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복 청주노동인권센터 노무사

▲ 조광복 청주노동인권센터 노무사
얼마 전 간디의 자서전을 읽었는데 그의 일생을 관통한 실천운동을‘사티아그라하’라고 하였다. 사티아(진리)와 그라하(파악, 주장)를 합친 말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말을 비폭력 저항운동, 불복종운동 등으로 사용해 왔다. 하지만 옮긴이는 원뜻을 최대한 살려‘진실관철투쟁’이라 번역했다.

투옥을 반복하다 암살로 삶을 마감하기까지 일생을 걸고 탐구했던 좌표가 ‘진실’이라고 하니 고작 자서전 한 권 읽고서 그 속뜻까지 헤아리기는 어렵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간디가 40대까지는 변호사로 먹고 살았다는 사실이다. 일거리도 제법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다 ‘진실관철투쟁’에 자신을 던지면서 자연스레 변호사 일도 손을 놓게 된다. 나는 여기에 솔깃했다. 성인으로 추앙받는 분이 변호사 일을 접은 걸 보면 ‘법’의 판단보다 ‘진실’이 우위에 있다는 것 아니겠냐, 이런 뜻이다.

장황하게 간디를 앞세운 이유를 말하겠다. 대법원 패소 판결문을 받아든 73세 노모가 대기업 매그나칩 반도체를 향해 ‘진실관철투쟁’을 쏘아 올렸다.

어머니는 2006년 12월 26일을 잊지 못한다. 막내아들 김상우 씨가 쓰러진 날이다. 매그나칩 반도체의 가스관리 엔지니어로 근무한지 9년, 약혼자가 있었지만 장밋빛 꿈도 다 허망한 일이 되었다. 2014년이 지나도록 식물인간으로 병실에 누워있기 때문이다.

상우 씨의 병명은 뇌염이다. 과로와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면역이 약해진 것이 입증되면 산재로 인정받는 질병이다. 상우 씨는 거의 매일같이 밤 21시 전후까지 일을 했다. 어머니가 알고 약혼녀가 알고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이 아는 일이었다. 거기다 반도체 회사가 취급하는 가스는 히틀러가 유태인 수백만 명을 학살할 때 사용한 아르신, 포스핀이다.

당연히 산재보상을 신청했는데 근로복지공단은 산재가 아니라고 한다. 하늘이 노래진 어머니는 한참이 지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매그나칩 반도체가 제출한 출퇴근내역이 컴퓨터로 출력한,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이 반복된 기록이란 것을. 밤늦도록 일한 연장근로가 다 빠진 사실을.

어머니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근로복지공단을 피고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매그나칩 반도체에게 출퇴근할 때 찍는 ID카드 체크내역을 법원에 제출해줄 것을 요청한다. ID카드 체크내역이 진실을 밝혀 줄 유일한 증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그나칩 반도체는 끝까지 ID카드 체크내역을 제출하지 않았다. 왜 제출하지 않는지 이유도 달지 않았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소송당사자가 근로복지공단이기 때문에 매그나칩은 소송과 관련 없는 제3자란다. 법원이 강제로 제출받을 방법이 없다고 한다. 매그나칩은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날 때까지 ID카드 체크내역 제출을 거부했다.

그렇게 소송에 시간을 허비하고 대법원 패소 판결문을 받아든 73세 모친은 이제 피켓을 들고 회사 정문 앞에 서 있다. 대구에 있던 아들의 병실까지 청주로 옮겨왔다. 어머니는 요구한다. 매그나칩 반도체는 이제라도 ID카드 체크 내역을 공개하라, 상우의 출퇴근 진실을 밝혀라.

모두들 대법원 판결이 떨어지면 다 끝난 것으로 생각한다. 노동법으로 먹고 사는 나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73세 노모의 투쟁을 보니 다른 세상이 열리는 것 아닌가. ‘진실’이 하늘이라면 ‘대법원 판결문’은 손바닥에 불과할 수도 있겠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는 일이지 하는, 전혀 차원이 다른 생각 말이다.

그렇게 마음먹고 보니 어머니가 쏘아올린 ‘진실관철투쟁’에 나 역시 기꺼이 동참하면서 이런 발칙한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노무사가 아닌 간디의 길을 걸으리라”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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