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 민족문제연구소충북지부 대외협력국장

▲ 김성진 국장
대입수학능력시험(수능) 과목에 ‘윤리와 사상’이라는 과목이 있습니다. 기성세대들에게는 익숙한 윤리라는 과목입니다.

3월 동양사상 첫 수업 날이었습니다. 나름 각각의 유·불·도교사상에 대해 소개를 하고 내용을 정리하던 중에 앞자리 남학생이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럼 도와 덕에서 유교 불교 도교가 차이가 없는 거네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네. 각 사상의 도(道)와 덕(德)의 입장 차이는 분명히 있지만, 고등교과 내에서의 도덕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책임과 인간다운 삶에 대한 입장이 무엇이냐는 정의는 같다고 할 수 있어요. 결국 도는 우주 만물의 원리·이치·질서라고, 덕은 그 도에 맞는 덕이 있는 삶이라는 것, 덕이 있는 인간은 책임있는 인간 즉 이것이 윤리적 인간이라는 거죠.” 정리는 했지만, 늘 이 부분을 수업하고 나면, 쉬는 시간 맥이 빠지는 것을 느낍니다. 배움 속에서는 명쾌한 정의가 내려지지만 우리 현실에서는 도덕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뉴스를 얘기할 때 도덕을 기준으로 평하면 두 가지 반응이 나옵니다. 호감을 갖는 사람들과 조소가 섞인 평을 하는 사람. 어쩌다 도덕이 이런 수모를…….

명절에 고향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만났습니다. 어렵게 마련된 자리라 제법 많은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입담 좋은 친구가 고향 소식을 줄줄이 풉니다. 어느 산업단지가 어쩌구 저쩌구, 어디 신설 철도역 설치에 어디랑 어디가…… 결정적인 논란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아무개가 누구네 농사짓는 땅에 이름을 올렸다더라. 나라에서 주는 무슨 지원금을 타기 위해서란다. 몇몇이 부러워합니다.

듣던 한 친구가 “에이 그게 머야. 사업하는 놈이 사업이나 하지 머 얼마를 더 벌겠다고…… 별…… 실망이네, 정치한다고 하더만”, 입담 좋은 친구가 응대합니다 “어차피 그 돈 누가 타먹든 타먹는 건데 그건 아니지.”, “그럴 거면 정치는 왜 한다고 나서?”, “아~ 답답하네. 누가 요즘 그렇게 살어~ ” 10여 분 넘게 논쟁 하던 친구들, 유야무야 승리는 입담좋은 친구의 것이 되었습니다. 현실이…… 술잔이 도는 사이에 잠깐씩 생각해보니 우린 이렇게 살아야 잘 산단 소리 듣고 남들 하는 만큼은 해야 바보 소리 듣지 않는 세상에서 사는구나. 여기에서 또 생각이 멉춥니다. 늘 그랬습니다. 여기에서 더 이상 생각이 나가질 않습니다.

지난 7월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 교수가 서울 여러 곳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기후변화, 한국사회 등에 대해 그의 저서 『위험 사회』에 근거하여 서구적 근대화의 위험과 서구적 근대화에 집착하고 있는 대한민국사회의 현실을 지적했습니다.

그가 주장한 ‘위험사회’의 원인 중 하나는 ‘조직화된 무책임’으로, 이는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위험에 의해 영향받는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위험을 해결할 수 있는 어떠한 과정에도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벡 교수의 ‘조직화된 무책임’이 제게는 ‘도덕에 대한 우리 사회의 조직적 무관심’으로 들립니다. 이웃 간의 다툼, 교통사고 처리와 합의 과정, 입시 문제 어디에도, ‘이기적인 나’는 있지만 ‘사회적 존재로서의 우리’는 없는게 현실인 것 같습니다. 정치·행정의 공직자들은 공직자들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개인은 개인대로, 도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스스로 자신을 챙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과거 성인들의 도니 덕이니 하는 말은 그냥 과거에 있었던, “옛날에는 그랬대.”로 밖에 설명이 안 되는 세상입니다.

상당공원 시국미사에서 미사 주례 신부님의 강론이 생각납니다. “우리 사회의 도덕은 이미 도덕적 가치를 지닐 수 없는 것들이 도덕으로 자리를 차지했고, 우리는 여기에 매몰되어 살아가고 있다.”

동양사상 수업만 하면 맥이 빠지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학생들도 알고 있는 도덕이 절실하지만 현실은 너무 도덕적이지 않아서, 도덕이 결여된 삶을 살고 있는 위선자가 도덕을 가르치고 있다는 아이러니 때문입니다.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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