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기 씨, 이웃 농부 설득해 거대한 유기농단지 조성…30여년간 영농일기도 써와

논밭의 알곡을 여물게 하는 따가운 가을볕이 반가운 요즘이다. 하지만 수확을 앞두고 태풍소식과 쌀수입 전면개방소식 등으로 농부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미호천과 무심천의 합수머리 까치내 인근의 너른 논이 온통 황금빛이다.

메뚜기가 툭툭 튀어 오르고 고개 숙인 벼 사이사이 잡풀이 자라는 모습으로 이 일대가 친환경 논인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까치내 일대는 충북 최대의 친환경 유기농 지역으로 꼽힌다. 인근의 농부들이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농사꾼이 되기로 뜻을 모은 결과다.


농약냄새 안 나는 논, 농부들도 만족

김봉기(62) 씨는 농사 시작부터 친환경을 고집했다. 1981년부터 영농일기를 써왔다. 친환경유기농법이 확산되지 않은 시기에 미생물을 직접 발효시켜가며 농법을 개발했다. 자신의 이름을 건 상품을 출하해서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처음에 딸기 농사로 시작했는데 이름을 걸고 내놓은 딸기를 수출까지 하게 됐다. 내 이름을 붙인 딸기바구니에 딸기를 담아 파는 상인도 있었다”며 오히려 그 상인이 고마웠다고 말했다. 그만큼 소비자들에게 믿음이 생긴 것을 확인하게 되어 기쁜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다.

논농사도 유기농을 고집했다. 그러나 인근에서 사용하고 있는 농약이 유기농 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당연했다. 한 명 두 명 친환경농법으로 전환할 것을 설득해갔다. 농부들은 손도 많이 가고 수확을 보장하기 어려운 유기농법에 동참하는 것을 꺼려했고, 김 씨는 힘든 일들을 거들어가며 꾸준히 설명했다. “조금이라도 수확이 줄면 당장 되돌릴 것”이라는 경계의 목소리도 있었다.

현재 까치내 인근에서 유기농법으로 논농사를 짓는 농부는 167명에 이른다. 97ha 규모의 대단위 유기농단지다. 평수로 환산하면 30만평 규모다. 이 중 김 씨의 논은 1,980 ㎡ 에 불과하다. 사람에 대한 그간의 믿음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서는 설명이 불가능한 수치다.

막상 유기농법을 도입하니 농부들의 자부심도 높아졌다. 김 씨는 “역한 농약냄새도 없고 제초제를 뿌리지 않으니 뻘건 논두렁이 드러나지 않아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다 좋아한다” 며, 20년 전 ‘한살림’생산자로 등록할 당시 “벌레먹고 못생긴 작물들을 믿고 소비해주는 조합원들이 있어 용기를 냈다”고 전했다. 자신의 경험처럼 유기농으로 전환하는 농부들이 결국 잘했다고 생각할 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10년간 ‘한살림청주’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한살림 조합원으로 이곳을 자주 방문한다는 이해숙 씨는 “논이 예쁘다. 농부의 손이 많이 간 것이 느껴진다. 고마운 마음이 저절로 든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GAP와 친환경유기농 구분해야

친환경 유기농에 대한 관심은 관련 산업의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충북도는 오는 2020년까지 ‘유기농 특화도 충북’이란 목표를 세우고 유기농 특구 조성 및 생산 기반 확대를 위해 힘쓰고 있다.

얼마 전 유기농과 화장품, 뷰티, 바이오산업과의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개최된 ‘충북 오가닉 의미(醫美)농 포럼’에 참여한 김 씨는 친환경 유기농법을 실천하고 있는 농부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며 “농업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 보다 관심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것을 고수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이 학계와 정책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최근 정부에서 우수농산물관리제도로 실시하고 있는 GAP (Good Agricultural Practices)인증이 무농약 또는 유기농 상품과 유사하게 홍보되고 있는 점에 대해 큰 우려를 나타냈다. “농산물의 이력을 기록해 소비자가 상품정보를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친환경 작물이라는 인증과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GAP는 제초제나 화학비료의 사용을 허용하면서 최종 농산물에 농약잔류량이 기준을 초과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제도다. 시료채취와 방문점검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하는 유기농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어 보였다.

우수농산물의 범위에 GAP인증 농산물이 포함되면서 청주시 학교급식의 60% 가량을 공급해오던 까치내 유기농가에도 영향을 줄 것이 예상된다. 어렵게 친환경농사에 뜻을 모은 농부들의 사기가 저하될 것을 우려하는 김 씨의 고민이 깊은 부분이다.

부인 김명선 씨는 “유기농이 일반농사보다 세 배는 힘이 더 든다. 그래도 직접 벌레 잡아 키운 작물들이라 애정이 많다”며 활짝 웃었다. 쉬는 날이 따로 없는 농사일을 아들이 배우고 있다. 생명을 살리는 직업이라는 자부심을 물려주는 아버지, 후손에게 물려줄 땅의 생명력을 염려하는 평민이자 위대한 농민의 모습, 바로 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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