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문 문학제’… 시집 ‘풍선과 제3포복’ 재조명

<경향신문>‘반전반핵’이란 주제가 한국 문학에 등장한 것은 1990년 무렵으로 알려져 있다. 1980년대 대학가 시위에서는 ‘반전반핵 양키 고홈’이라는 구호와 함께 운동가요 ‘반전반핵가’가 불리기 시작했다. 또 울진원자력발전소나 핵 폐기장 건설에 반대하는 지역 주민, 시민·환경단체들의 조직적인 반핵 저항운동이 일어난 것도 1989년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90년 발표된 고형렬 시인의 장시 ‘리틀 보이’, 이듬해 나온 박혜강의 장편소설 <검은 노을> 같은 반전반핵 문학이 등장했다. 그러나 반전반핵 문학의 효시는 신동문 시인(1927~1993·사진)이 한국전쟁에 참전할 당시 쓴 ‘풍선기’와 ‘제3포복’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시인 신동문 평전>의 저자인 김판수씨는 최근 충북 청주에서 열린 ‘신동문 문학제’ 주제 강연에서 신 시인의 시 세계를 새롭게 조명했다. 김씨는 신 시인의 유일한 시집 <풍선과 제3포복>(1956)의 표제시인 두 작품이 우리 문학에서 가장 앞선 반전반핵시라고 밝혔다.

‘난무하는 일광 속의 원자능 부사와 비키니도 근해의 수포층이 JAZZ(재즈)처럼 광무하는 월광 속에서 하늘만이 남고 모두가 낙태하는 내일들을 응시하며’(‘풍선기’), ‘네바다의 무변사장과 태평양상의 환초고도… 그 중심에서 솟아나는 오색구름을 손뼉치며 향락하는 동과 서, 또 너와 나의 동자에 핏발 선 광기’(‘제3포복’) 등의 구절이 그렇다.

김씨는 “당시 전쟁문학이 전승이나 반공, 국군의 기백을 찬양하는 데 그쳤음을 감안하면 이 시들이 전쟁을 수행하는 병사에 의해 창작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특히 당시 핵은 우리 민족에게 해방을 가져다준 존재로 여겨졌다”고 말했다. 신 시인은 김수영, 신동엽과 더불어 초기 참여문학을 일궜으며 창작과비평사 대표를 지냈다. 중년 이후 고향인 충북 단양에서 농촌공동체 운동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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