 범포는 인종과 문화 간의 경계선에 위치하여 타인종과 타문화에 대한 백인의 우호적 관계를 문학적으로 체화한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쿠퍼가 창조한 내티 범포라는 인물은 미국문학사에서 허먼 멜빌의 『모비딕』(1851)의 이쉬마엘,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핀의 모험』(1884)의 헉의 원형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정체성 탐구

어빙과 쿠퍼가 19세기 미국 문학의 서두를 장식하는 까닭은 이들이 당대 미국의 열악한 출판 시장과 소설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최초로 전업작가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했을 뿐만 아니라, 이들과 더불어 미국이라는 나라의 성격과 정체성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어빙과 쿠퍼의 문학은 차별성을 보인다. 어빙의 대표작인 『스케치 북』을 살펴보면, 이 작품은 총 32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부분 유럽적인 주제, 주로 영국적 주제를 형상화했다.

그 후의 많은 중요한 미국 작가들이 그랬듯이, 어빙은 구세계, 즉 유럽의 풍부하고 오래된 문화가 그의 작품의 소재를 제공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단편 중 스스로 ‘독창적으로’ 창조한 것은 거의 없다.

그는 미국 문학의 배경이 일천하기 때문에 유럽의 재료를 모방, 재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다 중요한 사실은 어빙이 미국 또는 미국 문학이라고 말할 때, 그 문학적 범주가 미국 전체가 아니라 뉴욕 주의 경계에 머문다는 점이다.

반면 쿠퍼는 자신의 문학적 범주를 뉴욕 주 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으로 확장했다. 비록 그의 작품들이 문학적으로 어빙의 작품만큼 위대하다고 평가받지는 못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미국 사회의 상당한 사려 깊은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 이처럼 어빙과 쿠퍼는 거의 비슷한 시대에 활동하면서 미국 문학의 토대를 마련했지만, 문학에 대한 태도, 더 나아가서는 미국 문학에 대한 지향점이 서로 달랐다.

이 글에서는 일단 어빙의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과 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 <슬리피 할로우>(1999)에 대해서 살펴보려한다. 먼저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을 살펴보자.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슬리피 할로우이다.

슬리피 할로우는 네덜란드계 후손들이 사는 조용하고 유서 깊은 마을인데, 이곳에는 ‘머리 없는 기사’가 밤마다 말을 타고 달려간다는 기이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사건은 주인공 이카보드 크레인이라는 인물에서 시작된다. 그는 학식이 있는 신사로서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날카로운 지성에도 불구하고 상상력이 풍부하여 신비한 이야기를 곧잘 믿는 단순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는 마을 처녀 카트리나를 좋아한다.


하지만 카트리나에게는 이미 브롬이라는 연인이 있다. 브롬은 카트리나가 이카보드에게 관심을 보이자 그를 괴롭히고 위협한다. 그러나 이카보드는 브롬과 힘에 의한 직접적인 대결을 피한다. 어느날 이카보드는 마을 축제에 초대받아 카트리나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경쟁자인 브롬 앞에서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는 처량한 모습으로 말을 타고 집에 가는 도중 머리 없는 기사의 유령을 만난다. 공포감에 사로잡힌 이카보드는 말을 몰아 도망가지만 머리 없는 기사는 계속 쫓아오고, 다리를 뛰어 넘는 순간 머리 없는 기사의 유령이 말 등에 얹혀 있던 자기 머리를 이카보드에게 던진다. 이카보드는 머리를 맞아 말에서 떨어져 나뒹굴고 그의 말과 유령의 말은 계속 달려 사라진다.

최근에도 TV 드라마로 제작

다음날 아침 이카보드의 말은 돌아왔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머리 없는 기사에게 납치되었다고 생각한다. 작중 화자는 다음과 같이 상황을 요약한다. 즉, 이카보드가 머리에 맞은 것은 호박이었고, 브롬이 머리 없는 기사를 흉내를 내어 이카보드를 쫓아내고 카트리나와 결혼했다. 또한 이카보드는 카트리나에게 굴욕감을 느껴 결국 그 지방을 떠났다.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영화 또는 연극으로 제작되었고, 최근에도 TV 드라마로 제작, 방영되었다. 이 작품은 그 정도로 인기가 있는 이야기 소재라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팀 버튼이 감독하고 조니 뎁과 크리스티나 리치가 주연한 1999년 작 <슬리피 할로우>이다.

원작 소설의 기이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는 영화에서는 머리 없는 기사의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무섭고 환상적인 이야기로 바뀐다. 영화적 분위기는 팀 버튼의 전작 <가위손>(1990), <크리스마스 악몽>(1993)에서 그랬던 것처럼, 시종일관 기괴하면서도 음산하다. 하지만 동화적이면서도 환상적이다. 영화는 비평과 흥행 면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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