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럼 마을 사람들은 왜 마녀를 만들었나

영화를 통해 문학 읽기12
윤정용 평론가

아서 밀러의 ‘시련’
아서 밀러의 <시련>(The Crucible, 1954)은 169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세일럼 지방에서 실제로 있었던 ‘마녀 재판’(Witch Trial)을 극화한 작품으로서, 1690년대의 마녀 재판과 1950년대 미국에서 반미 활동을 벌인 자들을 색출하려는 ‘매카시즘’(McCarthyism) 광풍 사이의 ‘유비’(analogy)를 통해 인간 본성의 본질적 문제들을 천착한다.

밀러는 이 작품을 통해 ‘반복되는’ 역사적 사건이 벌어지는 사회 현상의 원인과 과정을 규명하고 그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촉구한다. 매카시즘의 광풍에 대해 밀러가 받은 충격은 그것이 집단적인 공포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주관적 리얼리티’를 조작한다는 점이었다.

그는 상대적인 것과 절대적인 것이 혼동되고, 주관적 리얼리티가 객관적 리얼리티로 전도되는 현상에 당혹해했다.

▲ 크루서블 The Crucible , 1996 감독 니콜라스 하이트너 출연 다니엘 데이 루이스, 위노나 라이더, 폴 스코필드, 조앤 알렌
밀러는 <시련>에서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이 겪는 행위와 자아 사이의 갈등을 주제화했는데, 그는 이런 갈등은 세일럼 사회나 매카시즘 지배하의 미국 사회뿐만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상식을 폐기하도록 강요하는 모든 비이성적 사회 조건이 배경이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시련>은 왜곡된 종교적 광기에서 출발하여 세일럼 주민 개인의 이해관계에 얽힌 사적 복수로까지 전화한 마녀재판에서 희생된 주인공 존 프록터의 투쟁과 고통을 통해 그의 비극성을 강조한다. 밀러는 미국인들의 역사적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세일럼의 마녀재판을 재역사화함으로써 집단적 광기와 이데올로기 공세에 노출된 현대 지성인의 무력감을 극화했다.

이웃에 대한 고찰

<시련>은 또한 ‘이웃’에 대해 고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밀러는 이 작품을 통해 이웃은 개인의 의도나 상태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적으로 돌변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소녀들이 장난으로 벌인 놀이, 즉 일종의 해프닝은 애비게일의 프록터에 대한 집착과 복수심, 퍼트넘 부인의 레베카에 대한 시기심, 퍼트넘의 토지와 권력에 대한 열망, 패리스의 세속적 욕망, 헤일의 학문에 대한 과신, 댄포스의 권위 의식과 같은 숨은 동기들이 뒤엉켜 마녀재판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고 여기에 마을 주민들의 증오와 원한이 더해진다. 마녀라는 희생양을 발견한 세일럼 주민들은 오랫동안 억압되어 온 욕구 불만을 악마에 대항해 싸운다는 명분하에 잔인하고 비열하게 퍼붓는다. 즉, 마녀 재판의 진행되는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이 ‘이웃’에게 평소에 품었던 원한과 욕심, 시기와 같은 이기적인 욕망들이 예기치 않게 분출한다.

이 지점에서 이웃은 지젝의 말처럼 “얼굴 없는 괴물”이 될 수 있다. 이 때 마녀로 낙인찍히는 대상은 세일럼 마을에서 가장 힘이 없고 죄를 뒤집어 씌워도 저항하지 않을 것이고, 마을 사람들의 반발도 가장 작을 것으로 예상되는 존재들, 일명 ‘호모 사케르’다. 요컨대 사회적 사건 이면에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는 개인들의 이기심과 권력의 역학 관계가 <시련>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1950년대 미국사회를 진술

전술한 바와 같이 <시련>은 1690년대의 마녀 재판의 광기가 침윤한 세일럼 마을과 매카시즘 광풍에 사로잡힌 1950년대 미국 사회를 유비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예술적 완성도를 떠나 사회적·정치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따라서 이 작품에 대한 비평은 대체로 형식적으로는 정치적인 알레고리로 해석되었고, 내용상으로는 주인공 프록터의 숭고한 ‘개인주의적’ 희생에 수렴되었다. 그러나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 <크루서블>(The Crucible, 1996)이 제작, 개봉되었을 때는 다른 측면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원래 <시련>을 최초로 영화화한 것은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가 각색한 <세일럼의 마녀들>(Les Sorcieres de Salem, 1957)이었다. 밀러는 직접 영화 <크루서블>의 시나리오를 썼는데, 그는 이 과정에서 단순히 원작 <시련>을 변용, 각색 작업을 했다기보다는 새로운 관점에서 작품을 재구성했다.

예컨대 원작에서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이웃 간에 벌어지는 갈등과 불화가 영화에서는 전경화되었다. 아무래도 그 이유는 영화가 개봉되었던 시대적 상황에서 찾아볼 수 있다. 90년대 중반은 정치적으로 비주류적 개인이나 집단 또는 비관습적 행태에 대한 사회적인 불관용이 편재한 사회 안에서 마녀사냥의 모티프는 일상화된 시기였다. 즉 당시 미국에서는 종교적 근본주의, 정치적 편협성, 외국인공포증, 동성애공포증, 비주류 문화의 탄압은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현상이었다.

따라서 <시련>을 기존의 정치적 알레고리나 프록터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개인과 사회의 비극적 갈등 및 진실 추구의 문제로 작품을 분석했을 때는 분명 시대적 한계를 노정하기 때문에, 논의를 보다 유의미하게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주요 등장인물 프록터, 애비게일, 엘리자베스를 비롯한 세일럼 마을 사람들의 개인적 차원의 죄, 즉 개인적인 ‘원한’, ‘증오’, ‘복수’가 사회적 행위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파악하고, 이웃 간의 불화 혹은 공동체의 붕괴가 어떤 비극적 결과를 가져오는지 천착하는 것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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