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형민 청주노동인권센터

▲ 주형민 청주노동인권센터
어떤 건강 전문가가 말했다. 불합리한 산재 제도의 온갖 모순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바로 개인의 육체라고. 요즘 이 말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중이다. 매그나칩 반도체에서 일하다가 2006년에 쓰러진 후 아직까지 전신불수 상태로 투병 중인 김상우 씨 이야기다.

김상우 씨는 매우 성실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러하듯,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회사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쭉쭉 뽑아 쓰다가 막상 노동자가 쓰러지면 외면한다. 쓰러진 노동자는 산재를 신청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입은 질병이나 사고가 ‘업무상 재해’임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입증 자료는 대부분 회사가 쥐고 있다. 입증 자료를 제대로 갖추기가 매우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근로복지공단은 구체적인 입증이 없다며 산재 불승인 처분을 내린다.

직장에서 일하다가 다친 노동자가 산재를 신청할 필요 없이 무상으로 치료를 받는 영국의 의료시스템 NHS(National Health Service)과 비교하면 ‘극과 극’이다.

김상우 씨는 1997년에 매그나칩 반도체에 입사하여 가스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2006년에 쓰러졌다. 병명은 바이러스성 뇌염. 과로 때문에 면역 체계가 약해져 걸린 병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재해라는 구체적인 입증이 없다며 산재 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심사·재심사 청구도 모두 기각했다. 법원도 마찬가지였다. 행정소송, 민사소송 모두 기각당했고,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되었다.

도대체 뭘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했을까? 김상우 씨가 입증할 수 없었던 것. 하지만 회사는 움켜쥐고 있는 것. 바로 출퇴근 기록이다. 매그나칩 반도체는 출퇴근 기록을 증거 자료로 제출했다. 기록에 의하면 김상우 씨는 정시 출근?정시 퇴근했다. 야근한 일이 없다. 이 출퇴근 기록이 산재를 인정받지 못한 결정적인 증거 자료로 작용했다.

법적인 판단이 끝나버린 지금, 김상우 씨의 어머님은 매그나칩 반도체 앞에 서 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다. 애끊는 모정을 차마 외면치 못한 노동자들이 함께 한다. 피켓으로, 현수막으로, 유인물로, 목소리로 함께 외친다. 보라고. 들어 보라고. 매그나칩 반도체는 지금이라도 진짜 출퇴근기록을 제출하고, 진상을 규명하라고.

불합리한 사회 구조와 산재 제도의 모순은 노동자의 몸에 집약되어 분출한다. 장시간 노동과 야간 노동을 부추기는 사회. 아픈 노동자가 산재를 신청하고 입증까지 해야 하는 산재 제도. 그리하여 김상우 씨는 의식 없이 병원에 누워 있다. 이건 분명히 잘못되었다. 사회 구조와 제도를 탓하는 와중에도 노동자들은 계속 쓰러지고 그 가정은 무너진다.

부디 김상우 씨 문제를 개인 건강 또는 불운한 탓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피켓이나 유인물 등을 통해 이 사건을 알게 된 매그나칩 반도체나 하이닉스 반도체 직원들, 거래 업체 직원들, 택배나 택시 기사들, 우연히 지나가다 알게 된 시민들…… 나와 내 가족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인식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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