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에서 지난 2000년에 지역에서 가꾸고 보전해야할 가치가 있는 곳에 대하여 학계의 자문을 받아 충북자연환경명소 100선을 선정하였다. 이 중 희귀동물서식 및 희귀식물자생지가 16곳, 특정야생동물 또는 조류, 어류 집단 서식지가 13곳, 특정 수목 및 야생초화군락지 13곳, 보호대상조류 및 철새다수도래지 9곳, 자연경관 및 동식물 서식환경우수지가 49곳이다. 다만, 이런 것에도 지역 안배를 고려하다보니 어떤 곳은 보전가치가 상대적으로 부족하지만 포함된 곳도 있고, 한편으로는 포함되지 못해 아쉬운 곳도 있다.

올해 충북환경연합이 충북자연환경명소 100선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 생태체험활동을 준비하면서 진작에 대상지 중 하나로 낙점시킨 장소는 단연 영동군이었다. 하루종일 콘크리트 건물에 갇혀 있으면서, 어디 맘 편하게 맨땅을 밟으며 맑은 공기에 심호흡할 기회가 좀처럼 없는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영동의 자연의 생명력은 꼭 느끼게 하고 싶은 곳이기 때문이다.

영동군은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어가는 준엄한 백두대간이 있고, 또다시 산줄기가 펼쳐져서, 곳곳마다 아름다운 계곡이 숨어있다. 또한 전북의 장수, 진안, 무주, 금산을 거쳐 구불구불 흘러온 금강이 입이 딱 벌어지는 경관을 만들어낸다. 경관이 이러하니 자연생태는 또한 오죽할까. 한 지역주민은 영동에는 사람이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에 민주지산 물한계곡에 못지않은 자연림과 습지가 곳곳에 있다고 귀띔을 하며, 혹시 한꺼번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찾을까봐 걱정이라는 이야기도 하였다. 영동군은 그야말로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것이다.

영동군은 어디하나 빼놓을 곳 없이 빼어나지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생태체험활동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그 중에서 다시 선택하는 것이 불가피 하였다. 때문에 아쉽지만 이번에는 거리와 일정을 고려하여 반야사(100선에 포함되지 않음)와 월류봉, 봉림리백로서식지, 옥계폭포로 제한하였다.

답사의 첫 장소는 반야사이다. 이곳은 아담하고 단정한 가람의 모습뿐만 아니라, 석천(백두대간에서 발원해서 행정구역에 따라 이름이 바뀌다가 상주를 거쳐 초강천에 합수된다)이 휘돌아치며 만든 경관이 특히 아름다운 곳이다. 그 중 15분 정도의 산으로 들어가야 하는 문수전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단연 최고이다.

반야사에서는 극락보전과 삼층석탑 등 옛 조형물 속에 숨어있는 자연의 선을 찾아보는 프로그램이 제안되었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는 인공의 것이라고 하더라도, 가만히 바라보면 그대로 산줄기의 모습이고, 물줄기의 모습이다. 단아한 맞배지붕이 그렇고, 늘어진 석탑 추녀의 곡선이 그렇다. 요즘의 건축물들이 자연의 조화는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높고 크게 지어 올려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위압감을 주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반야사 경내에 머물다가 재촉하는 이에 이끌려 다음 답사지인 월류봉으로 향했다.

월류봉은 초강천이 휘돌아치며 만들어놓은 백사장과 산 능선을 따라 오르는 달의 모습이 아름다워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는 학문의 깊이도 깊어지는 것이었을까? 우암 송시열이 학문을 탐구했던 자취가 많다. 월류봉의 깍아지는 듯한 괴암과 물굽이를 한 눈에 내다 볼 수 있는 곳에 서재를 짓고 강학을 하였다던 지금의 유허비 장소와, 병자호란 직후 32세 되던 해에 은둔생활을 하였다는 한천정사, 공부가 잘 되지 않을 때는 오르내리며 마시기를 즐겨했다는 월유봉 중턱의 샘이 그것이다. 아름다운 경관에 이야기까지 더해지니 더욱 신비롭게 느껴지는 곳이다. 보름달이 뜨는 밤에 찾으면 더욱 좋겠다는 아쉬움을 남기며 다음 답사지로 발길을 재촉했다.

