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연극인 어혜주·이미영·김경미·오유수의 감성공연 돋보이는 연극 <잘자요, 엄마>

불이 꺼지고 배우들이 인사를 한 후에도 관객들은 자리에서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공연을 찾은 관객은 청소년에서 중년 남성까지 다양했다. 교복을 입고 친구 손잡고 온 여학생들도 눈가를 훔치며 천천히 일어났다.

연극 <잘자요, 엄마>는 1983년 퓰리처상 희곡무문을 수상한 마샤 노먼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다. 1983년 미국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상연되어 주목 받은 바 있다. 이 연극에 출연한 이미영·김경미·오유수 씨와 연출을 맡은 어혜주 씨를 만났다.

▲ 왼쪽부터 어혜주 연출가와 배우 오유수·김경미./ 육성준 기자 eyeman@cbinews.co.kr


청주 출신 연극배우 이미영 씨는 지역극단 ‘푸른계단’을 창단하면서 첫 작품으로 무대에 올렸다. 작품이 갖고 있는 시대적 메시지의 울림이 큰 것과 함께 충북 출신 기획자와 배우들의 역량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연극이 끝나고 객석을 돌아 나오는 관객들의 발걸음에서 느낄 수 있었다.

연극의 연출을 맡은 어혜주 씨와 엄마 역의 이미영·김경미 배우는 모두 청주 연극계에서 활동했다. 방송작가로 활동하다 2007년 <잘자요, 엄마>의 기획사진전을 열었던 전력이 있는 어혜주 연출가는 “전체를 단막으로 구성하여 감정의 흐름을 살리고 대사와 표현을 관객의 공감에 중점을 두었다”며 극에 섬세한 감성을 담아내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전했다.

어 씨는 연극에 매력을 느껴 늦은 유학까지 다녀왔다. 이 작품이 연출가 데뷔 무대이기도 하다. 엄마 역을 맡은 김경미 씨는 청주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이다. 김 씨는 동료들의 권유로 잠시 쉬고 있던 연극무대에 다시 올랐다. “사회·세대·가족·남녀 모두에게 소통이라는 질문을 던지는 연극이다. 딸을 둔 엄마로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고 전했다.

딸 역으로 합류한 오유수 씨는 공연을 위해 요즘 매일 서울과 청주를 오가고 있다. 오 씨를 포함해 30대·40대·50대의 여성 배우들이 엄마와 딸의 이야기이자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한 <잘자요, 엄마>에 푹 빠져 있었다. 딸과 엄마 두 사람의 대화만으로 이루어진 2인극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열연은 관객의 마음을 붙잡기 충분했다.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에 연극 한 편이 우리에게 마음을 열고 말을 걸어왔다.

위안 주는 연극위해 극단창단

연극을 기획한 ‘푸른극단’은 연극배우 이미영 씨가 작년에 창단한 지역 신생 극단이다. <잘자요, 엄마>는 이 대표가 몇 차례 배우로서 만난 작품이기도 하다.

“몇 년 전 오랜 시간 우울증을 앓고 있는 환자가 공연을 본 적이 있었다. 심리치료를 맡고 있던 분이 연극관람 후에 증세가 크게 호전 됐다고 전해왔다. 배우로서 처음으로 책임감을 느낀 때였다”는 이 대표는 그 후 극단 창단을 꿈꿨다. 지원금 없이 극단을 운영하는 것이 무모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더 늦기 전에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특히 공연을 본 관객의 반응을 보며 ‘누구나 아프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 공연에서 엄마 역을 공동으로 연기하고 있다. “얼마 전 객석의 엄마는 하염없이 울고 아들은 엄마의 눈물을 말없이 닦아주는 모습을 무대 위에서 바라보며 공연을 했다”며 배우로서 느끼는 작품의 무게와 매력도 크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한동안 국립극단 전속 단원으로 서울생활을 하며 드라마 장옥정의 홍상궁으로 출연해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청주에서 연극인으로 30년을 살았고, “지역에 살면서 형성되어온 청주의 색깔”이 자신의 정체성이라는 생각을 늘 해왔다고 했다. 속에만 갖고 있을 것이 아니라 작은 실천이라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나이 오십을 넘기면서다.

청주에서 지역극단을 꾸리면서 “청주의 관객에 의해서 연장 공연하는 연극을 하고 싶다”며 그만큼 책임을 다해 지역 연극을 살려내고 싶다는 간절함을 토로했다. 공연을 보러 타지에서 찾아오는 연극을 하겠다는 이 대표의 간결하면서도 조리 있는 말 속에서 뜨거운 열정과 의지가 엿보였다.

이미영 대표는 엘리베이터의 속도가 놓치는 부분을 한 계단씩 차곡차곡 밟아 가는 의미를 ‘푸른계단’이라는 이름에 담았다고 했다. 어혜주 연출자는 청주의 관객을 생각하며 1시간 20분 단막극으로 각색하며 보편적이고 객관적으로 표현해 작품이해도를 높이려 했다고 전했다. 배우 김경미 씨는 이 연극이 자신에게 찾아와 성년이 된 딸과의 소통에 눈뜨게 했다고 털어놓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여성 연극인들의 모습에 눈과 마음이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는 싯구처럼, 이번 공연은 우리가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지, 제대로 사랑하며 사는지, 또 한해가 가기 전에 삶을 마주할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잘자요, 엄마>는 청주 가경동 메가폴리스 아트홀에서 26일까지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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