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450주년…세계문학사의 위대한 존재

영화를 통해 문학 읽기⑨ 셰익스피어 다시 보기
윤정용 평론가

올해는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셰익스피어의 생애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알려진 사실이 많지 않기에 그의 존재에 대해 여전히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가 영국문학사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명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만큼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사실 셰익스피어는 영국문학에서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획득한 몇 안 되는 작가다. 셰익스피어처럼 대중적으로 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 높이 평가를 받는 작가를 꼽으라면 찰스 디킨스, 제인 오스틴 정도다.

현재 셰익스피어는 대학의 필수교과목으로 아직도 영문학 연구의 중요한 영역으로 다루어지고 있고, 청소년들에게는 유익한 고전으로 읽힌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현대 관객들은 영화나 연극으로 재탄생한 셰익스피어 작품을 즐기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 한마디로 셰익스피어는 많은 다른 고전 작가들과는 달리 지금도 여전히 현대의 어떤 작가보다도 많이 읽히고 있으며, 영화나 연극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계속해서 ‘재현’(representation)되고 있는 가장 ‘현대적인’ 작가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출판된 지 400년도 넘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현재까지 계속해서 다시 쓰고 읽기가 시도되며 인기를 누리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장르적 특성으로 보면, 셰익스피어 작품들은 드라마(시극)이기 때문에 시나 소설에 비해 보다 쉽게 재현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답이 되지는 못한다. 분명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다른 고전 작가와 차별되는 요소가 있다.

독창성을 담보한 시대성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독창성’(originality)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결코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 대부분의 셰익스피어 작품은 기존의 작품을 차용, 모방, 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독창성을 상쇄하는 보편성과 시대성을 담보하고 있다. 즉 셰익스피어 작품에는 시공간을 넘어 공감을 이끌어내는 인류의 ‘보편적’ 요소와 셰익스피어 당대 영국의 ‘시대적’ 특성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보편성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독자/관객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초월성을 의미한다. 시대성은 그 작품이 쓰인 당대의 특정한 사회 · 문화적 상황을 반영하는 고유성을 가리킨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셰익스피어가 갖는 의미는 바로 우리 자신과 우리 시대와의 관련성에 있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시대에 따라 혹은 비평적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다. 즉 셰익스피어 작품은 의미가 확정된 ‘화석화된’ 텍스트가 아니라 끊임없이 의미가 변하고 재해석되는 살아있는 텍스트다. 따라서 셰익스피어는 우리에게 오래된 ‘고전’이면서 언제나 새로운 해석이 가능한 가장 ‘현대적인’ 텍스트라 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지금까지 연극, 무용, 음악, 영화 등 다양한 형태로 각색되고 번안되어 왔다. 현대적인 셰익스피어 작품들은 당대의 정치적 · 사회적 상황을 반영하고 또한 셰익스피어 시대와 긴밀한 상호 관계를 맺고 있다. 이 글에서는 지면 관계상 셰익스피어의 개별 작품에 대해서는 상세한 설명을 피하고, 대신 셰익스피어 작품의 현대화의 사례를 대략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셰익스피어 텍스트를 현대적으로 재현하는 데 있어 정답은 없지만 그래도 가장 큰 비평적 기준은 대체로 ‘셰익스피어를 얼마나 충실히 재현하고 있느냐’와 ‘원작의 주제와 얼마나 밀접한 관련성을 유지하고 있느냐’로 수렴된다. 하지만 이 역시 절대적 준거는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같은 작품이라 하더라도 감독에 따라서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감독의 연출 양식뿐만 아니라 상이한 문화적 판본에서도 고유성을 확보한다. 좀 더 적확하게 표현하면 견뎌낸다. 『맥베스』를 예로 들어보자. 『맥베스』는 오슨 웰즈, 로만 폴란스키, 구로사와 아키라 등 세계적인 영화감독들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그러나 원작은 같지만 각각의 영화적 배경은 모두 다르다. 폴란스키의 영화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처럼 스코틀랜드가 배경이 되고, 웰즈의 영화에서 영화적 공간은 스코틀랜드 성과 전혀 관련 없는 SF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고, 구로사와 아키라의 <거미집의 성>은 전국시대의 일본의 한 성(城)이 무대가 된다.

셰익스피어 텍스트의 현대화의 산물은 대부분 셰익스피어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다. 즉 감독에 따라 원작의 시대 배경이나 극중 상황이 그대로 재현되기도 하고, 아니면 현대적 상황에 맞게 완전히 새로운 유형으로 각색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 텍스트를 현대적으로 변주하거나 아니면 실제로는 알 수 없지만 그랬을 것 같은, 혹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 이야기를 ‘허구적으로’ 재현하기도 한다.

변주의 무한한 가능성

존 매든의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허구의 관계를 진지하게 탐구한다. 때로는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구스 반 산트의 <아이다 호>는 『헨리 4세』의 모티브를 심리학적으로 변용했고, 알 파치노의 <뉴욕광시곡>은 리처드 3세의 정체성과 의식을 쫓는 일종의 로드무비 형식을 취하고 있다. <라이온 킹>은 진지하고 엄숙한 『햄릿』을 좀 더 가벼운 애니메이션으로 풀어냈다. 이 영화들은 셰익스피어 텍스트의 현대적 개작 또는 변주의 무한한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외에도 셰익스피어 텍스트를 직접 원작으로 삼거나 아니면 셰익스피어 텍스트를 변용한 영화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반화하면, 셰익스피어 영화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직접적으로 셰익스피어 작품을 원작으로 삼고 있는 영화들이다. 또 다른 것은 셰익스피어의 흔적, 또는 편린이 남아 있는 셰익스피어 텍스트를 변용한 작품들이다. 하지만 이런 구분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셰익스피어의 문화적 영향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셰익스피어 영화의 범주 설정 자체가 처음부터 무리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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