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계 박영대 화백, 30년간 국제교류 통해 지역 화단의 지평도 넓혀

국내 화단을 지키고 이끌어 온 원로 화백의 작업실은 소박했다. 송계 박영대(72) 화백의 작업실이며 살림집이기도 한 청주 수곡동의 골목 모퉁이 오래 된 주택의 마당에는 들국화가 자유롭게 무리지어 피어 있었다.

“마당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놀러온 길고양이들이 죽 앉아 구경한다. 그림을 펼쳐놓아도 밟지 않고 비켜간다”며 맑게 웃는 모습이 동화 속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박 화백은 살아오면서 만난 인연들에 대해 “조금 베풀고 아주 큰 대접을 받았다”며 자신이 복이 많다고 말했다.

사진/육성준 기자

지난 13일부터 18일까지 일본에서 박영대 화백과 故 스즈키 마사히로의 '2014 ART WAVE 한·일 교류전'이 열렸다. 올 봄 대청호미술관에서 열린 한·일작가전 '2014 춘풍교감'에 이은 교류전시회다. 두 화가가 30년간 꾸준히 나라를 넘나들며 우정을 다져오던 중 스즈키 마사히로가 ‘춘풍교감’전 개최 직전 타계해 전시는 급작스럽게 추모전이 됐다.

슬픔 속에서 치러진 전시는 당시 한·일 화단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일본 화단에서 78명의 화가가 참여한 대규모 추모전시에 다시 박 화백을 초청했다. 그가 “슬프지만 친구 스즈키가 기뻐할 것 같다. 한·일 교류전을 이어가길 희망한다”고 하자 모두 숙연해했다고 전했다.

생명력이 꿈틀대는 청보리 그림이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서 ‘보리작가’로 불리고 있는 박 화백은 화가의 길로 들어선 초기부터 일본의 작가들과 민간 교류를 시작해 지금까지 그 길을 닦고 넓혀 왔다. 지역 화단의 지평을 넓혀 온 ‘교류작가’라 불려도 좋을 만하다.

박 화백은 현재 ICA국제현대미술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 2010년 한국, 일본, 중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6개국 작가 75명이 참여하는 국제전시가 서울과 청주에서 열린 것을 포함해 크고 작은 국내 작가의 국제교류에 관여해 왔다. 1980년대부터 이어온 故 스즈키 마사히로와의 '화폭우정 30년'은 박 화백의 작가교류 활동에 기반이 됐다.

그는 재일교포 화가 故 송영옥 씨와의 만남도 소중하게 여겼다. 어려운 중에도 기품을 잃지 않고 그림에 매진하는 그를 존경하며 10살 차이에도 20년을 교감했다. “예술인의 민간 교류가 어떤 환경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뜻도 그에게서 받았다”고 전했다. 박 화백에게는 나이도 언어도 사람을 만나는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친구가 된 사람들이 하나 둘 세상을 뜬 이후에도 가슴에 품고 “사는 동안 만난 사람들을 모두 행운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관습을 넘기 위한 새는 강한 날개 필요”

박 화백은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즐겨 그리며 미대진학을 꿈꿨다. 하지만 “한학자로 서당을 하시던 아버지가 외아들이 그림을 그리겠다는 것을 마땅치 않게 여겼다”며 화가의 길로 들어서기 쉽지 않았던 때를 떠올렸다. 청주대성여자상업고등학교 교사 재직 중에도 틈틈이 그림을 그리다가 30세가 넘은 나이에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회화를 공부했다.

학교를 중도에 그만 둔 뒤에는 전업 작가의 길을 걸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자신이 뜻을 둔 바가 있으면 아버지의 벽을 넘으라”고 주문했다. 실제 작업실에 ‘편견과 관습을 넘기 위한 새는 강한 날개가 필요하다’는 미 여류소설가 케이트 쇼팽(Kate Chopin)의 글을 붙여 놓았다. “관습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은 예술인의 기본”이라며 자신 역시 지속적으로 지향해야 할 부분이라는 것이다. 이 문장은 뉴욕공공도서관으로 향하는 Library Walk에도 새겨져 있다.

청주의 강내면이 고향인 박 화백이 바람결에 맞서는 거친 보리의 생명력을 화폭에 담는 것은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늘 봐오던 친숙한 대상이어서 자연스럽게 시작한 보리그림 시리즈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면서 박 화백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한 때 ‘보리작가’라는 수식어에서 벗어나려 산야 연작물에 매진하기도 했다. “나무와 꽃 그림도 많이 그렸다. 보리만 그린다는 틀이 생긴 것 같아 벗어나려고도 했다”는 그는 자신의 정체성인 ‘보리’를 남기고 ‘형식’을 버리는 선택을 했다. 최근의 작품경향은 ‘보리추상’이다. 채색화에서 수묵담채로, 추상과 구상을 넘나드는 그림들에서 ‘정신’으로 남은 보리의 원형이 보이는 듯하다.

박 화백은 지금도 잠자는 시간 빼고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소장하고 있는 작품의 양도 만만치 않다. 보관을 위한 수장고나 미술관 소장에 대해 “청주와 전국 곳곳의 대형 건물이나 기관이 작품을 잘 보관해 주고 있다”며 소탈한 웃음을 지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청주분관수장고나 청주시립미술관이 세워지는 것을 환영하면서도 자신의 작품을 보존하는 일에 의견을 내지 않았다. “지금도 왕성하게 작업 중”이라며 유쾌하게 현직임을 강조하는 그에게서 영원히 자유를 갈구하는 강한 날개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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