지난해도 찾았지만, 학산면 봉림리는 올 때마다 마음을 무척 설레게 한다. 마을에 들어서면 멀리서도 산에 하얀 꽃이 핀 것처럼 백로서식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도내의 많은 백로서식지를 탐사했지만, 이곳처럼 사람과 가까이 있는 서식지는 볼 수 없었다. 마을 바로 뒷숲에서 200여마리의 백로와 왜가리가 서식하고 있는데, 육안으로도 새끼를 돌보는 백로와 왜가리의 탐조가 가능할 정도로 가깝다. 300년은 족히 넘었을 것으로 보이는 아름드리 버드나무 앞의 관찰 데크에 오르면 더욱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백로와 왜가리는 황새목 왜가리과에 속하는 새로, 날개는 크고 꽁지는 짧다. 다리와 발은 길며 목도 길고 S자 모양으로 굽는다. 대개 부리가 길고 끝이 뾰족하며, 깃털 빛깔은 종마다 차이가 있지만 주로 백로류가 흰색, 왜가리 회색을 띤다. 보통 새벽이나 저녁에 활동하고, 논이나, 얕은 물에서 걸어다니면서 먹이를 찾는다. 먹이는 주로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알은 암수 함께 품고 어미가 토해낸 먹이로 약 2개월간 기른다.

백로와 왜가리가 집단서식하는 고목은 어김없이 몇 년 뒤에 고사하게 되는데, 백로와 왜가리처럼 육식을 먹이로 하는 새들은 소화과정에서 강한 산성의 물질이 분비되고, 배설물의 양도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단생활을 하면서 배설물도 집단적으로 발생하면서 서식지 주변 마을주민들은 종종 널어놓은 빨래가 망치거나 농작물이 고사하는 등의 피해도 입는다고 한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봉림리 마을 사람들은 백로가 많이 찾을수록 풍년이 든다며 여름마다 이곳을 찾는 백로를 반가워한다. 옛부터 흰 것을 영물로 생각한 조상들의 영향이 아니더라도, 아마 당장의 피해보다 모든 생명은 그에 맞은 자연의 조화가 있다고 생각한 깊은 배려였나 보다.

이곳에서 백로와 자신와의 관계를 생각해보는 프로그램이 제안되었는데, 민물고기 요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물고기를 먹이로 하는 백로와 먹이사슬의 경쟁관계라 설명해서 참여자들에게 웃음을 사기도 하였다.

성(成)씨 집성촌이기도 한 봉림리에서 빼놓지 않고 들어야할 곳이 또 있다.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성위제 가옥이다. 이 집은 20세기초 이후의 배치로 만들어졌지만, 유독 광채만은 마루를 깔고, 널따란 판자벽을 둘러서 끼운 18세기 기법으로 추정된다. 이 안채의 마루에 앉으면 어느새 옛 선비가 되어 뒷산의 왜가리들의 울음소리와 우주선처럼 유유히 날아다니는 모습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된다.

다음 답사지는 옥계폭포이다. 지금도 옛 난계박연의 음악의 혼을 찾아 득음을 하기 위한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20m의 높이의 폭포는 웅장한 소리와 함께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진다. 폭포에서 흘러온 물에 두발을 담그고 있으면 정말 난계 박연의 기가 있는 탓일까 저절로 노래도 나온다. 시원스레 떨어지는 폭포를 바라보면서 얼마만의 세월에 어떤 과정으로 저 폭포가 만들어졌을까하며 막연한 생각에 빠지지 하루의 피로가 저절로 풀리는 듯 했다.

빠듯했던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며 청주로 돌아오는 길은 왠지 모를 아쉬움과 부담이 남았다. 자연환경명소 100선의 선정은 자연환경을 가꾸고 보전하겠다는 충북도의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영동군뿐만 아니라 도내의 100선은 입구의 위압적인 알림표지석 외에는 별다른 활동은 없다.

생태체험활동을 준비하는 일이 어려운 것은 단순한 견학이 아니라 그곳에서의 얻은 생태적 감수성이 자신의 생활에도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하기 때문이다. 이곳을 찾게될 청소년들은 거대한 표지석보다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과 그것을 지켜내며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더욱 감동을 받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홍보를 확대하고 교육내용도 향상시켜야 하겠지만, 동시에 언제까지나 더 큰 자부심을 가지고 지켜낼 수 있도록 지자체는 주민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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