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구 예성문화연구회 회장

아직은 여러 일을 찾아서 한다. 그러다 보니 행사에 참여할 때가 종종 있다. 관심분야 때문에 주로 학술회의가 주가 된다. 그럴 때마다 ‘내빈 소개’라는 의전 때문에 매번 편치 않다. 막상 행사에 참여한 분은 그리 많지 않음에도 대부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많은 분들이 소개된다.

소개되면 머리는 좌중을 향해 숙이면서도 입가는 양양하다. 거명되면 그나마 체면치레했다고 생각하는 분이 대부분일 것이다. 소개를 생략하고 지나칠 양이면 서운한 표정이 역력하다. 필자만의 착각인가?

그렇게 내빈이라 소개된 분들이 행사에 끝까지 참석하는 경우는 흔히 보지 못했다. 굉장히 바쁘신 몸들이고 하시는 일들이 대단히 훌륭하신 분들이기에 참석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참석하기 전에 주최 측에 한마디 할 수 있는 여부를 미리 확인하기도 한다. 평소에 관심을 거의 갖지도 않던 분들일 것 같은데 마이크 앞에서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며 침을 튀긴다. 마치 이 행사가 없었으면 큰 일라도 벌어졌을 것처럼 말이다. 진정성이 있을까, 정작 행사의 주인공들은 들러리가 되고 마는 게 아닌가 생각하면 씁쓸하다.

‘명성을 좋아 하는 자는 행실은 비루하되 스스로 높은 체하고 실질적인 데 힘쓰는 자는 행실은 고결한데 스스로는 낮은 체한다.’ ― 조선 후기 학자인 유건휴가 친족에게 한 말이다. 이에 부합되는 말이 ‘복숭아꽃, 오얏꽃은 말이 없으나 그 아래 자연히 길이 생긴다’라는 말이 되지 않을까 한다. 겸손하지만 능력이 있거나 사람됨이 훌륭한 사람은 남들이 먼저 알아본다.

그러나 아직 우리 주변에는 자기 분수를 넘어 망동하는 이들이 많다. 자신의 조그만 이득을 위해 이를 부추기는 사람들도 있다. 염치를 아예 모르는 것인지,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몸이 말을 안 듣는 것인지….

은연 중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을 때 사회에서 도태된 것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의외로 주변에 많고 이들은 남이 자기를 우러르기를 잔뜩 기대한다. 고개를 많이 숙인 자들이 소위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의 행실을 보자. 언제 당신을 섬기고 당신에게 도움이 되겠노라 약속을 한 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높은 체’ 하는 짓거리는 다 보인다.

그 ‘맛’에 젖어 있는 분들에게 맞춰서 오늘도 대부분의 행사에는 어김없이 내빈 소개를 목청 높여 한다. 필자가 책임을 맡고 있는 단체에서 주관하는 행사에는 내빈 소개를 생략한 지가 오래됐다. 내빈 소개를 할 이유가 없다. 참석한 분들 모두가 그 행사에 관심을 갖고 일부러 귀중한 시간을 쪼개어 오신 분들이 아니던가.

소개를 받으려 하지도 않고 한마디 하려고도 않는다. 고개를 뒤로 젖히지도 않는다. 일찍 자리를 뜨는 분들도 적다. 주관하는 분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아닌가? 그 분들이 내빈이다.

찬바람 불면 국제학술회의를 겸한 중원문화학술회의를 개최한다. 많은 내빈들이 참여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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